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항해(김동규)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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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항해

―어느 老 선장의 一念

 

사나운 바다가 유능한 항해사를 만드는 법. 마젤란이나 아문젠이 항해한 바다가 고요의 바다였다면 그토록 위대한 항해역사를 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여기 고대의 항해가보다도 더 험난하고 기나긴 항해를 지휘하는 선장이 있다. 이 글은 그의 전기傳記요, 약사略史요, 이력서인 셈이다.

 

백발의 행인이 바람처럼 휙 스쳐갔다. 행인은 지하철 출구에서 이륙하듯 비상하듯 계단을 올랐다. 아니 토끼처럼 오르막을 뛰다시피 했다. 사각 30도 이상의 계단을 두 계단씩 성큼성큼 박차고 올랐다. 부산역사 지하철을 오가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목격되곤 했던 인물이다.

 

그는 해운계에서 잘 알려진 C 선장이었다. 그의 활기찬 걸음은 오랜 세월 몸에 밴 맨드리였다. 웬만한 사람은 그의 걸음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재빠르다. 그것은 그의 유일한 운동이자 장수 건강의 비결이었다. 많이 걷고 힘차게 걷고 빨리 걷기가. 그는 몸이 야위어 배리배리해 보이지만, 청춘시절 찬바람이 나는 헌걸찬 남성이었다.

 

C 선장은 연전에 팔순이 지난, 젊은 늙은이다. 나이가 많아 늙었을 것으로 예단하나 실상은 무척 젊게 사는 노인이다. 행동도 젊고 생각도 젊고, 그의 일상마저 젊다. 단지 새하얀 머리카락, 깡마른 몰골 때문에 고령의 나이가 10년은 더 늙어 보인다. 그러나 건강한 사색思索은 그의 특기라 할 만하다.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미다. 누구를 기다리든가 일 분의 자투리 시간에도 확대 복사한 타임지를 읽어야 한다. 뭔가를 쓰고 골똘히 생각하고, 활자를 꼼꼼이 읽어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뿌리칠 수 없는 천성이다.

 

C 선장은 이른바 해운계 원로 해기사海技士이다. 어느 분야든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한 사람이면 그 쪽의 원로임에야 누가 부인하랴. 일찍이 한국해양대학을 나온 C 선장은 대학을 마친 20대 초기에 이미 해기사가 되어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볐다. 선원들이 배를 타다 싫증나면 뭍으로 외도外道를 하기도 하고 ‘가지 않은 길’로 곁눈질을 하건만, C 선장은 오롯이 한 평생을 뱃일만 해 왔다. 대단한 외곬이다.

 

그의 가족은 좀 특별한 해양가족이다. 1950년도 해양대학을 2기로 졸업한 그는 같은 대학 2년 후배의 동생도 두었다. 동생 C 선장은 인천항 도선사導船士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그는 또 해양대학을 나온 맏사위를 두었다. 이 뿐인가. 둘째 아들 역시 해양대학을 나와 일선에서 외항선 선장으로 배를 몰고 있다. 부자-형제간 한 세대 안에 해양대학 동문을 네 명이나 둔 셈이다. 해양계에서는 특이한 가족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의 일이란 게 희한하지. 그는 중년에 본의 아니게 팔자에도 없고 천성에도 맞지 않은 해운사업을 운영했다. 그러나 그야말로 잠깐에 그쳤단다. 그는 곧바로 다시 배로 나갔다. 시쳇말로 그간 번 돈은 그 사업에 다 말아먹은 셈이다. 그 후 외항선 선장 생활만 30년이 넘었다. 60대 초반 일선에서 정년 퇴직할 때까지만 해도 배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성실한 송출선원, C선장은 까다로운 일본 선주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정년이 지나서도 외국 선주의 부름을 받고 배로 나갈 수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는 그렇게 정년 후 수년이나 일을 더 하고 배를 완전히 내렸다. 그러나 정년이 지난 지 20년이 지나도록 배와 바다는 여전히 그의 곁에 있다. 항해는 그의 가슴 속에서 중단 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C 선장을 만난 것은 십수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근무하는 해양단체의 기관지 편집실에서였다. 그의 손에는 옆구리에 끼기 쉬운 서류용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는 가방 속에서 적지 않은 분량의 원고 뭉치를 꺼냈다. 말이 원고지 A4 용지에 빽빽하게 컴퓨터 글로 채워진 백여 쪽 분량의 장편長篇이었다. 노인의 얼굴과 원고 뭉치가 얼른 조화가 안 돼 적이 놀랐고 한편 당황했다.

 

소설도 논픽션도 아닌, 시나리오였다. 시놉시스Synopsis까지 첨부된, 거의 완성된 원고였다. 그는 시나리오에 대한 열망이 한마디로 대단했다. 시나리오 작법과 영화제작 기법을 할리우드 원서로 이미 독학했단다. 일본 미국 시나리오작가협회나 저작권협회 등 관련 사정을 꿰뚫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오랜 기간 습작기를 거친, 아마추어 시나리오 작가였다. 2시간 분량의 장편 시나리오를 여러 편이나 써 냈단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도 각인각색이다. 해방 전후 근대 인물에서부터 한중 수교 이후 부각된 조선족이 등장하기까지 각계의 군상群像이 등장한다.

 

“60여 년 전의 이야기여. 고등학교 졸업한 이듬해(1944년)였지. 2차대전 중 일본에 징병으로 끌려가 한 막사를 쓰던 일본인 전우에게서 그 여자를 소개받았어. 성품 좋고 미모의 가풍 있는 집안의 규수였어. 서로는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히로시마의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사랑을 맹세했어. 히로시마 원폭 난리 속에서도 그녀의 기지로 살아 남았었지. 전쟁이 끝나자 어떻게 해서 귀항선을 타게 되었고, 그것이 영영 이별이었어. 그녀의 이름이 시나리오 타이틀로 잡은 야츠에(후지무라 야츠에:藤村八津江)야.”

 

이것이, -영화계의 거장, 황영빈, 유현목 감독이 시나리오를 보고 호평을 했다는- 그의 처녀작이다.

작품의 배경은 주로 바다다. 항해하는 배, 승조원들의 잡다한 가정사나 러브 스토리가 시나리오의 주조를 이룬다. 대부분의 내용은 작가인 C 선장이 직접 체험한 배의 이야기이자 항해 기록이다. 그는 철저한 체험주의자다. 체험 없이는 글을 한 줄도 쓸 수 없다고 한다. 어찌 보면 철저한 완벽주의자요, 현장주의자이기도 하다. ‘리얼리스트 최崔’라는 별칭을 들을 만도 하다. 예술과 불후의 명작도 근원은 모방에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그는 모방과 답습을 철저히 배격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론은 그에게 사치에 불과했다. 섣부른 모방은 진정한 창작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지문이나 장면묘사 하나하나를 모두 개인의 영감으로 채운다. 그의 글은 완전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칭 세상사 들은귀가 풍부하지 않은데도 그의 작품세계는 가히 놀랍기만 하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방화邦畵를 보다보면 무의미하고 사소한 스토리에 시간 낭비하고 더군다나 통속성에 자기의 고고하고 순결한(?) 창작정신마저 흐려지게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가령 드라마나 영화에서 밥 먹는 장면이나 집 안에서 전개되는 천박하고 가벼운 스토리에 그는 곧잘 질색을 한다. 그렇다고 그에게 인상깊은 영화가 없는 것도 아니다. <타이타닉>의 그로테스트와 웅장미와 섬세한 제작기법 등에 감탄하고, 임권택의 <서편제>의 서정성과 토착성에 매혹하고, 강제규의 <쉬리>나 박찬욱의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진감과 스릴을 만끽한다.

 

가끔씩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은근히 내비치며 스스로 도취되곤 한다. 실제 남녀가 보쟁이는 장면의 묘사는 일품이다.

“어느 날에는 남녀 주인공이 벌이는 정사 장면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 중인데, 기이한 장면이 섬광처럼 포착됐어. 이른 아침 빠꼼히 열린 창문 틈으로 햇살이 직사광선처럼 쏟아지고 있었어. 빛살에 몰입해 있는데 바퀴벌레 한 마리가 방안으로 재빠르게 기어들어 왔어. 벌레는 인기척에 문지방에서 붙박혀 섰어. 몇 초 뒤에 바퀴 한 마리가 더 나타나더니, 둘은 기다렸다는 듯이 뜨거운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는 거 있지. 결국 그 장면을 지문으로 묘사함으로써 남녀의 정사장면을 처리했지!”

 

그는 거짓말을 전혀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살아오는 동안 선의의 피해도 많았다. 그는 또 불의를 용서치 않는다. 거짓말을 혐오하며 옳은 일이 아니면 어떤 일도 거부한다. 천성이 야젓한 캐릭터인 그는 인간관계에서도 무고한 사람에게 흑책질을 하거나, 말재기나 부지꾼들을 경멸한다. 그의 사상과 완벽주의는 자녀와 손자에까지 전파되었다. 그의 인생관은 일상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선박에서 일하는 해기사의 역량이 ‘커뮤니케이션’ 즉 의사소통(영어회화)에 의해 좌우된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는 승선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지금까지 영어회화 공부를 놓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학창시절 이후 근 60여 년을 영어공부에 매달려온 셈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영어공부는 소홀하지 않았다.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광복동에 있는 외국어학원을 40여 년째 다녔다니 놀라운 끈기이자 고집이 아닐 수 없다. 시나리오도 우리말 뿐 아니라 때론 영어나 일어로 쓰곤 한다.

 

그는 이미 시나리오 작가이자 연출자다.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영화 제작기법이나 영화화하는 일련의 작업을 꿰뚫고 있다. 그는 단순한 시나리오 작가를 초월한다. 시나리오를 쓸 때 영화 제작비용이나 예상 상영시간 등을 미리 조절하면서 완성한다. 미국의 영화 시장과 일본의 영화계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문화관광부 등 정부 요로에 영화관련 문화정책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여, 정부의 회신과 반응을 듣기도 한다. 그는 국내외 영화 관련 시설과 시장, 현장을 두루 섭렵했다.

 

그의 영화에 대한 집념은 목적지가 없다. 시도를 망설이지 않는 그는 어떠한 장벽도 울타리도 문제가 안 된다. 호기심은 풀어야 하고, 궁금증은 즉각 해결해야 한다. 실제 그의 항로에는 지금껏 특별한 장애물도 없었다. 시나리오를 향한 그의 열정은 기항지도 목적지도 없는 기나긴 항해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극도로 호기심이 많은(extremely curious) 늙은이’의 끝없는 항해, 멀고 먼 그의 인생항해는 계속되고 있다.

 

전주에서 태어나 일제 때 전주 북중을 수학한 것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한 C선장. 능숙한 어학실력으로 민간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던 승선생활에서부터 지금까지 국내외 메스컴의 시선도 기인奇人처럼 보이는 그를 비켜가지 않았다. 탁월한 조선操船능력을 인정받아 외국 언론에 가끔 소개되기도 한 그는 최근 지역신문에서 ‘영어 시나리오 쓰는 할아버지’라는 제목으로 클로즈업되기도 했다. C 선장, 그이로부터 나는 인내와 기다림을 배운다. 끈기와 몰입의 의미를 새삼 깨닫는다. 멋있게 늙어가는 지혜를 배우고, 파격과 동시에 비범을 깨우친다.

땅 한 뼘, 육지 한 조각 없는 망망대해다. 아련한 향수를 되새김하며 고지를 향한 끝없는 도전이요, 그의 삶은 신세계를 개척해 가는 기나긴 여정이다. C 선장, 그는 지금도 항해중이다. …………………(하략)…………………

 

□ 김동규, ≪수필과 비평≫ 신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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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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