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만들다

등록일202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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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만들다

이태득ㅣ수필가

 

 

바다는 멀어진 대륙을 이어준다. 따라서 해양은 지구촌의 모든 사람을 한 아름으로 감싸며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미래를 향한 꿈을 키워준다.

 

조선소에 35년 근무했다. 다양한 선종의 배가 년 간 10여척 진수되었으니, 꽤 되는 것 같다. 그 속에 나의 청춘이 녹아있는 배도 제법 되지 싶다. 지금도 어느 대양에선가 그 선박은 저마다의 이상을 키우며 쉼 없이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가끔은 우리 회사에서 건조된 선사들의 배가 부산항에 정박한 것을 볼 때면 그 시절이 마치 어제 일같이 마음이 설레며 쿵쾅쿵쾅 요동친다.

 

우리나라 최초로 시추선을 건조한다. 갓 제대한 신입 전기공이기에 10층 건물 높이의 시추 타워 에치빔 기둥에 설치된 좁은 계단을 하루에 몇 번씩 개미처럼 부지런히 오르내린다. 겁 없이 전선을 허리에 묶어 철탑을 오르다 보면 높이 올라갈수록 축 늘어진 전선이 마치 바위처럼 무거워 누군가 밑에서 나를 힘껏 당기는 것 같다. 여차하여 계단에서 손을 놓거나 미끄러지면 그냥 끝장이다. 안전모는 사치품이고 안전벨트나 안전망도 없었다. 작업 지시를 하는 관리자나 작업자 그야 말로 모두 안전 불감증이라고 하겠지만, 어쩌면 군기가 빠지기 전이라 그 정도의 중압감은 이겨 냈는지도 모른다. 원래 무식한 놈이 용감할 수도 있겠으나, 그 땐 그랬다. 다행히 정년까지 안전사고는 한 번도 없었으니 아마 조상님이 잘 보살폈나보다.

 

아까부터 쉬가 마렵다. 어제 과음으로 아침에 물을 너무 마셨나보다. 내려와서 볼일을 봐야하지만 오르내리기 귀찮아 타워 꼭대기 테라스에 슬쩍 기대어 바다로 향하여 기운차게 분사한다. 한참을 참았기에 힘차게 솟구쳐 떨어진다. ‘아! 시원하다.’ 그것도 잠시, 마침 불어오는 바람결에 조립장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날아간다.

‘어라 이게 아닌데,‘ 아니나 다를까 억세게 일진이 사나운 작업자에게 떨어진다. 영문을 모르는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갸웃한다. 분명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인데 웬 물방울, 그것이 저쪽 타워 꼭대기에서 어느 게으른 놈이 쉬한 것이 바람에 날리어 왔다고는 일순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너무 죄송하지만 철없이 낄낄거린다. 그렇게 건조된 시추선은 어느 광구에서 에너지를 옹골지게 퍼 울리고 있을까.

 

망망대해 거제도 앞바다 공해상에서 공을 차고 있다. 조선 역사 70여년에 시운전하며 공을 차다니 여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조선소 일이 다 그렇듯이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무엇이 그렇게 즐거웠는지, 로로선 화물창은 마치 큰 운동장 같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는 기회를 봐서 공을 차려고 다짐했었고 시운전 마지막 날 드디어 그 소망을 이룬 것이다. 어쩌면 보잘 것 없는 일이겠지만 허무맹랑한 것 같은 청춘시절의 열정은 생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낭만의 배는 지금도 빨간 스포츠카를 싣고 데이트를 기다리는 행복한 연인을 찾아가고 있을 것이다.

 

조선소 심벌에 소속부서와 이름까지 선명한 작업복을 입고, 부산의 가장 번화가 남포동에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퍼마신다. 웬만한 주점에는 외상장부가 있었으니 암소라도 한 마리 잡을 기세다. 하루라도 건너뛰는 날이 거의 없다. 참으로 대단한 자존감 이 아닐 수 없다. 3차 4차 가다보면 얼마나 퍼마셨는지 일일이 다 기억을 할 순 없고 외상장부만이 빠짐없이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매달 월급날에는 술집 주인이 외상값을 받으려 회사 앞에 장사진을 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회사는 큰 대문이 세 군데다. 사전에 정보를 알지 못하면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 중에 어느 문으로 퇴근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매의 눈으로 귀신 같이 찾아낸다. 대부분 한 두 달 미룬 술값으로 여기까지 오진 안았기 때문에 필사적이다. 마담을 피해 도망가다 멱살잡이 당하는 인간, 다음 달에는 꼭 값을 것이라며 통사정을 하는 위인, 이런 웃지 못 할 촌극은 급여가 통장으로 바뀌는 80년대 말까지 벌어지곤 했다. 그들은 가끔 바뀌는 월급날을 우리보다 먼저 알고 찾아오는 신통력을 발휘했다.

 

70년대 시작된 조선의 호황과 함께 중화학공업의 눈부신 발전으로 산업의 역군, 수출입국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너나없이 젊은 시절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하루의 고단함은 술로 휘 날리고는 내일을 향해 기운 넘치게 달리고 또 달려 나갔다. 그것이 곧 애국이고 충성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행복한 가정을 잘 꾸리고 아들 둘 결혼까지 시켰으니 내 인생의 반을 보람 있게 성취한 것이다. 어찌된 운명인지 아이들은 대학에서 배운 전문분야와는 전혀 다른 조선에 관련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아마도 부자간의 끊지 못할 팔자라고 생각하고 싶다. 어쨌든 나의 삶은 조선소에서 배를 만들며 청춘을 바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나의 행복한 미래를 구축했던 것이다.

 

다목적 화물선에서 콘테이너 선으로, 유조선에서 LNG선으로 나날이 도약해 가는 해양문화의 진보는 오대양 육대주가 존재하는 한, 온 누리의 다양한 민족의 삶과 문화를 더욱더 향상시켜 나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은 내일을 향해 거부할 수 없는 도전을 늘 요구하고 있다. 힘차게 산다는 것은 곧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가는 것이 아닐까.

 

□ 자료출처 : <해양과 문학> 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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