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만난 인연(양철성)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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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만난 인연

 

가까운 육지가 50마일 이상인데 잠자리가 찾아왔다. 그래 그 잠자리 말이다. 육지에서 떼거리로 몰려다는 날개달린 놈들! 어디서 온 녀석일까? 생명을 유지하고 종족을 이어가려면 물이 필수일 텐데……. 궁금증만 남기고 녀석은 또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어디서든 남은 생을 즐기며 살기를…….

오늘 무슨 날인가보다. 강남 갔던 제비도 우리 배가 반가운지 잠깐 인사하러 들렸다. 강남이 베트남 아니었나? 생각하며 혼자 미소 지어 본다. 아마도 근처 어디에 해도에도 없는 쉼터가 있는가 보다. 새들과 동물들의 쉴 곳과 먹을 것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뭐 그런 내용의 성경구절이 생각난다. 허~ 그 녀석 간줄 알았더니 아직 주위를 맴돌고 있다. 아마도 혼자 길을 잃고 헤매다 허기에 지쳤나보다. 도와주고 싶지만 딱히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잠깐 내려앉아 쉬어도 되련만, 부지런한 날개 짓이 피곤해 보이고 애잔해진다. 미칠 것 같은 궁금증에 사전에서 찾아보니 강남이 베트남이 아니라 양쯔강 남쪽을 의미한다는데 여기서는 훨씬 북쪽이다. 여기까지 웬일인지 모르겠다. 이번에 조금 더 가까이 왔기에 조금 쉬었다 가라고 말을 붙여봤다. 자식 기겁을 한 모양이다. 브릿지 너머로 솟아오르더니 쌩~하고 사라졌다. 그것참, 괜한 짓 해가지고……. 괜히 미안하다.

또 왔다. 어쭈~ 이젠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뻗은 내 손위에 앉을 듯 날아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참나~ 거기서 “이리와 이리와 쭈쭈쭈~” 이러고 있다. 무슨 강아지도 아니고 한심한 놈……. 그래도 녀석은 아랑곳 하지 않고 멋진 플라이 바이 비행-전투기가 고도를 낮추어 고속으로 함선 옆을 비행하는 것으로 고도의 비행술이 필요하고 종종 축하 비행 목적으로 사용됨-을 선보이고는 저 멀리 검은 점이 되어 사라진다. 주변에 갈 곳이 마땅치 않으면 아마 돌아오겠지. 하기야 다시 보고 싶다는 건 그냥 내 욕심이다.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아쉬움에 브릿지를 돌며 좌우현을 한 번 더 둘러보지만 역시나 이젠 진짜 떠난 모양이다. 제비가 다녀가고 나니 아까 그 잠자리가 다시 돌아왔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우릴 따라 베트남까지 가려나보다.’라는 생각까지 이어질 때 쯤 금세 또 사라져 버렸다. 잠자리는 얼마나 살까? 아까 그 녀석은 생이 다하기 전에-굶어서 말고 늙어서-육지에 도착할 수나 있을까?

이 녀석은 뭐지? 잠자리와 제비가 떠난 빈자리를 깊은 상념으로 채우고 있는데 언제 부터인지 처음 보는 새가 한 마리 선수 주변을 맴돌고 있다. 갈매기 같기는 한데 홀쭉하고 길다. 그냥 선수에서 맴돌기만 하고 좀처럼 가까이오지 않아서 도대체 정체를 알 수가 없다. 제비나 잠자리처럼 신기하고 반갑지는 않은데 그래도 궁금증이 들게 한다. 가만, 이 녀석 갈매기 맞다! 아니 맞는 것 같다. 완전 하얀색에 조금 홀쭉하긴 하지만 분명 갈매기처럼 날고 얼굴도 닮았다. 원래 이쪽 동네 갈매기들이 다 이렇게 생긴 건지 아니면 이 녀석만 특별한 건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갈매기 사촌은 될 거 같다. 그래서 그냥 갈매기 사촌이라 부르기로 했다. 어차피 나 혼자 부를 건데 뭐.

갈매기 사촌에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금방 날치 한 마리를 낡아 챘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일본에서 항해할 때 갈매기 부부가 교대로 날치를 잡던 모습이 생각난다. 비행술이나 낚아채는 모습이 영락없이 닮았다. 다시 한 번 갈매기라는 내 추리가 틀리지 않았음에 뿌듯해한다. 그나저나 이 녀석은 쉬러 온 게 아니라 배 주변에서 놀라 도망가는 불쌍한 날치들을 잡으려고 온 거네. 얌체 같은 놈. 어쩐지 정이 안가더라니. 그래도 지도 먹고 살려고 그러는 건데 탓할 수는 없고 날치들만 불쌍하다.

날치들은 또 살아보겠다고 허둥지둥 날아오른다. 다행히 그 녀석은 배 불리 먹었는지 어디론가 가고 안 보인다. 물고기가 나는 것도 우스꽝스럽지만 다른 놈들처럼 물속으로 쏙 들어가서 있으면 더 안전할 텐데 참 바보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속에도 뭔가 무서운 놈들이 있는 걸까? 하기야 몇 만 년 진화해온 그 가치를 어찌 꼴랑 반백년도 못살아본 내가 알 수 있을까.

헉~ 그 녀석이 돌아왔다. “날치들아! 튀어! 아니지 튀면 점심거리 된다. 꼭꼭 숨어라!” 내 말을 알아들은 걸까? 한 녀석도 안보이네. 그러고 보니 아까 잡은 날치는 자기가 안 먹고 집에 갖다 준 모양이다. 별로 맘에 안 들었었는데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콜로 날개도 젖을 텐데 갑자기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한 30, 40분 걸린 것 같은데 근처에 집이 있는 모양이다. 궁금하다. 육지일리는 없고 분명 조그만 섬일 것이다. 날치도 불쌍하고 갈매기 사촌도 기특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한 마리가 더 날아왔다. 와이프까지 데려왔나 보다. 게다가 가마우지까지 사냥에 합세했다. 불쌍한 날치들, 그래도 너희들의 희생이 어느 가족들에겐 삶의 연장으로 남을 고귀한 희생이다.

갈매기 사촌들은 스콜 때문인지 일찍 자리를 떠나고 끝까지 날치를 찾던 가마우지 마저도 별 소득 없이 떠난다. 비가 쏟아지면서 파도도 잠시 잠잠해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시원함과 빗소리 속의 정적감에 젖어 본다.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경험하고 깨닫게 한다. 난 오늘도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들 속에서 그리고 그들이 남기고 간 적막함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들을 얻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든다. 사람은 가끔 혼자만의 정적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정적, 그것이 가져다주는 차분함을 통해 우리는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돌아본다는 것, 그것은 그때와는 다른 눈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돌아본 것들을 후회나 그리움으로 바꾸고 마음을 정화시킨다.

(후기-돌아오는 항해 길에서)

아마 여기쯤 항해할 때였나 보다. 잠자리, 제비와 함께 찾아왔던 그 갈매기 사촌 부부가 다시 돌아왔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야 스토리가 되니까. 좀 전에 가마우지가 사냥에 성공해서 그런지 날치들이 전혀 날아오르지 않는다. 아니면 파도가 거칠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 마침 한 마리가 사냥에 성공했다. 이제 한 마리가 남아서 사냥을 하고 있다. 진짜 실력 있는 놈들도 날치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는 몇 번이나 날치 뒤꽁무니를 물어야 한다. 계중에는 바다 속까지 다이빙해서 따라가는 놈들도 있지만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냥에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오늘 갈매기 사촌 부부는 운이 좋은 날인가 보다. 나머지 한 마리도 그새 사냥에 성공했는지 사라져 버렸다. 지금쯤 바다 위에 떠서 식사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물론 상당부분은 배 속에 저장했다가 새끼들에게 갖다 주겠지. 다시 시작된 스콜과 함께 적막이 나만의 시간이 되어 찾아온다.

 

□ 양철성. ㈜효동선박 이등항해사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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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21호 독자투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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