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김희진) -바다로 간 한국영화 2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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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간 한국영화 2

 

김약국의 딸들

 

1962년 발표된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은 올 해 작고한 한국영화의 거목 유현목 감독을 통해 1963년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의 바닷가 마을 통영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한 가족의 몰락 과정을 보여주며 어촌의 다양한 생활상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운명이라는 주제와 어울려 묘사되는 바다와 그와 결부된 삶의 모습은 일제강점기의 고난과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에서의 가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먼저 소설 첫 머리에 묘사된 통영의 풍경을 살펴보자.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닷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큰 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현해탄의 거센 파도가 우회하므로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은 온난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통영 주변에는 무수한 섬들이 위성처럼 산재하고 있다. 북쪽에 두루미 목만큼 좁은 육로를 빼면 통영 역시 섬과 별다름이 없이 사면이 바다이다. 벼랑가에 얼마쯤 포전이 있고 언덕배기에 대부분의 집들이 송이버섯처럼 들앉은 지세는 빈약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연 어업에, 혹은 어업과 관련된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면 통영은 해산물의 집산지이기도 했다. 통영 근처에서 포획하는 해산물이 그 수에 있어 많기도 하거니와 고래로 그 맛이 각별하다 하여 외지 시장에서도 비싸게 호가되고 있으니 일찍부터 항구는 번영하였고, 주민들의 기질도 진취적이며 모험심이 강하였다.”

 

통영은 아름답고 풍족한 유토피아적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어업을 통해 먹을 것이 풍족한데다 천해의 절경을 함께 갖고 있으므로 누구든 살고 싶고 한번 살면 떠나기 싫은 곳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 작품은 꿈같은 통영에서 펼쳐지는 비극을 다루고 있다. 꿈이라면 악몽이라 불릴 이 이야기는 남의 것이 될지언정 내 것이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내용이다. 왜 통영에 이런 비극이 생겨났을까. 소설 두 번째 문단에서 여기에 대한 단서를 조금 읽어낼 수 있다.

 

“이와 같은 형편은 조상 전래의 문벌과 토지를 가진 지주층들-대개는 하동, 사천 등지에 땅을 갖고 있었다- 보다 어장을 경영하여 수천금을 잡은 어장 아비들의 진출이 활발하였고, 어느 정도 원시적이기는 하나 자본주의가 일찍부터 형성되었다. 그 결과 투기적인 일확천금의 꿈이 횡행하여 경제적 지배계급은 부단한 변동을 보였다. 실로 바다는 그곳 사람들의 미지의 보고이며, 흥망성쇠의 근원이기도 하였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타관의 영락한 양반들이 이 고장을 찾을 때 통영 어구에 있는 죽림고개에서 갓을 벗어 나무에다 걸어놓고 들어온다고 한다. 그것은 통영에 와서 양반행세를 해봤자 별 실속이 없다는 비유에서 온 말일게다. 어쨌든 다른 산골지방보다 봉건제도가 일찍 무너지고 활동의 자유, 배금사상이 보급된 것만은 사실이다.”

 

원시적인 자본주의로 인해 투기가 횡행하여 경제적 지배계급의 변동이 잦았던 통영의 내막이 이 작품의 비극을 설명하는 하나의 단서가 될 것 같다. 곧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전통적인 가족의 몰락을 통해 비극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소설과 다른 입장을 일부 가지고 있다.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희망적으로 매듭지으려고 하는데 전통적 가치를 어느 정도 보듬으려하는 이 태도는, 전통적 가부장제의 몰락이 아니라 그 가치로 다시 회귀하려는 듯 보인다. 이 점은 여성인 소설작가 박경리와 남성인 영화작가 유현목의 입장 차이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요구가 대중영화라는 틀에서 전통 체제의 몰락이라는 비극성을 수용하지 않고자 했던 경향으로도 읽혀진다.

 

유현목 감독은 일생 동안 43편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의 성장 배경에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그늘이 늘 드리워져 있다. 한국적 한과 기독교의 갈등이 그의 영화에선 자주 등장한다. 곧 전통과 근대의 대립이 늘 배경에 깔려 있다고 하겠다. 그의 이러한 갈등은 특히 바다를 묘사할 때 바닷바람과 폭우로 잘 형상화 된다. 그의 대학시절 단편영화가 <해풍>이었다는 점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바다를 직접적으로 다루거나 어촌을 다룬 유현목 감독의 대표적인 작품은 <김약국의 딸들>과 그의 마지막 작품 <말미잘>이 있다. 대부분의 그의 작품이 당대의 대표적인 소설이나 희곡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그가 원작으로부터 이끌어내는 주제는 인간의 비극과 그에 상응하는 삶의 희망이다. 특히 <김약국의 딸들>은 이 주제 의식에 걸맞은 대표적인 작품이며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자연과 신의 문제, 곧 구원에의 좌절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인간의 고통을 묘사하는 방법으로 자연적인 요소를 자주 사용한다. <김약국의 딸들>에서 해풍이 불어오고 천둥과 번개, 폭우가 비극을 강조하고 예시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극은 자연스럽게 기후 현상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유현목 감독의 대표작 <오발탄>이 그러했던 것처럼 <김약국의 딸들>에도 집안에 대한 책임감으로 고민하는 주요 등장인물이 존재한다. 둘째 딸 용빈은 신문명 교육을 받은 신여성으로 전통적인 가족과 통영의 삶을 관찰하고 또 그에 반응하는 인물이다. 집안이 몰락해가는 과정 속에서 주요 사건의 증인이 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그 모든 결과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물로 이 작품의 주제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소설과 달리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용빈의 모습은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로의 회귀를 상징하며, 이는 사회 개혁이나 변화는 필요하나 전통적인 가족 유대는 이어져 가야 한다는 유현목 감독의 의지로 읽힌다. 소설만큼 현실적이지 못한 결론이나 이를 합리화하고 대중에게 봉합시키는 유현목 감독의 영화 연출은 뛰어나다.

 

영화는 김약국 집안의 비극적 역사에서 시작된다. 천천히 천정에 매달린 약봉지들을 보여주며 벽 한 켠에 놓인 약재 장롱을 보여주는 오프닝은 이 가계가 전통적인 한의사 집안임을 제시한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비극의 현장은 김약국이 앞으로 맞이하게 될 비극의 전조이자 동기가 되며, 비상 먹고 죽은 어머니의 원혼에 의해 지배받는 김약국 가족의 비극은 이후 멈추지 않는다. 집안에 비상을 둘 수 있는 약국 집안임을 싫어했던지 김약국은 약국을 더 이상 운영하지 않고 어업에 전 재산을 바친다. 더 이상 어머니와 같은 비극이 만들어지길 원치 않아서일 것 같은 이 의도가 더 큰 불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김약국에게는 딸만 다섯이 있다. 일찍 과부가 되어버린 큰 딸 용숙, 서울로 공부를 하러간 둘째 딸 용빈, 천방지축 말괄량이 셋째 딸 용란, 심성 고운 넷째 딸 용옥, 그리고 막내 딸 용혜이다. 소설과는 달리 영화는 다섯째인 용혜를 드러내지 않는다. 결말을 다르게 이끌어가는 영화는 용혜의 존재를 감추고 용빈이 전통사회에 머무르게 한다. 소설에선 용빈이 용혜를 데리고 서울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통영과 서울은 전통사회와 개화된 사회의 비교점이 되며 소설에서 용빈은 집안의 비극을 더 이상 지속시키고 싶지 않은 바람으로 아버지의 죽음 이후 서울로 향하지만, 영화에선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통영에 남음으로서 전통의 가치를 지켜야 함을 강조한다.

김약국의 딸들은 마치 김약국이 기두를 통해 운영하는 어장이나 선박에 비교될 수 있다. 바다나 배는 모두 여성적 상징이자 어머니의 상징이다. 그 어장이 망하고 선박이 좌초하는 사건들은 곧 김약국 집안의 몰락, 딸들의 불행으로 연결된다. 거친 자연을 대상으로 살아가는 이 땅의 여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비극이 어업 행위의 고난과 연결되는 것이다. 여기에 여성으로서의 욕망들이 첨예하게 갈등을 일으키고 생의 욕구와 관련된 자본의 삶과 피폐화된 남성적 삶의 충돌이 비극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영화 첫 머리부터 통영에는 바람이 불어오고 비가 쏟아진다. 비극의 순간, 살의의 순간에 불어오는 바람은 영화의 마지막 어머니의 죽음에 절정을 이룬다. 번개가 내리쳐 나무에 불이 붙는 살인의 징조는, 살기위해 닭의 모가지를 자르는 굿판의 행위와 사위가 휘두르는 도끼의 날이 어머니를 강타할 때의 전율과 동일하게 묘사된다. 통영 땅에서 바다만 바라보고 사는 이들에게 풍랑은 곧 죽음을 연상 시키고 자연이 휘두르는 폭력은 곧 인간의 폭력으로 이어진다.

김약국의 비극은 단지 어머니의 자살만으로 시작된 건 아니라고 본다. 일제의 지배 하에 주요 어장을 빼앗긴 통영의 환경과 이를 기반으로 고리대금을 일삼는 친일의 무리, 변모하는 세상에서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숨기지 않으려는 딸들의 행동, 전통적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이 누린 지배적 관념과 행위들, 젊은이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세상에 몸을 던지는 과정에서 분열되는 전통적 가족 관계 등 김약국의 비극은 단지 한 사람의 비극, 한 사람의 이유에서 비롯되는 고통이 아니라 당시 시대가 안고 있던 총체적인 비극성의 종합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이러한 비극의 들고 나감은 바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바다의 변화무쌍함이 곧 삶의 다양성이 되고 그건 때때로 예측 불가능한 비극의 현장을 만들어낸다.

<김약국의 딸들>은 구수한 통영 사투리를 잘 살리고 있다. 객지 생활을 한 이들은 통영을 통영이라 부르지만 그곳에 붙박아 살아온 이들에게는 통영은 통영이 아니라 토영이다. 그들 입에서 남도의 사투리가 사용될 때면 비린내 같은 냄새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언니를 생이라 부르는 동생들에게 통영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삶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고, 아무리 시집살이가 고단하더라도 그 이상의 다른 삶을 꿈꿀 수도 없다. 그저 먼 바다만 바라보며 피붙이들을 돌보는 것이 전부인 이들 여성들은 바다 이상의 신비감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고통에 자리 잡혀 있다.

영화는 김약국 집안의 어장에서 다시 고기가 잡히며 희망을 꿈꾸면서 마무리가 된다. 특히 넷째와 결혼한 기두는 통영을 떠날 생각을 하지만 결국 뱃놈으로서의 삶을 인정하는데 이는 소설과 너무 큰 차이를 가진다. 소설은 기두를 찾아 부산에 갔다 돌아오는 배가 난파되어 용옥이 죽는 것으로 쓰여졌지만, 영화는 한돌을 잃고 미친 용란이 배에서 떨어져 죽고 용옥은 기두와 행복하게 살 것 같은 설정으로 마무리된다. 욕망을 참지 못한 용란은 당연히 죽어 마땅하고 순종하며 살고 있는 용옥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전통적인 윤리관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뱃놈은 어쩔 수 없다 하고, 용옥에게는 마음을 주지 못하고 술집을 전전하던 기두가, 영화에서 변모하는 모습 또한 실제 삶을 정확히 묘사하길 피하는 영화적 온건주의라고 하겠다.

 

유현목 감독의 <김약국의 딸들>과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은 결말이 상이하긴 하지만 근대 어항인 통영의 모습을 묘사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영화가 소설보다 더 시각적, 청각적 표현을 많이 동원하고 있고 직접적으로 통영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소설은 구수한 사투리를 읽는 재미와 삶의 비극적 속성을 꿰뚫는 작가의 정신세계를 만날 수 있다.

동양의 나폴리, 통영의 바다는 소설과 영화처럼 무수한 아픔과 고난 속에서 지금의 아름다움을 지켜오고 있다. 사람이 머무는 곳에 비극이 있을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이란 그 비극으로부터 벗어나길 바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통영의 바다처럼, 또는 영화나 소설처럼 그 결과는 알 수 없고 언제나 생각과는 다르게 펼쳐지는 것 같다. 바다로 나간 사람들보다 바다로 나간 이들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바다가 없다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없었던 사람들의 살아있는 생생한 현장을 <김약국의 딸들>은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쇠약해진 김약국은 언덕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서있다. 그는 돌아오는 용란을 바라보며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푸른 통영의 바다를 보고 있었던 것일까, 갑자기 그 점이 궁금해진다. ……………………(하략)……………………

 

□ 김희진, 독립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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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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