김요섭의 '바다와 시계점(時計店)'

등록일20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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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시계점(時計店)

 

 

바다를 향하여

조금 기울어진 도시

언덕의 시계점

흰빛 넘치는 머리의 늙은이는

바다를 보면서 태엽을 감아주고 있다

 

밤이면

바다를 향하여

조금 기울어진 도시

늙은이의 은빛 핀셋트는

시간의 거품을 집어내고

 

푸른 시간 속 깊숙이

닻을 내린

젊은 어부가 빛의 그물을 끌고 오는

아침 길

 

바다를 향하여 기울어졌던

도시가 기지개를 켜고

집집마다 꿈의 쓰레기를 쏟아버린

창에는 하늘의

물방울이 켜져 있었다

 

* 쓴 이 : 김요섭, 1927년 함북 나남 출생.

* 한국명시(최동호편저) 상권 904면

 

 

래된 흑백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시인은 뭣하는 사람일까? 무슨 일로 시를 쓰는 걸까? 시 쓰는 일로 돈을 벌었다는 소릴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런데 밥은 먹고 사는 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옛부터 이런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누구도 시인이지만 아무나 시인은 것은 아니다, 라는 말. 한 편의 완성된 시가 창작되기 위하여 쏟아내는 시인의 노력은 낯선 경험의 강을 건너 때론 불면의 밤에 내몰리기도 한다. 그리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한 세월의 습작기가 있었다. 특별한 시공간, 몰입, 설계, 정제되는 언어, 관점의 다변화, 여기에 더하여 무중력의 상태에 이르러서야 첫 운을 뗀다.

 

시의 장면의 처음부터 끝까지 깊은 밤을 지나고 있다. 시계 수선공 늙은이의 핀셋이 극소한 시계 부속품 하나 하나를 집어내고 있다. 백열등 아래 돋보기 안경을 쓴 쪼글한 주름의 얼굴을 한 늙은이의 눈이 시계를 응시하고 있다. 2시, 3시, 4시, 5시, ……. 노인은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니 머리가 핑 돌며 현기증이 느껴진다. 노인은 창가에 기대 서서 부염한 저쪽 하늘을 바라본다. 아마도 이 시간이면  저 멀리 어촌마을의 어부는 그물을 길어오는 시간이리라.

 

노인은 길게 한숨을 내뿜는다. 생업인 시계수리를 다 마쳤다는 안도감도 잠시, 아슴아슴 밝아오는 '바다를 향하여 기울어진 도시'가 다시 기지개를 켜며 일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위안은 하늘로부터이다. 집집마다 꿈의 쓰레기를 쏟아버린 창이지만 그 창에는 아침 이슬이 방울져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향하여 조금 기울어진 도시. 바다는 무엇이고 도시는 무엇인지 알 듯도 하다..

 

□ 글, 심호섭(홈페이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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