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南洋에서 띄우는 편지

등록일20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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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南洋에서 띄우는 편지

 

 

그대 강녕하신지요. 사이클론이 하늘 우의를 두르고 대양 수평선을 휘돌아 올 때, 그대를 수소문하는 나의 궁휼한 동정이 들려옵니다. 지난여름 남방 어느 무인도 백사장에 서있었다고도 하고, 산호초 우거진 남양군도 우림 속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던 애처로운 모습이 보였었다고도 하고. 그러나 사실이면서도 모두가 호사꾼들의 유비통신들이지요.

파도는 언제나 속삭이듯 내밀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때리죠. 그대 강녕하신지요. 당신이 늘 종려수를 그리며 가냘픈 이파리에 편지를 쓴다고 해서, 항해 내내 마스트에 올라 포경선 작살잡이 마냥 해면을 뒤집어보기도 하고, 언젠가는 그대가 북빙양 푸른 물에 섬섬옥수를 담근다 해서 내 가엾은 심상이 북쪽을 향해 비탄을 떨구기도 했습니다.

아 먼 노정 항해는 나를 새우등으로 만들었습니다. 야자수 사이로 적도선赤道線 방랑자의 별들을 보기도 했고, 해조음이 되어 파랑 위에서 독백하기도 했어요. 돌아보니 그 풍진의 허한 그림자들이 육탈된 허무였음에 애상의 입술을 지그시 깨뭅니다. 문득 비탄으로 흐르는 상어 빛 애증 또한 절대고독이라는 것도.

그래요. 그대를 향하는 나의 우매한 유비통신과 맹목의 헌사들이, 어쩌면 나보다 더 고독한 당신의 순구한 눈망울에 투영되길 바라는, 아프로디테를 그리는 푸른 슬픔이란 것도. 그러나 이제야 알았어요. 아아 나와 그대의 천만리 심연에 떨어지는 모든 것들을 무조건 사랑하라는 신의 말씀을.

그대 오늘도 강녕하신지요. 바다는 가까이서 보면 요란한 눈물 꽃을 피우지만, 고산준령 그윽한 구름을 딛으면 둥글디 둥근 원일뿐이지요. 그대여 나에게 구원한 사랑을 띄워 주십시오. 쇠락하는 인간의 갈망 위에 온유한 바람꽃을 피워주오. 이제 우리의 만년설은 녹아 흘러서 남십자성, 저 요원한 별빛 속에 이 시대를 증거 하는 사랑으로 존재하리니.

 

한 기 홍 | 시인 수필가

 

□ 자료출처 : 海바라기 2010년 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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