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류에 흘러온 편지

등록일20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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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류에 흘러온 편지

 

 

바다에 뜻을 두고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은 책을 읽는 국민 대다수가 바다와 그 삶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 바다를 놓고 근사한 말들이 퍼지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다가 땅이다'라는 어구이다. 과연, 바다가 땅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에 그러하다면 저 유명한 유행가 가사처럼 '쓰라린 이별'만은 없을 것인데. 왠지 이 표어를 내세운 주체는 숨어 있다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감히, 그렇게 말한 사람, 그는 누구인가? 한 번 만나보고 싶기도 하다. 바다와 육지의 간격만큼 바다를 말하는 사람과 바다를 행동하는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거리가 남아 있다.

 

바다에 대한 육지의 기대와 육지에 대한 바다의 애환을 놓고 문학으로써 시름하는 이가 있다. 바로 우리들, 해양문학가이다. 먼 옛날 동아시아 바다에 큰 세력의 해양민족이 있었다. 그것은 한민족이었다. 한데, '-이었다'라고 말함에 안타까움이 없지 않다. 영문법식으로 말하자면 '-이어 왔다'로 되지 않음에는 문학의 부재不在가 그 원인이다. 큰 몸집에 빈곤한 정신이었다는 뜻이다. 호머의 오디세이만큼은 아니더라도 문자로 남겨 놓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학으로서 감동이 이어져 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약 그러했다면 훗날 바다를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았으리라. 그와 같은 척박함 속에서도 최부, 장한철 두 선비가 '표해록'을 남겼으니 다소 위안은 있다.

 

이제 우리들 해양문학가는 문학의 바다에 새 항로를 개척하려 한다. '바다'가 빠진 육지에 바다를 넣으려 한다. 바다라는 실체가 없는 표어만의 바다에 생기를 불어 넣으려 한다. 수필가 김동규(金東奎)가 상재한 ≪바다의 기억≫은 그래서 반갑다. 푸른 바다를 품은, 작품집 '해양에세이'는 지금 육지를 향해 돛을 펼친 항해선이다.

 

작품집에서 시간은 유소년기부터 장년기의 입구까지 흘러갔다. 공간적인 배경은 바다, 바닷가, 내륙, 도시이며 등장인물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고, 그래서 사회의 단면들을 담고 있지만 장르를 말하자면 하나 같이 해양문학이다. 각 작품마다 바다의 모습과 표정, 심상을 담고 있어 그러하다.

 

바다에 대하여 작가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광대한 자연을 말하려 한다. 깊은 바다 공간에 머무르면서 삶은 신화처럼 반짝이고 풍경은 전설처럼 와 닿았다. 뭍의 눈으로 보자면 전혀 일상이 아닌 일상이 일상처럼 흐르며 바다는 시시각각 형언키 어려운 모습을 보여 주는 데 대하여 작가는 특히 그것을 외경, 피안이라고 했다. 저 아늑한 카리브 해의 풍경 묘사와 황천을 만나 태풍권을 헤쳐 나가며 겪는 바다 체험과 북극의 기이한 자연 현상인 오로라를 그린 부분은 기록문학을 읽는 재미를 제공한다. 그보다 더욱 눈을 끄는 것은 항해사의 항해 업무에 관한 것이다. 지금은 대양에서의 위치 확인을 GPS로 해결하지만 그 시절은 육분의(六分儀)라는 항해계기로 천체의 고도를 관측하여 구했다. 말하자면 태양, 달, 별 천체들이 항해사의 항해업무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었던 것인데, 작가는 천체들과 친구 삼은 특혜의 호연지기를 노래하고 있다. 참으로 별난 일이 아닌가? 그 와중에서도 문학서를 곁에 두고 탐독 했으니 작가의 문학의 8할은 바다가 만든 것이 아닌가?

일등항해사 재직 중 하선한 작가는 육지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도 곧잘 바닷가를 찾아가곤 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떠나온 바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바닷가의 포구, 습지, 그리고 섬을 여행하는데 그 중에서도 섬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그는 섬을 무척 사랑한다. 바다에 떠 있는 섬의 순수. 어쩌면 작가는 마음의 한켠에 아무도 닿은 적이 없는 섬을 두고 있지는 않았는지. 그 섬에의 천착이 결국에는 작가를 여행가로 만들었다. 아마도 서해안, 남해안의 많은 섬들을 섭렵했으리라. 덕분으로 독자는 가지 못한 바다 마을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었으니 소매물도, 욕지도, 위도, 독도 등이 그러하다.

 

다년간 바다살이를 거쳐온 해양인이 뭍의 삶을 시작할 적에는 땅멀미를 겪게 된다. 깊은 바다의 서늘한 바람과 거친 해류가 생각과 마음에 형질변경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하여 웬만한 세월이 흘러도 이미 각인된 바다의 깊은 모습은 남아 있다. 바다가 전해 준 지혜와 깨달음은 작가의 뭍살이와 의식을 관류했을 것이다. 도시와 문명에 대하여, 그 빛과 그림자에 대하여, 그림에 대하여, 음악에 대하여, 그는 푸른 해류처럼 굽이굽이 흘러갔다. 어쩌면 본 작품집은 바다사람의 육지 이주 보고서이기도 하다.

 

본 작품집에서 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유소년 시절 시골 풍경에 관한 것이다. 글을 읽고 있노라면 왠지 눈시울이 붉어진다. 분명히 살기 어렵던 가난한 시절의 이야기인데 왜 그리도 마음 가득 훈훈해지는 지 알 수 없다. 작가의 순진무구한 감성을 엿보는 것 같아 부럽기만 하다.

 

투병생활을 이겨내고 창작집을 낸 작가의 끝없는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다 함께 바다를 향하여 문학의 배를 탄 동지들이다. 앞으로 나의 수필에 미답의 바다 이야기를 더 담으려 한다, 라는 작가의 말처럼 다음 작품집을 기다리고 싶다. 오래된 해류에 흘러 들어온 푸른 편지 한 통이 지금 내 책상 위에 놓여져 있다.

 

심호섭 ㅣ 시인

 

□ 자료출처 : 海바라기 2010년 5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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