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여기 있다(海바라기/나의 바다와 문학 27)

등록일20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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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여기 있다(나의 바다와 문학 27)

 

 

19××년 1월1일.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보았다'고 한다. 나는 지금 사십에 바다를 보고 있다. 새해 첫날 늦잠을 잤다. 어젯밤 아마 몰디브를 지날 즈음 술판이 벌어졌을 것이다. 너무 지껄인 것 같아 나는 잠시 머쓱했다. 바다에서 보내는 제야(除夜)를 바위처럼 침묵한다고 해서 침수(浸水) 당하는 고독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지는 것은 아닐테지만.

정오에 침실 커어튼을 걷었다. 현창(舷窓) 밖으로 검푸른 바다가 눈이 부시다. 오늘도 나의 일상은 무엇 하나 달라진 것이 없다. 수평선 넘어 저기 보이는 것은 구름인가 신기루인가. 올해에도 나는, 물론 저 바다를 향하여 열심히 나아갈 것이지만 다음에 만나게 될 그곳에는 또 다른 바다가 있을 것이다.

북위 1도27분, 동경 71도30분. 케이프타운까지 아직 수천 마일을 더 가야 한다. 항해사의 손끝을 따라 잠시 해도(海圖)를 넘겨다 보았다.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한󰡑 추억들이 차아트 위에 버려져 있다. 어느 것 하나 내 뜻대로 된 것 없는 인생의 잔해(殘骸)들이 항적(航跡)으로 남아 있다. 지난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나는 오만했다. 나의 불손(不遜)들을 무수히 용서하며 가야 할 바다가 여기 있다.

이 글은 어느 날의 항해일기다. 그때 나는 갑자기 󰡐바다󰡑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미련하게도 국어사전을 펼쳐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적힌 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옮겨 놓는다.

 

바다란 지구상에 짠 물이 괴어 있는 넓은 곳

아, 세상에 이런 압권(壓卷)이 어디 또 있을까. 바다가 무슨 밥상 위의 간장 종지도 아니고, 짠 물이 괴어 있는 곳이라니! 차라리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뜨는 곳󰡑이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辭典的 의미다. 인천 시민에게는 대단히 미안하오나- 필자의 말이 의심스러운 분이 계시면 지금 당장 이희성 박사의 우리말 사전을 한 번 찾아 보시기 바란다.

참으로 간단명료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주석(註釋)이라 실소를 금치 못했다. 사전을 뒤적거린 나도 별 수 없었지만 󰡐짠물이 괴어 있는 곳󰡑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편자 역시 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다는 지구 표면적의 칠십일 퍼센트에 해당한다. 그 넓이가 무려 삼억 육천만 평방킬로나 된다. 이와 같은 광대무변한 대자연을 누가 쉬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껏해야 발동선에 실려 범섬(虎島)이나 새섬(鳥島)을 오갔던 주말의 낚싯길에서, 그 알량한 노스탤지어로 바다를 쉽게 이야기하려 든다.

내 고향 남쪽바다는 또 얼마나 쪽빛이었던가. 해조음에 잠을 깨어 문을 나서면 가슴 가득히 출렁이는 은빛 바다가 있고,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보면서 인생은 물거품 같으며, 애증과 갈등과 온갖 시기와 음모가 바다 앞에서는 무색하다고. 그것은 마치 바다가 자기네 명사(名士)들만이 가진 심오한 철학인양, 너무 쉽게 수사(修辭)한다. 그러나 일박이일로 보았던 그 바다는 사람들이 그저 막연히 생각하는 관념의 바다일 뿐, 결코 살아서 숨 쉬는 차안(此岸)의 바다는 아니다. 부둣가에서 혹은 낚싯터에서 바라본 수평선이 속살의 바다가 아니다.

 

바다를 쉬이 이야기하지 말라. 태평양 대서양 북빙양까지도 피와 땀을 뿌린 동서고금의 진정한 해양인들은 바다를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바다를 쉬이 이야기하지 말라. 태평양 대서양 북빙양까지도 피와 땀을 뿌린 동서고금의 진정한 해양인들은 바다를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저 유명한 극작가 유진 오닐은 그의 작품 〈안나크리스티〉의 크리스처럼 󰡐저 놈의 악마 같은 바다󰡑라고 외치면서도 정작 그가 죽을 무렵에는 󰡐나의 바다로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조셉 콘래드의 〈나시서스호의 검둥이〉를 읽고 바다에 미쳐버린 그는 원래 한 사람의 휼륭한 선원이었다. 유진 오닐은 지금 보스턴 외곽의 포레스트 힐스 묘지 한 구석에 묻혀 있다. 뉴욕타임즈의 건물 근처, 유랑극단 배우였던 그의 부모는 이 근처 한 호텔에서 오닐을 낳았다고 한다. 뉴욕 브로드웨이와 43번가가 교차되는 언저리에 가면, 󰡐미국의 위대한 극작가 유진 오닐이 태어 난 곳󰡑이라고 새겨진 동판이 있다.

1988년 겨울, 나는 외투깃을 세우며 그 동판 옆에서 한 참을 서성인 적이 있다. 취중 결혼식으로 유명한 유진 오닐을 추모하면서. 오닐이 어느 날 술에서 깨어보니 낯선 여자가 누워 있었다.

󰡒당신은 누구요?󰡓

󰡒무슨 소리예요? 우리는 어젯밤 결혼했잖아요.󰡓

오닐은 그녀의 말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선원이 되어 세상을 떠돈다. 술에 취해서 얼떨결에 한 결혼이 그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 온 것이었다. 결국 그와 같은 경험이 바다를 무대로 한 해양극의 백미(白眉)〈카디프를 향하여 동쪽으로〉의 주제가 되었다. 오닐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샌프란시스코 교외에 󰡐타오(道) 하우스󰡑라는 새집을 마련하고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죽기 3년 전 병세가 악화되자 보스턴의 찰스 강이 내려다 보이는 셀튼 호텔 401호실에서 2년 동안이나 폐칩(廢蟄)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이처럼 온 세상 사람들이 󰡐위대한 극작가󰡑라고 추대하는〈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가, 왜 끝내는 󰡐나의 바다󰡑라고 유언처럼 말했을까?

 

바다, 그냥 여기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끊임없이 나아가야만 한다. 이스라엘 청년들이 사막에 도전할 때, 영국의 청년들은 바다에 도전했다. 미국의 청년들이 서부에 도전할 때, 이 땅의 우리들은 어디에 도전했는가.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인간의 나약함을 추상같이 꾸짖는다. 거대한 흰고래를 잡기 위해 포경선 피쿼드호의 선장은 모험심에 차 있다. 자연에 도전하는 에이허브 선장은 멋진 남자다.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모비딕(Mobby Dick)을 잡으려고 사투를 벌이는 외다리 에이허브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백경(白鯨)이라는 가면을 쳐부수고 정체를 봐야겠다.

나중에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해도 괜찮다.

벽 속에 갇힌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야 겠다

심지어 󰡐태양도 나를 모욕하면 쳐부수겠다󰡑고 한다. 에이허브 선장은 인간의 무능과 허약함에 반기를 들었다. 단지 삶이 그에게 주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결국 피쿼드호는 침몰하고 만다. 그의 노력은 자신의 죽음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죽음까지 가져왔지만, 굴복하는 삶보다는 도전하는 죽음을 택한 것이다. 비록 운명과의 승부에서 패배할지라도, 그래도 한 번 맞서 싸워 보고자 하는 도전의지가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벽 속에 갇힌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야 겠다󰡑고 궐기한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바다, 여기 그대로 있다. 강산은 변하여도 바다는 변하지 않는다. 시인 원은희의 노래처럼 󰡐바다에 가 닿기까지 사연 없는 사람 있으랴󰡑만은, 비록 짠 물이 괴어 있는 이 바다가 언젠가 마르고 닿는 날이 온다 해도 누군가 뜨겁게 도전해 올 그날을 위하여, 저렇게 울렁거림만 남아서 넘실대는 바다가 여기 있다.

 

조 득 춘 ㅣ연극인, 동국상선 기관장

 

□ 자료출처 : 海바라기 2009년 1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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