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파도를 헤치고

등록일202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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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파도를 헤치고

김재철(1935~.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 수록됨)

 

 

5월 5일

피낭을 떠난 우리 光明號(광명호) 船團(선단)은 수마트라의 북쪽을 돌아 곧, 탁 트인 印度洋(인도양)에 들어섰다.

 

大洋(대양)으로 나오자, 남서계절풍이 알맞게 불어 더위를 식혀 주고, 물빛은 맑다 못해 쪽빛으로 빛나니, 그 속에 비친 흰 구름은 두둥실 물 속을 난다. 우리나라의 다랑어 漁業(어업)은 그 동안 사모아를 중심으로 하여 發展(발전)하여 왔을 뿐, 인도양은 파도가 거칠다 하여 모두들 出漁(출어)를 망설이던 곳이지만, 低緯度(저위도) 海域(해역)이라 그런지 평온한 날씨에 바다는 그지없이 잔잔하다.

 

그러나 험하기로 이름난 인도양에 새 어장 개척의 사명을 띤 첫 출어인지라 선원은 모두 긴장하고 있었다.

 

 5월 8일

 

바다의 아침은 곱고도 정열에 타오른다. 동녘 수평선이 곱게 물드는가 싶더니, 붉고 장엄한 태양이 불쑥 솟아올랐다. 잔잔한 海面(해면)엔 수없는 고기 떼가 亂舞(난무)하고, 크고 작은 갈매기들이 물을 차고 날며 바다의 아침을 맞았다.

 

망망한 바다, 눈부시게 타오르는 햇살, 水面(수면)을 나는 날치 떼들! 이 자연의 造化(조화)가 진정 놀랍기만 하다.

 

바다는 그지없이 넓고 크다. 바다에 사는 한, 노아의 洪水(홍수)가 다시 일어난다 하더라도 바다에 뜬 우리에겐 두려울 것이 없고, 설령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수소폭탄을 터뜨린다 할지라도 우리는 인류 최후의 生存者(생존자)로 살아남을 것 같다.

 

며칠째 順航(순항)이 계속되니 船員(선원)들은 한결 緊張(긴장)이 풀려, 낮이면 漁具(어구)를 손질하기에 바빠도, 밤이면 南十字星(남십자성) 아래에서 閑談(한담)의 꽃을 피우고, 뱃전에 서선 조용히 콧노래를 불렀다.

 

5월 12일

 

피낭을 떠난 지 7일째 되는 날, 스리랑카의 남쪽으로 약 300마일 떨어진 北緯(북위) 0도 30분, 東經(동경) 80도의 적도 해역에서 첫 操業(조업)을 시작했다.

 

濃密魚群(농밀 어군)을 捕捉(포착)한 것은 아니나, 새로 꾸민 어구의 시험과 인도양 다랑어 어군의 生態(생태)를 파악하기 위한 시험 조업이었다. 비록 시험 조업이라곤 하나 인도양에서의 첫 조업인 만큼, 모든 선원들의 얼굴엔 긴장의 빛이 감돌고, 나 또한 이른 새벽에, 豊漁(풍어)와 안전 조업이 있기를 경건히 빌었다.

 

새벽 네 시, 조용한 해면이 중천에 걸린 달빛을 받아 곱게 반짝거리니, 새삼 신비감을 자아낸다.

 

‘投繩(투승) 준비’의 지시를 내리자, 수백 촉의 作業燈(작업등)들이 즐비하게 켜지고, 휘황한 불빛 아래 선원들은 각기 작업 부서에 배치되었다. 針路(침로)를 북쪽으로 바꿔 漁道(어도)를 가로지르며 ‘투승 시작’의 신호를 내리니, 선원들은 싱싱한 冷凍(냉동) 꽁치를 꿴 낚시들을 연방 날쌔게 바다에 던졌다. 全速(전속)으로 달리는 배에 맞춰 주낙도 따라 던져지니, 다랑어를 잡기 위한 주낙 어구가 물 속에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아직 날이 밝기 전이지만, 快走(쾌주)하는 배에 놀라 깬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불빛을 뒤따랐다. 필경 고기 떼를 뒤따르던 갈매기들인 듯해서 풍어를 바라는 선원들의 마음은 한결 더 부풀어올랐다. 약 네 시간에 걸쳐 2000여 개의 낚시를 단 주낙 어구를 45마일의 거리에 걸쳐 부설해 두었다. 투승이 끝난 뒤 네 시간을 기다리다가 적도의 태양이 한창 이글이글 타는 정오 무렵부터 주낙을 감아 올리기 시작했다. 승무원의 대부분이 남태평양의 사모아 해역에 나아가 많은 漁撈(어로) 작업을 경험한 베테랑들이므로, 작업은 처음부터 익숙하게 진행되었다.

 

揚繩機(양승기)의 빠른 回轉(회전)에 따라 낚시가 하나둘 올라왔다. 기대와 실망이 몇 차례 교차되더니, 드디어 “고기다!” 하는 환성이 올랐다.

 

모든 선원들의 가슴은 부풀어오르고, 두 사람의 선원이 고기가 문 낚싯줄을 붙잡고 승강이를 한다. 옆에서도 “잘해라! 첫 고기다! 놓치지 마라!” 하고 북돋워 주니, 긴장이 더욱 高潮(고조)된다. 고기와 사람과의 줄다리기가 한참 계속되더니, 억세게 버티던 고기가 기진맥진하여 뱃전 가까이까지 끌려오자, 어부들이 잽싸게 고기를 갈고리로 걸어 甲板(갑판) 위로 끌어올렸다.

 

길이는 1m 50㎝ 정도고 무게는 50㎏이 넘는 큼직한 놈인데, 고운 노란 지느러미를 가졌다고 하여 옐로 핀(Yellow Fin)이란 이름이 붙은 다랑어다.

 

그런데 선원들은 아직까지 싸운 화풀이라도 하듯, 갑판 위에 끌어올려진 뒤에도 살아서 퍼덕거리는 고기의 머리통을 메로 쿵쿵 두드리니, 단말마의 경련을 일으키다가 죽어 갔다. 고기가 죽자, 첫 고기는 고사를 지내는 것이 좋다는 老(노) 선원들의 의견에 따라 고사를 지냈다. 揚繩이 계속되어 크고 작은 옐로 핀들이 잇달아 올라올 때마다 선원들은 함성을 올렸다. 고기가 잇달아 올라오니, 폭양 아래에서 氷水(빙수)를 꿀꺽꿀꺽 마시면서도 모두들 신바람이 나서 어깨를 으쓱거린다. 주낙을 끌어올리면서 흘리는 땀을 이따금 熱帶(열대) 특유의 스콜이 지나가며 씻어, 잠시나마 더위를 식혀 주곤 하였다.

 

작업은 계속 순조로워서 초저녁에 양승을 모두 마쳤는데, 오늘 첫 작업의 漁獲(어획)은 약 2톤 반 가량으로서 퍽 좋은 편이었다. 조업을 마치자, 다랑어로 만든 盛饌(성찬)을 마련하고,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오늘의 어획을 축하함과 아울러 오늘 밤의 적도 통과를 기념하기 위하여 赤道祭(적도제)까지 올리니, 배 안은 그야말로 축제 기분으로 들떴다.

 

5월 26일

 

돌고래의 행패가 하도 심하여 중부 어장에서의 조업을 단념하고, 수온이 낮은 인도양 서남부 어장을 향해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시험 조업에 이어 아라비아 해를 떠난 고기 떼가 적도 채널을 빠져 인도양 동부로 진출하려는 것을 노려 조업한 결과, 며칠 동안은 成績(성적)이 제법 좋더니, 돌고래 떼가 나타나면서부터는 어획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돌고래란 이빨고래의 일종으로서, 다랑어의 天敵(천적)일뿐더러 바다의 君王(군왕)이다. 이들은 떼를 지어 다니며, 살아 있는 고기는 물론, 낚시에 걸린 고기까지 따 먹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좋은 漁場(어장)일지라도 돌고래 떼가 출현하는 날엔 당장 황폐해 버리고 만다.

 

6월 6일

 

아프리카 대륙 南端(남단)에 가까운 南緯(남위) 31도, 동경 35도에 이르러 조업을 다시 했다. 중부 어장과는 달리, 이 곳은 완연한 荒波(황파) 어장으로 파도는 사납게 울부짖고 수온은 22℃ 가량으로 내려, 제법 쌀쌀하기까지 했다.

 

대서양으로부터 希望峯(희망봉)을 거쳐 오는 低氣壓(저기압)이 거의 끊이지 않으므로 기상 상태가 좋은 날이 별로 없지만, 南半球(남반구)의 겨울철인 이 무렵엔 대서양에서 남부 인도양으로 游(회유)해 오는 알바코(Albacore) 떼의 좋은 어장이 형성되므로, 많은 外國船(외국선)들과 같이 우리 船團도 이 곳에서 조업을 시작했다. 어군 탐지기에 많은 어군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혀 낯선 어장에서, 더욱이 사나운 물결 밑에 長距離(장거리)에 걸쳐 어구를 투승하고는 다소 걱정도 되었으나, 다행히도 海流(해류)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어획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알바코가 연방 올라오니, 거친 물결도 아랑곳없이 船內(선내)에는 다시 환성이 들끓었다.

 

알바코는 마국인들이 가장 좋아하여 ‘바다의 닭고기’라고까지 부르는 다랑어의 일종인데, 방금 물린 듯한 알바코가 한 자가 넘는 지느러미를 떡 벌린 채 퍼덕거리면서 끌려오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신바람이 난다. 여전히 사나운 파도는 흰 거품을 내며 뱃전에 부서진다.

 

明鏡(명경)같이 고운 바다는 詩趣(시취)가 있어 좋고, 파도치는 바다는 覇氣(패기)가 있어 또한 좋다. 그리고 이 해역에선 아프리카가 가까우니 라디오의 스위치를 틀면 갖가지 아프리카 노래가 들려 와서 심심하지 않았다.

 

양승을 시작한 직후부터 거의 온종일 선원들의 아우성 소리와 고기가 파닥이는 소리, 또는 파도의 울부짖음으로 마치 싸우는 海賊船(해적선)처럼 요란하더니, 15㎏ 이상의 알바코만도 200여 마리이고, 다른 다랑어 종류도 수십 마리 잡혀, 오늘 하루의 어획은 3톤 반 이상이나 되었다.

 

특히 마지막 무렵에 250여 ㎏이나 되는 커다란 새치가 잡혔는데, 이 고기의 뱃속에서는 방금 삼킨 듯한 싱싱한 알바코가 한 마리 나와 一擧兩得(일거양득)을 한 셈이었다.

 

날이 저물면서 바람은 더욱 거세어져, 無電(무전) 안테나는 윙윙 소리를 내고 산더미 같은 파도는 배를 제멋대로 흔들건만, 모두들 오늘의 흐뭇한 어획에 도취되어, 거친 물결은 아랑곳없이 환담으로 꽃을 피운다. 나이가 든 甲板長(갑판장)은 이 큰 새치의 지느러미뼈로 물부리를 만들면 아주 珍貴(진귀)한 膳物(선물)이 될 것이라고 하며 매우 기뻐하기도 했다.

 

밤이 깊어 작업이 끝나자, 다시 내일의 투승을 위하여 다랑어 떼를 찾아 항해해 가니, 거친 물결 속에서도 수면에는 많은 夜光蟲(야광충)이 빛나고 있어, 좋은 어장의 徵候(징후)를 肉眼(육안)으로도 분간할 수 있었다.

 

7월 6일

 

드디어 滿船(만선)을 했다.

 

작열하는 태양 밑에서 또는 폭풍우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한 마리 한 마리 가슴 졸이며 낚아 올린 고기가 이젠 어창에 그득히 차서 더 실을 데가 없게 되었으니, 완전한 만선이다.

 

어렵게 낚은 다랑어를 흉측한 돌고래나 모진 상어 떼에 빼앗긴 적도 많지만, 그래도 여러 날을 계속하여 낚아 올린 고기가 7000여 마리. 인도양에서의 첫 만선이기에 더욱 흐뭇하고 대견했다.

 

교신 중이던 외국 선박으로부터도 滿船(만선) 축하전보가 잇달아 왔고, 가까이서 조업하고 있는 僚船(요선) 9호와 10호의 광명호도 곧 만선 예상이라는 보고다.

 

항해를 入港(입항)하는 재미로 한다면, 고기잡이는 만선하는 재미로 한다 할 것이다. 어구를 거두어 넣고 뱃머리를 港口(항구)로 향해 달리니, 선원들은 작업복을 훨훨 벗어 던지고 뱃전에 앉아 술을 따르며 自祝宴(자축연)을 열었다.

 

“바다로 가자, 바다로 가자, 물결 굼실 뛰노는 바다로 가자….”

 

검붉게 탄 선원들이 마음껏 소리 높여 합창하니, 배 안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르고, 피곤은 일시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수만의 戰利品(전리품)을 싣고 돌아가는 개선장군의 기쁨인들, 大洋(대양)의 한복판에서 오랜 시일을 고생하여 만선한 기쁨만 하랴.

 

40회의 조업에 120톤! 이만하면 첫 항해의 어로는 성공이다. 이로써 우리 나라의 遠洋漁業(원양어업)에 또하나의 里程標(이정표)가 인도양에 세워졌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물결을 가르며 달리는 배 위에서 어기여차 뱃노래를 소리 높이 부르면서 歸港(귀항)의 길을 재촉했다 .

 

7월 7일

 

날이 밝자, 길게 뻗친 아프리카 大陸(대륙)이 視野(시야)에 들어왔다. 흙 냄새 풀 냄새가 함께 밀려드는 것 같다. 뒤돌아보면, 인도양엔 여전히 물결이 높고, 정면엔 이른 아침 ‘더어반 항’의 등댓불이 아직 반짝거렸다.

 

우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더어반 항에 도착하였다. 더어반은 남아프리카에서 첫째 가는 항구이며, 또한 聖雄(성웅) 간디가 젊은 시절 10여 년 동안 살면서 민족운동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무전으로 미리 연락해 두었으므로, 外港(외항)에 이르자마자 水先人(수선인)의 안내로 곧 입항할 수 있었다. 닻을 내리고 부두에 배를 대기가 무섭게 모두들 뭍에 뛰어올라 땅을 힘있게 밟아 보았다. 60여 일 동안을 꼬박 흔들리는 배에서 지냈던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大地(대지)가 도리어 이상하게 느껴졌다.

 

흑인, 白人(백인) 할 것 없이 이 곳 住民(주민)들이 모두 몰려와선 東方(동방)의 遠客(원객)들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이들에게 “헬로!” 하고 손을 내미니, 거절하지 않고 기쁘게 악수해 주었다. 낯선 異邦人(이방인)의 손목을 정답게 붙잡았다.

 

[출처] 거센 파도를 헤치고(김재철)|작성자  파일로반스

https://blog.naver.com/mohk1/90025490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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