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 수록 더 궁금해지는 바다 이야기(김미진)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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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록 더 궁금해지는 바다 이야기

                                                           ―전호환 교수의 󰡔배 이야기󰡕

 

여전히 바다는 신비와 무지가 교묘하게 섞여 있다. 해안에서 볼 수 있는 푸른 바다의 끝없는 확장일거라 짐작하지만, 바다는 아직도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미지의 공간이다. 쉽고 재미난 해양문화서, 해양과학서가 그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사실은 삼면이 바다인 지리학적 조건에 역행하는 대중의 해양의식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문학 작품 역시 바다와 개인을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하지만 대중이 보다 편하게 읽을 다양한 해양관련 분야의 서적이 없는 것은 결국 빈곤한 해양문화 창조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출판해봤자 팔리지도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생각을 극복하고 해양인문학이 침묵을 깨고 독자 대중에게 다가갈 때 참된 의미의 해양선진화는 비로소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매체, 다양한 수준의 지식이 독자와 만날 때 해양과 관련된 다양한 지식들의 대중화는 앞당겨질 수 있다. 가령 󰡔신의 물방울󰡕이라는 일본 만화를 통해 포도주에 대한 지식이 우리 사회에서 대중화되고, 최근 방영중인 TV 드라마를 통해 클래식 음악과 조선미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불타오르게 된 것은 그냥 지나쳐버릴 현실이 아니다. 결국 어떻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관심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의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 따라 앞으로의 해양문화가 새롭게 달라질 수 있다.

지식의 접근성을 고려한 다양한 해양관련 분야 서적의 대중화는 새로운 해양관 정립의 초석이 될 뿐만 아니라 바다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는 해양작가들에게는 창작의 실질적인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다. 해양이 가지고 있는 제한적인 접근성으로 인해 여전히 많은 작가들은 바다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다. 몸소 쌓은 풍부한 실제 경험을 토대로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테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러한 행운을 누리지 못한다. 보지 못하고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바다의 모습을 상상력으로 메워 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해양학 관련저서의 독서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아는 것과 몸소 체험하는 것이 결코 같을 수 없지만 제대로 아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 점에서 바다를 향한 지적 갈증을 해소해줄만한 쉬운 해양과학 저서들이 최근 들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다. 그 가운데 초여름에 출판된 전호환 교수의 󰡔배 이야기󰡕(부산과학기술협의회, 2008)를 보면 먼저 전문적인 기술서적이 강요하는 엄청난 집중력을 강요하지 않아 무엇보다 읽기가 편하다. 과학이라고 하면 왠지 자꾸만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인문학적 머리구조에 맞춘 책이라 할 수 있다. 자신들이 내려오기보다는 머리가 금방 어지러워지는 상아탑 속으로 올라오기만을 바라는 자연과학 책들과는 달리 󰡔배 이야기󰡕는 철저히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다. 노아의 방주로부터 대중이 잘 모르는 선사시대 한반도의 조선기술, 오늘날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제일의 선박생산국으로서 우리가 가진 첨단조선기술에 이르기까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총 48개의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독자들을 기다린다. 책 속 이론을 넘어 저자가 선박 설계와 개발의 최전선에 서 있음을 증명하듯 그가 들려주는 선박 생산 관련 증언들은 물 아래 숨겨진 거대한 빙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스무 번째 이야기인 ‘밸러스트 수(Ballast Water)’에 대한 소개가 단연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겠다. 싣고 갔었던 화물을 비우고 다시 돌아올 때, 배는 가벼워진 무게 때문에 물에 잠기는 깊이, ‘흘수’라는 것이 얕아진다고 한다. 그 흘수가 얕아지면 배의 안정성이 나빠지기 때문에 배 밑바닥과 측면의 일정한 구간에 밸러스트 탱크라는 것을 만들어 물을 채운다. 20만 톤의 화물선인 경우 약 8만 톤의 해수가 밸러스트 탱크 속에 채워지고,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한 후 연안에 버려지는 해수가 전 세계적으로 추산을 해보자면 약 100억 톤 이상에 이른다고 한다. 다 똑같은 바닷물인데 그게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생각하지만, 타 연안에서 그렇게 버려지는 밸러스트 수안에 각종 물고기 알, 플랑크톤, 게, 박테리아 등의 다양한 해양생물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게 하여 하루 동안 약 3천 여 종이 넘는 해양생물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밸러스트 수를 통해 유입된 외래 해양생물종이 실제로 토종 먹이사슬의 균형을 왜곡하고 파괴하는 경우가 전 세계적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생각 없이 하는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밸러스트 수를 통한 생태계 교란과 파괴를 막기 위해 2009년부터 건조되는 모든 배에, 2016년부터는 기존의 모든 선박에까지 밸러스트 수 처리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고 하니 늦었지만 그마나 다행이다. 하지만 화학약품을 통해 밸러스트 수안의 생물을 죽이는 것이 또 다른 해양 환경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 수천 종의 해양 생물을 위험 없이 모두 제거할 수 있는 친환경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한다. 약 연 7000억 원의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하니 바다의 새로운 블루 오션 분야임이 틀림없다.

스물두 번째 이야기인 ‘스카이 세일’ 또한 독자에게는 흥미로운 발견거리다. 2006년 9월, 독일의 벨루가 해운사에서 길이 55미터, 무게 800톤의 화물선에 160제곱미터의 큰 연을 달아 연료비를 30퍼센트까지 줄였다고 한다. 4년간의 실험으로 개발되었다는 배를 끄는 연은 최적의 바람 상태에서 약 50퍼센트까지 연료 절감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니 유류비용을 줄이고 환경보호를 실천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발명품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미 바람을 이용해 연료비를 줄이려는 노력은 1978년 석유파동 때도 나타났었다고 한다. 화물선 갑판에 기둥을 설치, 돛을 달아 운행을 했다고 하는데 1980년 중반 이후, 석유 값이 급락으로 돌아서자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예전의 돛에 비해 설치 및 조종이 훨씬 더 쉬워진 스카이 세일은 100에서 300미터 상공의 바람을 이용하기 때문에 돛보다 효율성이 더 높다고 한다. 일시적 대안을 넘어 연을 단 배가 바다를 쉼 없이 누빈다면 지구 온난화를 실질적으로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의 지적대로 전 세계로 배출되는 온실가스 가운데 산업시설, 자동차에 이어 선박이 3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더더욱 스카이 세일의 상용화를 기대해본다. 물론 보다 근본적으로는 에너지 절약형의 선박 개발이 시급할 것이다.

제목에 맞게 저자는 아주 다양한 배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기존의 배가 가진 문제점들을 극복하면서 깜찍한 상상력과 고도의 기술로 새로운 선박을 창조해낸 이야기는 매우 신선했다. 예로, 기존의 LNG 운반선에 액체가스를 기체로 바꾸는 장치를 설치, 배에서 곧바로 소비자에게 가스를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든 LNG-RV선이나, 얼음을 깨면서 원유를 운반할 수 있는 쇄빙유조선, 바다에서 원유를 채취한 뒤 바로 그 자리에서 정유까지 할 수 있는 FPSO 등 선박의 역사에 새로운 시대를 연 배들이 대한민국 조선 산업의 빛나는 발명품이었다는 친절한 설명은 뒤늦었지만 전혀 몰랐던 가슴 뿌듯한 발견을 대중에게 제공한다. 열두 번째 배 이야기인 ‘날아가는 배 위그선’의 존재 역시 그 자체가 놀랍기만 하다. 서른 번째 이야기인 ‘방오 페인트’의 소개 역시, 그간 전혀 몰랐기에 호기심조차 가지지 못했던 부분 가운데 하나인데, 저자의 표현을 빈다면 배 역시 여성처럼 세상 밖으로 나서기 전에 화장을 한단다. 도장이라 불리는 이 마지막 작업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선주에게 인도되고 첫 항해를 시작한다고 한다. 도장 작업은 먼저 철판의 부식을 방지하는 방식 페인트를 바르고, 그 후에 바다 생물의 부착을 방지하는 방오 페인트를 바르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녹조류와 홍조류 등의 식물로부터 조개류, 따개비 등이 선체에 부착되어 배 표면이 1밀리미터씩 거칠어질 때마다 연료 소모율이 자그마치 10퍼센트씩이나 증가한다고 하니 방오 페인트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일단 건조만 되고 나면 아무 일 없이 바다를 십 수 년 넘게 누비는 줄 알았는데 사람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니 눈에 보이는 손길 너머로 얼마나 많은 숨은 손길이 있을지 상상해보게 된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방오 페인트의 역사가 선사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인데 오래된 서구 해양시에 흔히 등장하는 항구에 진동하는 타르나 아스팔트 냄새도 알고 보면 그 같은 재료들이 방오제로 사용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1970년, 유기 주석화합물을 포함한 TBT라는 이름의 페인트가 생산되면서 선박 표면의 생물 부착이 원천봉쇄 되었지만 도료에서 나온 유기 주석화합물이 물에 서서히 녹아 해양생태계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아 2003년부터 사용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TBT 대신 아산화동이라는 물질이 포함된 방오 페인트가 만들어졌으나 이 역시 중금속 성분으로 환경 오염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친환경 페인트 개발이 시급한 시점에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처럼 이미 잘 알려진 배로부터 처음 듣는 생소한 배에 이르기까지 -노아의 방주로부터 바이킹선, 중국의 정화함대, 장보고의 무역선,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 호, 타이타닉, 우리나라에 축구를 전해줬다는 플라잉 피시 호, 세계 세 번째로 우리 기술로 완성시켰다는 이지스 급 구축함인 세종대왕 함에 이르기까지- 친절한 저자의 소개 속에 독자들은 다양한 배들과 짧은 만남을 가질 수 있다. 아울러 배를 둘러싸고 소리 없이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해양 기술 전쟁의 면면을 엿볼 수 있다.

지식의 단순한 전달을 넘어, 호기심과 상상력을 기분 좋게 자극하는 「배 이야기」의 매력은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는 그의 신념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배를 많이 만든다고 바다를 다스릴 수 없고 해양민족이 될 수도 없다. 진정한 해양민족은 바닷길을 열어 바다를 알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배와 바다에 관한 이야기, 춤, 축제, 연극, 영화, 노래, 시와 소설이 우리 주변에 넘쳐나야 된다. 삶 속에서 바다를 노래하고 배를 이야기하는 해양문화가 우리 몸에 깃들어야 한다’. 전반적인 해양문화의 부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조선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가 깊다. 상상력을 강력하게 자극하는 바다와 배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과 함께, 길고긴 여행에서 힘을 실어주는 길동무를 우연히 만난 것 같은 느낌을 해양작가들은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뛰어난 기술과 상상력으로 세계 조선 산업을 평정하면서 진정한 해양국가로 가는 길은 활짝 열렸다. 나머지 절반은 작가들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과 대중에 의해 완성되어야 한다.

「배 이야기」는 머리말에서 저자가 미리 밝힌 대로 신문에 연재되었던 자신의 글을 보충, 확장, 새로이 편집한 것이다. 일부에서 보이는 기술의 중복 문제나 명쾌한 설명에 비해 선명도가 떨어지는 몇몇 사진 자료를 제외하고는 대중의 눈높이를 철저히 배려한 ‘친절한’ 선박해양기술서다. 여태껏 전혀 몰랐기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다양한 배들의 이야기와 함께 상상력과 영감을 강력하게 자극하는 바다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덤으로 한국의 장인들이 만든 배가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며 희망찬 한국의 미래를 꿈꾸게 한다. 내친 김에 이보다 한 발 앞서 출판된 나송진의 「재미있는 배 이야기」(부산지방해양수산청, 2005)나 채수종의 「배 이야기 1」(지구촌, 1996), 「배 이야기 2」(에프케이아이미디어, 2006)를 함께 독서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하략)…………………

 

□ 김미진, 문학박사, 저서 '프랑스 문학으로 다시 쓰는 바다 발견의 역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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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11, 12호 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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