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포구에서

등록일20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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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포구에서

 

 

쫄깃한 회 맛이 입 안을 감친다. 술잔 따라 분위기도 얼큰하다. 안주가 좋으면 술맛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게 마련인가.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어우러진 풍경에 취해 젓가락장단에 맞춘 생음악으로 어느새 천막 안이 뜨겁다.

고향마을 선배 초청으로 마을 원로들과 향우회원 여럿이 함께 어울렸다. 마을의 역사지(歷史誌)를 발간 후, 그때 함께 참여했던 선후배가 만난 것이 얼마만인가. 천막 안 분위기가 반가움에 화기애애하다. 이장(里長)을 지낸 그 선배가 재임 동안에 마을의 역사를 정리해냈다는 흐뭇함과 선후배의 수고로움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마련한 자리다. 따가운 햇살도 아랑곳없이 천막 밖에서는 윷놀이 판까지 벌어져 󰡐큰개󰡑 포구가 꽤 들썩거리고 있다.

 

큰개는 내 고향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 포구를 통칭한다. 샛바람에 바다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주어코지와 검은데기로 둘러쳐진 천혜의 포구, 큰개는 서쪽 용머리까지로 이어지는 해안절경이 한눈에 들어와 예전처럼 다정하게 안긴다. 때마침 물때도 시각이 맞아 만조(滿潮)인 포구가 더 아름답다.

고향마을은 상동이 산간 쪽이고 하동이 바다 동네다. 상하동 간은 4km 남짓 떨어져 있어 제법 멀다.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상동에 살아도 하동은 바다가 넓어, 예전부터 주민생업이 반농반어(半農半漁)이다. 풍요로운 바다의 해산물은 상당한 소득원이다. 어로작업이 발달하면서 전복, 넙치 등 양식업도 요즘 성업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주말이면 가끔 상동에서 먼 길을 걸어 이곳 큰개 포구를 즐겨 찾았다. 확 트인 바다는 언제 봐도 좋았다. 앞바다엔 먹잇감이 풍부해서일까. 포구엔 해초도 넘실거려 해산물이 풍부하고 고기도 많이 잡혔다.

해산물은 밥상 위에 단골이었다. 고소한 반찬이요, 먹을거리였다. 더구나 해녀가 있는 집에서는 미역이나 소라 전복이 곧 현금소득으로 살림 밑천에 한몫 했다. 우리는 갯가에서 우럭도 낚고 보말과 소라 성게도 잡았다. 톳이나 미역을 바구니 가득 채취하고는 마냥 좋아하곤 했다. 어른들은 해산물이나 고기를 많이 잡으면 우리에게 나눠도 주고, 옆집에도 선물했다. 싱싱한 해산물로 식탁을 차리면 밥맛이 그만이었다. 훈훈한 인심이 입맛을 더 돋우었으리라. 지금도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저것 봐. 앞바다에 돌고래 떼다. 햐, 장관이다. 배알로! 배알로!󰡓

갑자기 천막 밖이 왁자지껄하다. 외치는 소리에 얼른 천막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가리키는 앞바다엔 그물 보러 나선 정치망어선이 두 척이나 보인다. 자세히 보니 배 너머로 돌고래 떼가 물살을 가르듯 지나가고 있다. 바람을 거슬러 동쪽을 향하여 자맥질하며 이동 중이다. 그 뒤로 하얀 물결이 파도처럼 뒤따르고 있다.

고향 앞바다는 예전부터 돌고래가 종종 출현하는 곳이다. 몇 십 마리 또는 수백 마리가 무리를 지어 나타난다. 지나가는 배를 따르거나 곁에서 뛰어오르기도 하고 뱃머리에 이는 파도를 타기도 한다.

어릴 적에도 돌고래 떼들이 이 앞바다를 지날 때면 장관이었다. 사람들은 이 광경을 구경하며 󰡐배알로!󰡑라고 소리쳤다. 󰡐배알로󰡑란 제주어로 󰡐배 밑으로󰡑란 뜻이다. 그물로 작업하는 어부들이나 잠수하는 해녀들에게 돌고래 떼의 출현을 알림과 동시에, 돌고래에게 사고를 일으키지 말고 배 밑으로 제발 무사히 지나가 달라는 주문이다. 돌고래와 인간이 자연의 바다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이 아닌가. 돌고래 떼를 보니 얼마 전 동영상으로 본 감동의 뉴스거리가 떠올랐다.

 

지난 6월 어느 날 오후, 동해안의 경주와 울산 중간 지점 앞 해상에서의 일이다. 고래 탐사에 나선 국립수산과학원 탐사선 레이더에 검푸른 바닷물이 하얗게 변하는 현상이 포착됐다. 수백 마리의 참돌고래 떼가 자맥질을 하며 물을 튀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한 무리는 그곳에서 맴돌며 떠나질 않는 거였다.

탐사선이 그 앞까지 다가가도 몸길이 3m쯤 되는 참돌고래 한마리가 허연 배를 뒤집은 채 꼬리만 가끔 움직일 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수면으로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여러 마리의 돌고래가 번갈아가며 두세 마리씩 짝을 이뤄 기진한 그 녀석을 밑에서 수면 위로 밀어올리고 있었다. 서로 혈연관계여서일까, 아니면 절친한 동료관계라서 그럴까. 알 수 없는 희한한 광경이었다.

한 시간 남짓 그러더니 그 돌고래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죽었다. 그러자 물 밖으로 밀어올리기를 하던 녀석들이 죽은 녀석의 입과 목덜미, 배와 등을 애무하듯이 스치며 이별을 아쉬워하는 애도(哀悼) 장면을 연출했다. 영결식이었다. 죽은 돌고래가 물밑으로 자취를 감춘 후에도 녀석들은 한동안 그 자리를 맴돌았다.

야생 돌고래 떼의 이런 행동이 동영상과 카메라로 포착된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라고 한다. 죽어가는 돌고래가 고통받지 않고 편안하게 영면할 수 있도록 같은 무리의 돌고래들이 수면 밖으로 밀어올려준 것이다. 3분 넘게 물속에서 나오지 못하면 익사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숙연해졌다.

 

돌고래에겐 인간을 닮은 점이 꽤나 많다. 포유류인 그들은 무리지어 공동체생활을 한다. 장난을 잘 치고 사람과도 친숙하다. 영리하고 지능이 높아 소리와 초음파를 통해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능력도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동료애(同僚愛)다. 아픈 녀석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애쓰는 그들의 집단행동은 감동 그 자체였다. 정든 동료를 떠나보내는 영결식 장면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인간을 그렇게도 빼닮았다.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 큰개 포구엔 그리운 추억들로 고향의 정이 짙게 스며든다. 돌고래가 분위기를 한층 돋웠나 보다. 정겨운 모임 자리가 선조들의 공덕담(功德談)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설촌 이후 수백 년의 마을 역사지가 출간된 뿌듯함인가. 술잔에 비낀 노을도 곱다.

 

오승휴, 수필가

 

□ 자료출처 : 海바라기 2009년 1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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