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대한민국 해양영토대장정을 다녀와서(권선희)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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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대한민국 해양영토대장정’을 다녀와서

 

- 평택항, 설레는 출항

 

거울 속 내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굽 높은 샌들에 선그라스며 창이 너른 모자로 한껏 멋을 부렸지만 똥자루 만한 키에 큰 가방을 끌고 노트북, 카메라까지 주렁주렁 단 모습이라니. 혼자서는 기차에 오르지도 못할 폼새였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차림으로 8월 4일 아침 포항을 출발해 평택에 닿았다. 쨍쨍한 햇살은 쏟아지지, 퉁퉁 부은 발은 이미 돼지 앞다리지, 짐은 많지, 길은 낯설지 “아이고 이 여편네야 누가 본다꼬 그 모양으로 나서노. 마 운동화 신고 단출하니 가믄 좋겠고마.” 남편의 말이 거기까지 따라와 쟁쟁거렸다.

마흔 다섯 살, 나는 13박 14일 동안 진행된 ‘제1회 대한민국 해양영토대장정’에 르포 작가로 참여했다. 해양문화재단(이사장 최낙정)과 (사)전국해양산업총연합회(회장 이진방)가 주최한 이 행사는, 국토해양부를 비롯하여 2012 여수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 한국선주협회, 삼성중공업, 대한통운, POSCO, 한진중공업, 한국도선사협회, 한국선급, 황해객화선사협회 등 많은 단체가 후원하고 해군과 목포해양대학교, 한국해양대학교가 함께 했다. 뿐만 아니라 생생한 일정을 담기 위해 YTN, KBS, 이데일리 등 방송팀과 의료진, 행사 진행자까지 동행하였으니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유수한 해양관련 기업과 단체의 관심과 격려 속에 진행 된 대장정인 셈이다. 11.1대 1이라는 경쟁률과 까다로운 절차를 뚫고 당당하게 선발된 104명의 대학생들과 짙푸른 바다를 보름 남짓 항해하는 일, 백령도에서 마라도, 독도까지 우리나라의 서해 남해 동해를 잇는 2,100㎞ 바닷길을 도는 것은 한 평생을 통틀어도 쉽게 오지 않을 기회였다. 게다가 막연한 항해가 아니라 목포, 해남, 여수, 제주, 마산, 울릉도, 부산에 이르는 기항지마다 내려 바다를 향한 사람들의 삶과 터전을 디디며 만지고 느끼는 일정이었기에 그 의미는 더욱 값진 것이었다.

 

8월 5일 오후 5시, 평택 2함대에서 출항식을 마치고 해군 상륙지원함 고준봉함(LST)에 올라 백령도로 향했다. 우리가 향하는 곳이 분단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백령도였기에 군함을 이용하는 첫 항해의 의미가 더했다. 이사장도 학생들도 그리고 스태프도 똑같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니 그제야 ‘우리는 한 배를 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짐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일정을 논의하는 동안 거대한 군함은 굉음을 내며 밤바닷길을 나아갔다. 좁은 침상에 누워 수많은 생각으로 바다와의 설레는 첫 밤을 맞았다. 멀리서 태풍 모라꼿이 따라 오고 있었다.

 

 

- 서해 최북단 섬 , 백령도

 

8월 6일 새벽 6시, 백령도에 닿았다. 평택항을 출발한 지 약 13시간 만이다. 일정대로라면 1박을 하며 해병 대원들과 교류의 장을 갖고 또 백령도 곳곳의 풍광이나 군사적, 지리적 현실을 꼼꼼히 둘러보아야 했다. 그러나 태풍으로 인해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현실, 운영자들은 수시로 전해오는 상황에 대처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결국 사곶으로 가서 해병대 IBS훈련을 한 뒤 서둘러 배로 돌아와 다시 평택항으로 귀항한다는 결정이 났다.

함정은 부근 바다에 떠있고 우리는 운반선을 이용해 장촌 포구로 올랐다. 주의사항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 구명조끼를 입혀주며 매무새를 야물게 묶어주었다. 운반선 정원은 21 명이었으므로 스태프와 운영진을 포함한 약 140여 명의 인원이 모두 이동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장촌리 물항장에서 해병대 버스를 타고 도착한 사곶해수욕장, 세계에서 두 곳 밖에 없는 규조토 해변으로 길이가 약 3km에 달하며 바닷물이 빠져나간 백사장엔 300m 가량 단단한 도로가 생겨 군수송기가 이, 착륙할 수 있는 천연활주로가 되기도 하는 곳이다. 고운 모래가 펼쳐진 그곳에서 훈련 중인 해병대원들의 그을린 모습과 스무 척의 검은 보트가 대기하고 있었다. 신이 나서 손을 흔들고 함성을 지르던 학생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떨어지는 불호령에 서둘러 구명조끼와 작업화를 신고 정렬해야 했다. 최낙정 이사장 역시 국방색 구명조끼를 갖추고 학생들 틈에 들었다. 몸을 풀기 위함이라지만 혹독한 체벌에 가까운 동작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우로 굴러, 좌로 굴러, 온 몸이 젖고 흙투성이가 되면서 장난 아니다 싶은 지 사뭇 진지해졌다. 150㎏이나 되는 고무보트를 6명이 들어 올리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모두들 후들거리는 팔다리로 악을 쓰며 바다에 뛰어 들었다. 하나 둘, 하나 둘, 구령 맞춰가며 죽기 살기로 노를 저었다. 부딪쳐 뒤집히면 다시 세우고 기어오르며 그렇게 바다와 온몸으로 뒹굴었다. 오후 두시 반, 늦은 만큼 점심식사는 행복했다. 물 한 바가지씩 뒤집어쓰는 것으로 샤워를 대신하고 젖은 채로 해병대원들이 준비한 한 끼 양식을 감사히 먹었다. 모래밭에 옹기종기 앉아 물기 먹은 몸을 서로 당겨 앉으며.

해병 6여단에 도착하자 여단장과 장병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백령도 소개와 해병들이 바다를 사랑하는 이유와 안보의 필요성에 대한 강연, 그리고 준비한 영상을 보여 주었다. 그들이 왜 거기에 있는 지, 왜 거기 있어야 하는 지, 있고자 하는 지 충분히 알게 된 시간이었다.

해병대원들은 태풍 때문에 친구가 되고 누이가 되고 아우가 되어 손을 잡고 노래하는 시간이 실종 된 것이 못내 아쉬운 듯 짠지떡을 잔뜩 전해 주었다. 두툼한 밀반죽에 속을 넣은 그것은 마치 만두와 비슷하였으나 훨씬 더 든든하게 허기를 채워 주었다. 장촌리 포구 시멘트 바닥에서 큼지막한 짠지떡을 나눠 먹던 그 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노랗게 핀 해바라기 한 무더기가 배웅 하던 저녁 무렵의 백령도를 뒤로 하고 다시 함정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육로를 이용해 목포에 도착, 목포해양대학교 실습선 새누리호에 승선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태풍에 맞설 수는 없는 것, 인생의 항해 중에도 태풍을 만나 우회 해야만 하는 순간이 분명 있으리라. 순응을 배우며 고단한 몸이 잠 든 내내 배는 평택항으로 귀항하고 있었다.

 

 

- 다시 평택, 그리고

 

8월 7일 새벽 6시, 갑판에 오르니 뿌연 하늘로 빗줄기가 치고 있었다. 섬을 지나면 다시 섬이다. 둥둥 떠 있는 봉긋하거나 나지막한 섬이 치는 둥둥 북소리가 정겹다. 백령도에서의 고무보트 체험으로 온몸이 천 근 만 근이련만 젊음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싱싱하게 살아 난 모습으로 저마다 속한 조의 깃발을 꾸미느라 함정 안은 요란스러웠다. …………………(하략)…………………

 

□ 권선희, 저서 시집<구룡포로 간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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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지면 : <해양과 문학>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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