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원형, 내 일생의 바다

등록일20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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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원형, 내 일생의 바다

 

 

고향 통영의 소쿠리 항구에서 "붕"하는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고 중학교 2학년 때 아동연극의 대가이신 주평, 당시의 국어 선생님의 수업 중에 <붕>이란 동시 비슷한 글을 지어 칭찬을 받던 날의 추억 가운데에도 바다와 배가 있었다. 몇년전 큰 언니를 앞장 세워 찾아간 내가 태어난 곳인 마산시 구산면 반동리의 바닷가 마을도 학교 운동장이 바로 바닷물이 철석거리는 곳이었다. 아버님께서 청춘을 바쳐 반동국민학교에서 교육에 열을 올릴 때 나는 이 학교의 사택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 사택은 바로 교문 앞에 있었다.

 

마산 외곽의 순환도로 위에 있는 경남대학교를 지나 진동-통영간 국도를 달리면 밤밭고개를 넘게 되고 이어 왼쪽에 현동검문소가 나오면 좌회전하여 들어가면 깊숙한 산길이 닦여진 낭만적인 길이 나온다. 현동 초등학교와 구산초등학교를 지나 내륙의 깊은 곳에 마산시 구산면 반동리 411번지에 있는 반동초등학교가 있다. 고개의 검문소에서 좌회전하여 500m정도 산 속의 구불거리는 길을 한참 지나면 <트라피스트 수도원>이 나오고 이어서 히딱고개 위의 백년 휴게소가 나온다. 주차장이 넓고 산 아래 전망이 트였다. 전설에 의하면 아랫마을 홍씨집 딸이 젊어서 죽자 이 고개에서 남자들을 희롱하며 죽였다고 하여 낮인데도 음산한 기운이 돌았다.

30년 전만 해도 이곳에서 몰래 수목장과 같이 뼛가루를 뿌려서 죽은 망령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백령신단을 모시고난 뒤 인명피해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고개마루턱에 <백령찻집>에는 백살까지 살라고 감초부터 8가지 약초를 넣은 차인 󰡐백령차󰡑를 팔았다. 바닥은 짚으로 꼰 덕석이고 큰 촛불이 여러 군데 녹아 있었다. 분위기는 좀 음산하게 신비스럽고 무서웠다.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청춘의 아버님과 필자가 태어났다고 하는 현장을 찾아가는 설레임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흥분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반동 초등학교의 교훈은 󰡒참되고 지혜롭게󰡓이다. 학교 뒷숲은 바로 찻길이다. 아름드리 큰 소나무는 젊디젊은 아버지와 고고성을 울린 여아의 울음소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내 아버지를 만난 고목들이 많다. 학교 오른쪽은 바다로 접하여 경계가 되어 있고 바로 옆은 갯벌이다. 바다가 와서 학교 담장과 함께 놀고 있는 낭만적인 곳이 기억에도 떠오르지 않는 나의 원형적인 곳이다.

반동초등학교, 병설유치원, 테니스장이 있고 급식소도 깨끗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전교생이 6학급으로 별도의 이름을 부쳤으나 133명이란다. 참으로 훌륭한 학교 시설이었다. 당직교사에게 이야기를 하여 아버님께서 근무하던 당시의 학교 역사를 섭렵하였지만 해방이전의 자료가 없어 아쉬움을 뒤로 하면서 작지만 아담하고 알찬 학교를 돌아보았다.

교문 앞에는 상가 수퍼, 음식점, 농협이 있었다. 학교에서 자동차로 3분 거리에 난포항이 있었다. 작은 배 수십척이 닿아 있는 어느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항구 같은 어촌을 지나 바윗길, 십리를 갔다. 해안선이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에서 유년의 울음을 울었던 나의 문학에는 항상 바다가 출렁이었다. 갯벌에서 싱싱한 조개를 푸대로 사서 함께 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달고 맛 있었던 조개였다.

남해안의 리아스식 해안이 이어지는 진동면 광암해수욕장에서 진전면 창포리 일대 창포만으로 이어지는 갯벌 300여 만평의 경관은 그 아름다움과 함께 조개 등의 해조류가 풍부하고 특히 인근의 난포만은 볼락, 도다리 등 철따라 낚시가 잘 되는 곳이다. 아름다움에 찬탄하며 태어나고 자라난 곳의 빼어난 해안과 바다의 무변한 출렁거림이 나의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오늘까지 그 끈을 이어오고 있는 것 같다.

작가 한승원이 말년에 찾아가 더욱 창작의 열기를 더 하고 있는 전남 장흥의 바닷가를 생각한다면 나의 바다도 귀향할 수는 없더라도 무의식과 의식 속에서 항상 멈추지 않고 존재한다.

 

통영의 뱃고동 소리와 중앙동 시장의 작지만 활기차던 소쿠리 항구 옆의 시장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삶의 현장이었다. 아버지의 전근 가시는 학교를 따라 나는 국민학교를 세 번이나 옮겨 다녔다.

창원 (지금은 마산시로 통합)에서 다시 남해로 온 나는 남해 농고에 재직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남해 국민학교를 입학하여 1학년이 끝나기도 전에 통영으로 전학하여 그 곳에서 학교를 졸업하였다. 태어난 곳과 자란 곳으로 분류하면 몰라도 나의 고향은 한마디로 말하기엔 망설임이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태어나고 자라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바닷가 마을이거나 도시인 것이다.

 

빨간 댕기를 머리에 메고 흰 카라를 세우며 중고등 학생이 된 이래 한달에 한번 정도 관광 통영을 위하여 오리나무가 많았던 남망산 공원을 오를 때 새벽에 청소하던 날의 아침 일출은 얼마나 장엄하고 아름다웠던가. 겨울철에는 꽁꽁 언손을 비비며 열심히 종이를 쓸고 낙엽을 치우던, 시원하고 차갑던 새벽을 나는 기억한다. 황금빛으로 물들며 먼 수평선에 걸쳐 있던 바다가 조용하게 금빛을 입으면 경이와 놀라움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 한구석에는 무언가 뜨거운 것이 샘솟았다. 그 날 이후 통영은 내 그리움의 원형이 되었고 내 꿈의 진원지가 되었다. 위대한 작곡가 윤이상 선생님이 산청 출신이었지만 그가 자란 마을, 통영을 고향이라고 하듯 나는 항상 통영이 내 고향이라고 생각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를 통영에서 졸업하여 아홉 형제자매 속에 자라나서 유독 아버님께서 근무하시던 용남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은 시골의 생활과 아버님을 이해하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용남면의 신작로와 바다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학교 사택에서 아버님과 생활하며 애기호박을 쓸어 물을 조금 붓고 콩간장으로 끓여주시던 천하에 드문 그 요리가 지금도 먹고 싶어 우리 밭에서 생산된 호박에 물을 조금 붓고 끓이며 아버님의 호박 요리탕을 추억하기도 한다. 함께 하는 가족들이 이 천하의 별미를 맛보며 가슴에 가득한 내 그리움은 잊지 못할 것이다.

 

바다는 세월을 물고 / 아득히 흐르는 풍경, / 너는 / 항상 내게로 와 출렁이고 있다󰡓

태어나고 자란 곳,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는 부산해운대도 온통 바닷가이다. 바다는 내 일생의 세월 속에 도도히 넘쳐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존재하고 문학의 원형이 되어 출렁거리고 있다.

 

아득히 세월이 가도

고향같은 사람,

너는

항상 그리움으로 남는다.

-<바다풍경․1> 전문

 

세월을 물고

아득히 흐르는 풍경,

너는

항상 내게로 와 출렁이고 있다

-<바다풍경․2> 전문

 

 

불이,

기막힌 불이 솟아오른다.

떨어지고 다시 바다에 쓰러진다.

광안리 바다에는

꽃들이 피어나서

장렬하게 내린다.

모래알같은 사람들 모여

기쁨 하나씩 꽃 피우며

꽃기둥, 꽃기둥으로 기원을 담고 있다.

아!

바다가 끓어서 꽃이 오르고

꽃이 떨어져서

장엄한 아름다움이 줄다름치니,

<중략>

󰡒탁타탁, 탁타탁!󰡓

끝내 터뜨리고 마는 함성이여,

걸어가는 불빛이여,

걸어오는 불빛이여,

안개바다 속에서

은하수 하늘을 수 놓고

황금빛으로 빚어서

흘러 내리네

황홀하게 쓰러질 날을 위해

깨달음 불비로 피어나는

불꽃나라 바다를 안고 있다.(2007)

<하늘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다시 하늘로-불꽃의 사랑이야기>에서

 

정 영 자, 문학평론가

 

□ 자료출처 : 海바라기 2009년 1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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