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물과 바닷물

등록일2023-01-16

조회수96

 

시냇물과 바닷물

이창희 ㅣ 수필가

 

 

하굣길에 징검다리를 건널 때, 목이 마르면 쪼그리고 앉아서 시냇물을 받아 마시곤 하였다.

바닷물을 맛본 것은 고등학교 입학 무렵이었다. 내륙 합천에서 항도 부산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해운대 구경을 갔는데 수평선은 가믈하였고 찰싹대는 물빛은 맑았다.

맛보고 싶었다. 바다 맛은 짜고 깊었다. 나를 데리고 간 사촌 형님은 동백섬 갯바위에 앉아서 해녀가 썰어주는 멍게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며 노랑 개나리꽃 빛 같은 그것을 먹어보라 권했다. 짭조름하면서 물컹한 것을 나는 삼키지 못하고 뱉어버렸다.

자리를 털고 일어 나서던 형님은 아, 하고 입을 벌려보라더니 멍게 꼬다리 한 점을 넣어주었다. 버스정류장까지 뱉지 말라고 일렀다. 오물거리며 가는 동안 그것은 달달해지면서 솔 내음이 났다. 처음 경험한 바다 맛이었다.

바다생물에서 어쩌자고 산골 소나무 내음이 나는 걸까? 짠물인데도 온갖 물고기들이 살고 있고, 해삼이랑 미역이 자라고, 눈이 따가울 텐데 아이들은 물장구치면서 멱을 감고 논다. 체했을 때 짠 소금물을 마시고 속에 것을 토해 내던 시골뜨기는 어리둥절했다.

그렇게 연안 도시에서 철이 들어가는 동안, 지상의 모든 시냇물은 바다로 흘러든다는 사실과 지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바다’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늦은 밤, 일기日記를 쓰다가 나는 아직도 얕은 냇물가에서 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누군가 아픈 말 몇 마디를 던지고 가면 내 감정의 수면은 요동을 치는 것이었다. 물이 얕으면 조약돌 하나 떨어져도 수면은 깨지며 파문이 인다. 바윗덩어리가 굴러떨어지고 온갖 잡것이 휩쓸려 와도 수심이 깊은 바다는 잠시 출렁거릴 뿐 이내 잔잔해진다. 그런데 내 가슴은 그러지 못했다. 깊고 넓은 바다로 흘러가고 싶어졌다.

나도 자세를 낮추고 겸허하게 흘러가면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낮추시게 낮추시게

낮아져야 한다네

한바다 가까울수록 겸손해야 한다네

저무는 시냇가에 앉아

물소리를 듣는다

 

구비구비 돌고 돌아

바튼 여울목 넘어

부딪치며 깨어지며

흘러온 그 나날 속에

이제는 돌밭 몇 평쯤

떠올릴 줄 알아야지

 

그래서 물이끼 슬고

수초랑 물벌레 슬어

피라미 은붕어 떼 놓아

먹일 줄도 알아야지

금모래 만 평 꿈 밭을

일깨우기도 해야지

 

해 저무는 강변에 앉아서

시냇물 소리 듣는다

가만가만히 낮아지며

한바다로 흘러가라는

푸른강 푸른 말씀을

가슴으로 받는다

- <졸시. 저무는 강변에 앉아서>

 

육대주六大洲 곳곳에서 샘물은 솟아나고 강물이 되어 흘러서 바다에 닿는다. 그리하여 오대양五大洋을 이룬다. 사람의 살림살이가 세상 어디서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은 모든 시냇물이 바다에 연해 있기 때문이며, 큰바다(Ocean)로서 하나가 된 물결은 너와 나의 발등을 적시며 오늘도 어울렁더울렁 출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상의 허접한 것들과 온갖 짠 내 나는 것들까지 받아들여서 바다는 맛이 짜다. 그래서 고달픈 인생들이 민물과 짠물을 섞어서 포도당 수액을 만들고 그것으로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일까?

역사 또한 이에 다름이 없어 보인다. 대륙권과 해양권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세계사 역시도 바다로서 일체를 이루고 있다.

국제문제연구소(CSIS)가 “한국은 대륙권이냐 해양권이냐 응답하라”고 했단다. “대륙과 해양 사이에 낀 한반도의 상황은 난감한 지경”(이어령. 한국의 다음 100년 대담)이다.

이어령 교수의 지론을 빌려본다면 “한국의 다음 100년은 사주四柱보다 지도地圖에 있다”고 한다. 반은 바다(섬) 반은 대륙이라는 이중적인 지형이 지정학적 운명을 조성해왔지만... 그러나 해양 미국, 대륙 중국의 고래 싸움에 휩쓸리지 않고, ‘신지정학적’ 상황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향으로 응용하고 대안을 도출해 낸다면... 오히려 한반도는 토끼도 호랑이도 아닌 용만큼 크고 센 ‘수퍼 새우’로서 향후 100년을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하듯, 바다는 세상사의 이치를 밝혀주고 우주의 섭리를 일깨워준다. 시냇가에서 자라고 바닷가에서 장성한 나는 오늘도 민물과 짠물을 오가며 살고 있다

강언덕에서, 때로는 해변에서 물소리를 듣는다.

우주의 만물에게 이르는 천상의 말씀이다.

낮추시게/ 낮추시게/ 낮아져야 한다네// 한바다 가까울수록 겸손해야 한다네// 저무는 강가에 앉아 물소리를 듣는다 // ...푸른강 푸른 말씀을 가슴 열고 받는다

 

 

□ 자료출처 : <해양과 문학> 26호

 

 

 

g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