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등록일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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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다

김봉천

 

숱하게 접어야 했던 내 가난한 꿈의 조각들을 펴서

노을진 水平線 너머로 보내면

이제 記憶(기억)에도 가물거리는

지난날의 내 억울한 辨明(변명)들이 가슴 아프게 고개를 들고

바다에서 하늘을 보고 누워 있으면

내 꿈들이 自由를 渴望(갈망)하는 애처로운 소리를 낸다

 

잔잔한 물결을 가르는 뱃전에 서서 돌고래 쇼를 보면서

波濤(파도)가 전하는 슬픈 이야기를 듣는다.

人魚는 바닷사람을 사랑한 물고기의 後孫이라고!

조개들이 속삭이는 그들만의 蜜語(밀어)를 엿듣는다.

바다로 간 사랑하는 男子를 渴望하다

어느 날 부르는 소리를 따라 들어간 그 바다에서

人魚가 되어 나타난다는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의

傳說을 듣는다.

 

아직도 예쁜 편지지만 보면 괜히 가슴이 설레고 수신인도 없는 편지를 누군가에게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은 아직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아픈 꿈들이 가슴에 남아 자꾸 표현되기를 갈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글로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은 평소에 아마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그렇다 내가 말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들이나 꼭 해야 할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빠뜨리고 나서 나중에 아이고 이번에는 이 말을 또 빠뜨렸구나 하게 된다.

바다에서 한 평생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까웠던 친구도, 믿었던 애인도, 친척도 버려야 하고 더 나아가 부모 형제까지도 잠깐 버려야만 살수 있는 곳이 바다다. 아니 버리는 것이 아니고 버림을 당하면서도 묵묵히 감내하며 살아가는 곳이다. 바닷사람들은 부모, 형제, 처자식에게조차 어떤 고난이 닥쳐도 자연의 순리에 맡기며 하나님한테 맡기고 모른 체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들 힘들어 할 수밖에 없다. 우리들에게 그것이 가장 아프고 힘든 상처인데도 육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바다를 모르기 때문에 바닷사람들을 이해하려도 하지도 않고 다 떠나가게 되어 있다.

몸이 멀리 있으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지만 바닷사람들은 결코 몸이 멀리 있어도 마음이 멀어진 것이 아니고, 세상사와 멀어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미 마음 속에 있는 그들만이 자기의 전부인 것처럼 더 깊이 더 고이 간직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바닷사람들은 그냥 사람이나 동물만 봐도, 산이나 들이나 식물만 봐도 그저 반갑고 어떤 때는 눈에 이슬이 맺힐 때가 있는데 그들은 그것을 모르고 그들의 잣대로 우리를 잰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당하고 그저 한잔 술로 변명할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며 다시 바다의 품으로 자신을 맡기게 된다. 그리고 바다로부터 우리들의 상처난 가슴이 위로를 받는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겨우 아는 느림보다. 그러나 바다는 나처럼 둔하고 약삭빠르지 못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곳이다. 영악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바다를 떠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바다도 그런 사람들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나는 30년 전 겨울에 바다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바다를 선택했고 그 동안 한번도 곁눈질 해보지 않고 바다는 오직 나의 일편단심 민들레였다. 그리고 그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는지 지금은 바다가 나를 택해서 놓아주질 않는다. 내가 바다를 선택했을 때의 바다는 파도 일렁이는 모습까지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보기 좋았었다. 너와 나에게는 꿈과 희망이 있었으며 힘이 있었고 우리가 들락거리는 거리에는 언제나 젊음이 넘쳤었다. 갈매기 날갯짓 속에서도 살아 숨쉬는 생동감이 넘치고 살아있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었다. 햇빛이 물결 위에서 쉬어가고자 할 때 바다물결은 참으로 황홀하게 아름다운 은빛물결이 된다. 그 아름다움은 일출을 보는 것이나 저녁노을을 보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정말 아름다운 은빛물결 속에서 살았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이제는 나와 같이 바다를 선택했던 내 친구들은 거의 모두가 바다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내 친구들과 어울렸던 그때의 바다는 정말 아름다운 바다였었지만, 이제 그들이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 홀로 남은 바다는 회색 빛 바다다. 바다도 썰렁하고 항구도 썰렁하며 갈매기 날갯짓마저 힘이 빠져 외롭고 처량해 보인다.

나는 내 친구들과 함께 밀물따라 들어 왔지만 썰물 때 그들은 동작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었고, 동작이 느린 내가 눈을 들어 주위를 보니 함께 들어왔던 친구들도 밀물도 온데 간데 없어지고 나무꾼에게 옷을 뺏긴 선녀처럼 내가 입고 갈 옷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바다는 내가 애처로워 보였던지 사랑하기 위해 나를 택한 것처럼 나를 사랑했다. 지금은 비록 내게서 젊음이 사라지고 있듯이 바다에서도 꿈이 사라지고 있지만, 지금도 나는 한번도 나를 배신하지 않은 바다를 사랑한다. 그리고 내가 살아 숨쉬는 한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긴긴 시간동안 한번도 병치레없이 건강한 생활과 한번도 쉬지 않고 승선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곧 바다가 준 큰 은혜다. 바다가 나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면 나도 결코 지금까지 바다에 남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하나님한테 감사를 드리고 또 바다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 내 혼자의 힘으로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알고 언제나 이런 거대한 힘들이 나를 지키고 도와서 오늘 이처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 자료출처 : 해기 200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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