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리, 또 하나의 아픔(천태봉)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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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리, 또 하나의 아픔

 

인도양을 항해하고 있던 한국 상선 B호에서 내국인 승무원 2명과 미얀마 승무원 2명이 질병에 걸려 사망했단다. 다른 승무원들도 같은 질병 증세를 보이고 있고, 전화 통화로 증상을 들은 육상의 의사는 식중독으로 진단하였단다. 배는 항로를 바꾸어 가까운 육지로 가서 나머지 전 승무원들이 병원 치료를 받고 나아지고 있단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지만 이미 변을 당한 사람들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의학이 고도로 발달하고 각종 병원이 상점들처럼 즐비한 이 시대에 식중독 같은 병은 가까운 병원에 가기만 하면 금방 치유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선원들은 의료가 그렇게 풍요로운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갈 수 없어서 비극을 당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배를 타면서 주위에서 이런 허망한 사고를 종종 봐 왔다. 오래 전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황열에 걸려서 병원에 갔으나 낙후한 시설과 의술로 치료가 되지 않아 생명을 잃고 만 동료가 있었다. 참으로 이역만리 타관에서 아는 사람은커녕 말 통하는 사람도 하나 없는 외진 곳에서 쓸쓸히 운명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는 냉전 시대라 사회주의 국가인 그 나라가 다른 동료 선원이 병원에 같이 있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앙골라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한국으로 오던 중에 그런 비극을 당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인도양의 바다 한 복판에 와서 발병을 하여 아프리카로 돌아가거나 인도로 가기에도 너무 멀었단다. 호주로부터도 헬기의 최대 항주거리를 벗어나는 위치였단다. 며칠 빨리 혹은 며칠 늦게 발병했어도 충분히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극단에 이르지는 않아도 병원치료를 받으면 간단하게 낳을 수 있는 병을 병원에 빨리 가지 못함으로써 불구가 되거나 지병이 되어 고생하는 선원들도 많다. 선박의 작업이 거칠기도 하다 보니 팔다리나 손가락을 다치거나 잘리는 경우도 있다. 육상에서라면 즉시 병원으로 후송하여 조기에 치료을 받음으로써 깨끗하게 낫거나, 접합 수술같은 것도 용이하게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선원들은 시간이 경과하는 바람에 손상 부위를 살리지 못하고 불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이 드신 선배 선원들 중에는 뇌졸증으로 쓰러진 경우도 있다. 이 병이야말로 일각을 다투어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조기치료 시기를 놓쳐 중증의 지병이 되어 평생을 고생하며 사는 분도 있다.

이렇게 안타까운 경우가 많지만, 그 중에는 병이 났던 동료와 더불어 따뜻한 인정을 나누었던 아릿한 추억도 있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오는 중에 파푸아뉴기니아 근해에서 한 동료가 급성 맹장염에 걸렸었다. 맹장이 내부에서 파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료들은 육상 의사의 지시에 따라 응급약을 먹이고 환부에 얼음 찜질을 했다. 신음하는 환자의 손을 잡고 같이 용을 쓰기도 하고, 통증으로 인해 숨쉬기가 어려워진 동료의 허리를 들었다놓았다하면서 호흡을 돕기도 했다. 그렇게 여럿이 애쓴 결과 다행히 터지기 전에 라바울의 병원에 도착하여 정상적인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마치 진통하는 산모의 아이라도 받아 낸 듯 뿌듯하게 회상된다. 고통을 나누면 가족처럼 친밀해진다더니 그 친구가 보고 싶어진다.

지금 내가 타고 있는 배에도 한 동료가 눈이 아프다. 육상의 의사와 전화상담 결과 환인이 눈이 아니고 뇌의 어떤 부분일 수 있다는 얘기에 환자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뇌의 이상 가능성이 있다는 의사의 말에 그는 어서 진찰을 해 보지 못해 불안해 하고 있다. 항구까지는 아직도 일주일이 남았는데, 그 하루하루가 그는 지옥을 헤메고 있지 않을까. 나도 배에서 감기에 걸렸었는데, 빨리 치료를 못해 폐렴으로 발전하여 병원에 한 달 이상을 입원한 적도 있다. 사랑니가 날 때는 바로 뽑기만 했으면 되었을 것을 병원에 가지 못하여 문제를 키우기도 했다. 아픈 것을 참고 있다가 나중에 칫과에 갔을 때는 그것이 나오면서 어금니를 밀어 어금니가 들떠서 그것까지 뽑아야 했다. 그것을 의치로 해넣고, 또 승선 중에 탈이 났다. 나중에 칫과에 갔을 때는 그 앞의 어금니까지 뽑아야 했고 그 앞의 송곳니까지 손상돼 있었다. 다시 의치를 해 넣고 있다가 또 탈이 나서 나중에는 임플란트를 했는데, 또 바다에서 염증이 생겨 박았던 것을 빼고 다시 심어야 했다.

이러다 보니 혹시 배에 오르면 어떤 병이라도 걸릴까봐 걱정이 된다. 나는 감기에 한 번 걸리면 오래 가는 경향이 있어서 배에서 감기 증세가 약간만 보여도 신경이 쓰인다. 허리가 아픈 적이 있어서 또 그런 일이 생길까도 걱정된다. 변비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배에 나갈 때는 그 약들을 가방에 잔뜩 가지고 간다. 다행히 먹을 일이 생기지 않아서 버리곤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반복한곤 하다. 휴가 중에도 어디가 조금만 아프면 배에 나갈 때까지 계속 그럴까봐 염려가 되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곤 한다. 그러는 나를 보고 아내가 엄살을 부린다고 핀잔을 준다. 그러면서 자기는 어디가 얼마나 아픈데도 참고 있다고 자랑한다. 왜 병원에 안 가느냐고 물으면 좀 더 있어보고 계속 그러면 가겠단다. 하긴 사람의 몸은 좀 아프다가도 시간이 자나면 저절로 낫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그런 말이 서운했다. 자기네들 먹여 살리는데 차질이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는 남자의 책임감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다. 뱃사람의 아내라는 사람마저 그들의 그 격리성에 대해서 인식이 그러니 남들이야 오죽하겠나 싶다. 같이 배타는 동료가 마누라보다 가깝다더니 나의 그런 조바심을 이해해줄 사람은 동료 선원들의 이심전심 밖에 없는 것 같다.

아프리카 정글에 사는 동물들의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보면 아무리 용맹스런 사자라도 어쩌다가 조금 다치면 그것으로 요절하고 마는 경우를 간혹 본다. 얼룩말을 잡으려던 사자가 그의 뒷발에 채여 다리를 다쳐서 절룩거렸다. 사람같으면 그냥 좀 쉬거나 부러졌더라도 부목이나 대어서 묶어두면 저절로 뼈가 붙어서 다시 건강을 되찮아 활기찬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자는 다리를 잘 못쓰게 되니 하이에나 같은 작은 동물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잡아 먹히고 만다. 뱅골의 어떤 호랑이는 고슴도치에게 호기심을 보였다가 그 침을 맞고 그것을 빼지 못해 염증이 되어 결국 죽고마는 경우도 보았다. 손이 발달한 사람이라면 그 침을 스스로 뽑아버리거나 손이 닿지 않더라도 주위 사람이 간단하게 뽑아줄 수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손이 닿지 않는 등을 서로서로 긁어 주듯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도우면서 살게 되어 있는 인간의 사회 시스템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정다운 것인가를 실감하게 해 준다. 망망한 바다 한 가운데 있는 우리 선원들은 그런 간단한 도움을 받지 못해 생명을 잃거나 불구가 되기도 한다. 뱃사람에게는 황천 항해의 고달픔이 있고, 그들의 가슴에는 정다운 이들과의 이별이 주는 아픔이 있다. 여기에 더하여 세상과의 격리가 주는 또 다른 고통이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흔한 것이지만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써 혜택받지 못하여 비극을 당하는 슬픔이다. …………………(하략)…………………

 

□ 천태봉, ≪해양과 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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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11, 12호 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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