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나의 스승, 나의 미래

등록일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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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나의 스승, 나의 미래

박유경

 

그림같이 펼쳐진 한려수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해안도로를 한 시간 남짓 달려 해바라기 같은 파라솔이 빽빽한 학동 몽돌해수욕장을 지나면 인적이 드문 한적한 갯마을 󰡐다대󰡑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어머니가 태어나 자란 조그만 그 해안마을은 참으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매년 여름, 휴가차 방문하곤 했던 거제도의 바다는 나에게 낯설지 않은 곳이었다. 외갓집이 거제도에 있는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한번 가려면 맘먹고 떠나는 여정을 난 마음만 내키면 손쉽게 다녀갈 수 있었고 모든 시름을 바다에 맡겨두고 담백한 해산물로 미각의 즐거움까지 만끽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곤 했다. 외갓집 앞 바다에서, 친척언니, 오빠들과 자맥질하면서 장난치는 걸 좋아했다. 물장구를 칠 때면 발가락 사이로 뽀얗게 일어난 흰 거품으로 나를 간지럽히는 바다를 느꼈고 그 어린 시절부터 바다와 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시절 바다는 나에게 신비하고 감탄스러운 존재였다. 시간에 맞추어 드러나는 바다의 발가벗은 모습은 정말 신기했다. 바닷물이 빠져버린 갯벌은 너무나 신나는 놀이터였다. 외갓집에서 처음 접하는 갯벌을 보고 한껏 흥분했던 나는 뻘로 성급하게 발을 내딛었다. 그런데 바다는 내가 반가워서인지 내 발목을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엔 하얀 티셔츠와 온 몸에 바다의 뻘이 묻어 바다와 똑같이 되어버렸다. 씨익 웃을 때 드러나는 이와 눈만 하얗고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나와 갯벌이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어머니께서 조개를 캐는 방법도 가르쳐주셨다. 갯벌에 난 작은 구멍 주위를 호미로 캐면 바다가 숨기고 있던 조개가 짜쟌하고 등장하는 것이었다. 고것 참 신기하다 싶어 나도 열심히 파보았지만 계속 허탕이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뻘 속에 숨어 있던 조개 녀석을 찾아내었다. 한번 마음을 연 바다는 내게 맛조개, 새우, 게 같이 귀여운 녀석들을 계속해서 선물했다. 신이 나서 주위에 물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던 나는 멀리 어머니께서 부르는 소리에 아쉬운 마음을 접고 육지로 향했다. 바다는 과하게 가지는 것을 경계했던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욕심부리지 않고 바다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바다는 내 비밀일기장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수험생으로 많은 부담을 느끼며 가슴이 답답해질 때 나는 바다를 찾았다. 광안리 방파제에다 뭉톡한 몽돌로 낙서를 해가며 바다에게 온갖 투정을 다 쏟아내곤 했다. 그럴 때 마다 바다는 늘 고요하게 나를 감싸 안아 주었다. 해풍에 실려 오는 약간은 끈적이는 듯한 바다의 해초 내음이 내 머릿속의 모든 고뇌를 정화해주고 나를 청량하게 만들어 주었다. 바다는 엄마 품속처럼 포근하고 따뜻했다. 보드라운 모래사장 속에 손을 집어넣으면 바다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여름철 수영한 뒤 추워질때면 난 바다 곁에 누워 모래 속에 몸을 부비곤 했다.

바다는 나에게 삶의 길도 제시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해양대학교를 선택했다. 밤늦게 어두운 학교 방파제를 거닐어 나갈 때 바다는 눈동자 속에 별을 심어 그 빛으로 나를 지켜주었다. 또한 바다는 나에게 세상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연인을 선물했다. 그가 바로 같은 학교 해사대 학생이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그와 함께 거제도를 다녀왔었다. 외갓집 앞 길게 펼쳐진 방파제 끝에 아담하게 지어진 빨간 등대 앞에서 우리 뱃님은 나에게 말하였다. 잔잔한 바다가 있는 날도 있고 궂은 바다가 있는 날도 있지만 변함없는 것은 바다의 자애로움인 것과 같이 변함없이 바다처럼 늘 내 곁에서 날 지켜주겠노라고... 어릴 적부터 나와 놀아주고 내 고민을 들어주고 잘못하면 혼을 내고 어떤 때는 말없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나를 바라봐주었던 엄마와 같이 든든했던 바다... 그는 나에게 그러한 바다가 되주겠노라 약속하였다. 바다에 나가 있을 날이 많은 그라 걱정이 많기도 하였지만 나는 기다림이 두렵지 않았다. 그를 알고부터는 바다는 나에게 더욱 큰 의미가 되었다. 항상 그와 나와 바다는 함께였다. 학교 등나무에 앉아 그를 바라볼 때도 그의 등 뒤로 바다가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제복은 그가 앞으로 바다를 항해해 나갈 예비 상선 사관임을 늘 말해주고 있었다.

요즘 들어 바다는 내게 인내하는 것에 대해 가르침을 주고 있다. 지금 실습 나가 있는 그에 대한 그리움이 밀물처럼 밀려 올 때면 난 고개를 들어 반짝이는 은빛 바다를 바라보곤 한다. 이 바다 어디쯤 그가 있겠지 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면 바다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릴 때도 있다.

저번 태풍 매미가 왔을 때, 당장에 옥상에 물탱크가 넘어지고 창 밖으로 온갖 것이 다 날아가는 것 보다 더 크게 두려웠던 것은 바다가 화를 내는 것이었다. 한국과 인도양은 한없이 멀건만 혹시라도 매미의 바람 한 점이 그의 배 곁에 갈까하는 노파심에 메일로 몇 번이나 그의 안부를 묻곤 했다. 늘 내게 삼켰던 태양을 토해내는 장엄한 일출의 광경과 은은한 달님을 비추어내던 거울과 같은 신비로움을 선사하던 평화로운 바다의 모습과는 달리 해안마을을 초토화시켰던 바다의 모습은 두렵고 무서운 것이었다. 마치 오만한 인간의 자만을 꾸짖기라도 하는 듯 화를 내던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이것이..이것이 대자연의 섭리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바다에 대한 경외심이 들었다. 태풍이 지나간 바다는 한없이 넓고 푸르기만 했다. 뱃님의 여자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그때서야 실감하였고 그 이후 바다가 늘 고요하기만을 항상 기도한다.

바다는 자신을 오염시키고 착취하는 인간들을 위해 기꺼이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되어주었다. 바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자식을 키우고 살아올 수 있었다. 우리 외조부모님께서도 양식업을 하셨으니 내가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도 바다가 길러주었으며 나 역시 바다로 인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셈이다.

바다에 대한 감사함이 인간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바다는 결코 인간에게 정복당하지 않는다. 아니, 바다는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대자연이다. 바다에 순응하고 경외스러운 마음으로 소중히 여겨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4위의 항만 물동량을 자랑하는 해운강국이다. 나 역시 해운경영학도로서 우리나라 해운 발전에 일조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인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려 애쓰고 있다. 바다는 앞으로 나와 그가 살아갈 터전이다. 내 꿈을 펼칠 곳도 바로 이 푸르고 거대한 바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늘 바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바다는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였다. 바다를 통해 앞으로 살아갈 원동력인 나의 꿈을 새롭게 정립하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부산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여기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 학기에 󰡐해양문학의 이해󰡑라는 수업을 듣게 되면서 알게 된 유선장-선원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끝까지 배를 떠나지 않고 살신성인하셨던 존경스러운 분-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바다가 없어 서울의 편한 직장을 다니지 않겠다고 한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20여년 남짓 살아온 동안, 바다가 늘 곁에 있어주어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바다는 내가 갓난 아기로 배넷저고리를 입은 모습에서부터 교복을 입은 여고생의 모습, 제법 어른 티가 나는 대학생의 모습까지 빠짐없이 지켜봐주었다.

앞으로 남은 내 삶의 여정에서도 늘 바다 곁에 머무르며 함께 할 것이다. 무한한 생명의 보고 느끼고 사랑하는 바다를 보여주고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될 것을 가르칠 것이다. 나 역시 바다를 닮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앞으로 바다에게 내 꿈을 꼭 이루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의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자료출처 : 해기 200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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