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포에서 그를 보다

등록일20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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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포에서 그를 보다

 

 

오늘따라 방파제 주위가 조용하고 사람들도 거의 없다. 나는 지금 청사포(靑砂浦) 바닷바람의 그 오묘함을 혼자 만끽하고 있다. 해운대와 송정사이에 있는 이곳의 바람은 이 작은 어촌을 지나서 멀리 장산까지 치달아 오른다.

그 바람은 약하거나 강하지도 않으므로 파도는 결코 잔잔하지도 않으며 높고 거칠지도 않다. 바다 물결이 등달아 아름답다. 그 물결을 타고 건너온 바람 속에는 태평양 너머 멕시코 만류에서 건너온 더운 바람도, 미국 산타모니카 해변의 투명한 바람도 그리고 가까이 달맞이길 해월정(海月亭) 앞 바다를 스쳐 온 안개 같은 바람도 모두 섞여 있는 듯 하다. 나는 나른하면서도 만족한 마음으로 그러한 바람의 향내를 한껏 즐기고 있다.

 

청사포 바닷바람에는 향긋함이 있다. 나는 바로 그 향내를 좋아한다. 소금기가 있는 비릿한 것과도 다르며 비린내와 같은 냄새의 실체를 남기지 않는다. 우리에게 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속성을 일깨워 줄뿐이다. 결코 우리 곁에 머물지 않지만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다음의 바람이 불어와 넉넉하게 그 향내를 계속 전하기 때문이다.

 

방파제 끝, 내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삼십 여분 전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때 그는 수면을 바라보며 그곳에 혼자 있었다. 그를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나 역시 혼자 있기를 원했으므로 그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었다. 그래서 그도 나도 홀로 앉아 있다. 그는 내가 가까이 온 것도 개의치 않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아마도 내가 가까이 오는 것마저도 성가시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낚시꾼일지도 모른다.

 

멀리 수평선 위의 고깃배들에게 눈길을 보낸다. 고기잡이가 전과 같지 않다고 하니 만선은 아닐 것이다. 빈 배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아니 하루 일에 걸맞은 어획고를 올렸을 것 같기도 하다. 가까운 곳에서는 작은 배가 들어온다. 저것도 고기잡이 배일까.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산티아고 노인은 80여 일간 멕시코 만류에서 고기잡이를 하였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러나 마지막 삼일간의 사투 끝에 큰 고기를 잡기는 했었다. 결국 노인의 대어는 모두 상어에게 빼앗기고 뼈만 끌고 왔었다. 지금 저 사람은 정말 고기를 낚는 사람일까. 그렇다면 좀 더 멀리 배를 타고 나갔을 터인데. 그러고 보면 전형적인 낚시꾼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가까이 있는 나에게 관심을 갖는 것 같지도 않다. 가끔 들어오고 있는 배들을 보기도 하고 호흡을 가다듬기도 한다.

 

수평선 위로 저녁노을이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다 위의 서쪽하늘이 엷은 분홍빛깔로 서서히 물들고 있다. 갈매기들은 마지막 잔광을 즐기며 점점이 날고 있다. 그 황홀함과 경이로움에 취하여 나는 잠시 나를 잊는다. 언제였던가. 산타모니카 해변의 석양이 지금처럼 황홀했었다. 나는 해변의 야자수 그늘에서 그 모습을 어리석게도 카메라에 담으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스에서 이민 왔다던 그때 내 친구는 그 황홀함을 포도주로 건배하는 멋이 있었다. 우리는 다 같은 분홍빛깔의 석양과 포도주에 취하여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지금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방파제 끝의 그 사람을 다시 바라본다. 그는 아름다운 이 저녁노을마저 감상할 줄도 모르는 정말 무감각한 사람 아닐까.

 

청사포를 감싸고 있던 낙조의 아름다움도 서서히 어둠으로 바뀐다. 가까이 있는 달맞이길의 해월정 불빛이 선명하게 보인다. 밤이 다가오고 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관광지로 변신한 그 길을 따라 수백 개의 조명등이 마치 갖가지 색깔로 수를 놓은 듯 어둔 밤을 화려하게 장식할 것이다. 낮과 밤의 경계, 그것이 지니는 저 아름다움을 그도 즐기면 좋을 텐데….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하며 그에게로 눈길을 보낸다. 그는 우두커니 바다와 그 위의 하늘을 보고 있는 듯 하다. 지금 누군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만 조금씩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낚시에 취미를 붙이면 가족도 잊고 친구도 잊어버린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저 사람은 꼭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신경을 쓰며 미끼를 갈거나 자리도 옮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어서서 그에게로 다가간다. 어둠이 오는 것도 모르고 어쩌면 그렇게 오래도록 한 자리에 앉아서 같은 일에 몰두할 수 있을까. 갑자기 그런 의문이 머리에 떠오른다. 뒤뚱거리다 멈춰 서고는 고기를 많이 낚았느냐고 그에게 묻는다. 그는 고기잡이에는 관심이 없단다. 아예 낚시 바구니도 없다. 이어 그가 웃으면서 말한다.

󰡒바람을 좀 쐬고 있었지요. 바닷바람이 얼마나 좋습니까. 특히 청사포 바람은 야릇한 향내가 있어서 좋아요󰡓

아! 이 사람도 나처럼 밀려오는 일상사에서 벗어나 바닷바람의 향내를 혼자 즐기고 있었던가. 저녁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의 나래를 펴고 청사포의 오묘한 바람을 홀로 맞이하고 있었나. 그 순간 바람이 가볍게 머리를 스쳐지나가며 예의 그 향내를 다시 전한다.

 

최홍식, 수필가

 

□ 자료출처 : 海바라기 2009년 1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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