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 가까워지다(최현숙)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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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 가까워지다

 

어촌에 머물면서 낚시와 어촌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TV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어촌편’ 같은 여행상품이 나온다고 한다. 해양수산부가 공모한 ‘제2회 우수해양관광상품전’에서 ‘캠핑과 어촌체험을 결합한 관광’이 최우수 상품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삼시세끼 어촌편’의 배경은 섬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섬이 갖고 있는 외로움의 이미지 대신 바다와 사람이 어우러지는 낭만을 시청자에게 선물했다. TV를 보며 출연자들을 따라 동네 산책하듯 가볍게 걸어 나가 한적한 바다에 낚싯대를 던지는 여유로움도 즐겼다. 또한 어촌 주민들과 소통하는 모습은 빌딩 숲 도시에서는 느끼기 힘든 소소한 행복이었다. 그런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섬에 대한 환상을 품게도 했다.

섬은 바다위에 떠 있는 모습 그 자체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하지만 고립된 섬은 불편함과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곳,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해야 하는 곳이다. 성난 파도가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는 섬마을 어부들에게 섬과 바다는 삶의 터전이다. 섬을 아름답다고만 하기엔 어딘가 씁쓸하고 애틋하다. 그래도 섬은 여전히 내게 낭만적인 공간이다.

육지에서 더 멀리 떨어진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 계기는 단순하다.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면서 흥얼흥얼 혼자 노래를 자주 불렀다. 음향 좋은 전축도 텔레비전도 없는 소박한 살림살이에 문화적 혜택은 오로지 조그마한 라디오 한 개가 전해 주던 시절이었다. 어머니의 십팔번 노래는 가수 이미자가 부르는 ‘섬마을 선생님’이었다. 어머니 곁에서 하도 많이 듣다보니 초등학생이었던 나도 그 가사를 다 외웠다. 어디 그 뿐인가 ‘흑산도 아가씨’도 있었고 가수 조미미가 부른 ‘바다가 육지라면’도 있다. 유독 섬과 관련된 대중가요를 어머니가 왜 좋아하셨을까 생각해 보니 가사도 외우기 쉽고 애수가 깃든 한이 서린 곡은 눈물샘도 자극해 고단했던 삶을 보듬어 주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어머니의 노래를 들으며 섬사람들에 대한 친근감과 함께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섬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몸이 아플 때 풍랑이 일면 어떻게 치료하고 생필품은 어떻게 마련할까. 섬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섬에서 자라고 섬에서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고 늙어가고 생을 마감하고 그럴까. 섬으로 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연이 있을까. 섬사람들은 다 억척스럽고 투박하고 비린내가 날까 등 다양한 상상을 하곤 했다.

어른이 되어 뉴스나 책을 통해 간접 체험 했던 섬사람들의 생활을 섬 여행을 통해 잠깐 느껴보긴 했지만 단편적일 뿐 그들의 삶 전부는 아니었다. 실제 섬에서 살아내려면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거의 대부분의 생필품을 육지에서 들여와야 하니 뭐 하나 사도 배송이 되는지 여부를 꼭 물어봐야 되고, 도서지역이라고 추가요금도 더 내야하는 것도 있다. 어린 아이들이 있다면 교육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섬에서 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지금도 섬에 가려면 늘 날씨를 먼저 살펴야 한다. 물안개가 느닷없이 피어오르거나 비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면 뱃길은 험난해진다. 큰 맘 먹고 섬에 들어간 경우에도 자칫 빠져 나오지 못해 낭패를 겪을 때도 있다. 25년 전 울릉도에 갔다가 태풍을 만나 빠져 나오느라 고생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바다 한 가운데서 뛰어내릴 수도 없었던 배 멀미의 고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오랜 세월 육지 중심으로 생각하며 살아오다 보니 섬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이십여 년 전에는 ‘섬놈’이라며 섬사람들에 대한 치졸한 멸시까지 있었다. 이런 생각의 뿌리는 조선왕조의 폐쇄적인 해양 정책에 잇닿아 있다. 해양 왕국이었던 백제나 장보고의 청해진이 바다와 섬을 기반으로 세계와 소통했고, 고려시대에는 예성강 입구 벽란도는 개경에 출입하는 외국인들이 통관 절차를 밟던 국제무역항이 있었다. 고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는 바다와 섬을 통해 일본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 인도, 아라비아까지 소통했다. 그런데 명나라가 해금(海禁)정책을 펴자 조선 역시 왜구의 약탈을 피한다는 구실로 섬을 비우게 했다. 명나라는 정화(鄭和)를 통해 동남아시아와 인도, 페르시아만과 아프리카 서해안까지 항해하면서 우수한 조선술과 항해술을 자랑했다. 하지만 중국은 농업을 중요한 산업으로 여겼고 농민들에게 거두는 세금과 노역이 중요했기에 육지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금하는 정책을 폈다. 조선 역시 그런 중국을 따라 섬과 바다를 소홀히 여겼다.

활력 넘치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문명 교류의 중심 공간이었던 섬이지만 수백 년 동안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면서 바다와 섬은 점차 잊혀 지거나 버림받은 공간이 됐다. 사람이 살게 되었다 하더라도 유배지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도피 공간이 되면서 섬은 더 고립되었다.

그런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농촌과 어촌이 함께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는 바다에 생업을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뱃놈’이나 ‘나랫가’ 사람이라며 천하게 여겼다.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이 기상 관측이나 첨단 어군 탐지 장비도 갖추지 못하고 조그만 고깃배에 의존해 생명을 담보로 잡아온 생선이나 해산물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어부들의 일을 존중해 주지 않았다. 어부들은 어업 중 조난을 당해 온갖 고생을 하기도 하고 성난 바다에 생명을 빼앗기기도 한다. 밥상 위에 오른 생선 한 토막은 어부의 피와 땀이자 생명이다. 힘들고 어려운 노동을 해내는 사람들을 더 존중하고 우대해 줘야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예전부터 오히려 더 천하게 여기는 그릇된 풍조가 있었다. 땀과 눈물의 가치를 낮게 보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우리나라 지도를 펴놓고 섬을 찾아보면 다도해라고 불리는 남해안뿐만 아니라 서해와 동해에도 섬들이 무수히 흩어져 있어 있는데 모두 4,400여개나 된다. 그중 사람이 사는 섬이 500여 개, 나머지는 무인도다. 섬에는 해송, 동백나무, 고로쇠나무, 오리나무, 참나무, 팽나무 같은 다양한 나무들이 많고 푸른 바다와 잘 어울린다. TV 방송이나 섬 여행 책을 통해 몇몇 섬들은 피서지나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섬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내가 다녀온 섬 역시 관광지로 유명해진 섬이 대부분이다. 제주도, 울릉도, 거제도, 홍도, 완도, 보길도. 이 중 거제도와 완도는 육지와 연결된 다리가 있어 찾아가는 동안 섬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육지에서 2~3시간 배를 타고 찾아가는 섬 여행길에 출렁거리는 배 위에서 내 자신 망망한 바다 위에 한 점처럼 느껴졌다. 바다를 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해방감을 느끼는 건 잠깐이고 그 넓이와 바다가 가진 보이지 않는 힘 때문에 두렵기도 했다.

섬과는 특별한 연고도 없고 가야할 특별한 계기도 없었기에 자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섬은 낭만과 고독과 유배의 땅이라는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기도 했다. 어쩌다 관광객으로 찾았던 섬일지라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고유의 문화와 자연이 특별했기에 여전히 그곳에 마음이 붙잡혀 있다.

그런데 도시화, 산업화로 섬사람들도 육지로 도회지로 몰려들고 젊은 사람들은 섬을 떠나고 있다. 이제 바다와 섬 생활이 전부인 사람들만이 숙명적으로 섬에 남아 생을 이어가면서 섬이 한산하고 쓸쓸해지고 노쇠해 질까봐 걱정이다. 그래도 바다와 섬을 오고 가는 크고 작은 배들, 섬사람들의 거친 숨결과 해풍을 호흡하며 자라는 농작물, 포구에서 햇빛에 말라가던 생선의 속살, 고기잡이를 준비하기 위해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이 바쁜 손놀림과 육지와 다른 독특한 자연 환경은 여전히 섬에 대한 나의 낭만을 일깨운다.

‘삼시세끼 어촌편’ 같은 섬 체험 프로그램의 활성화는 섬과 우리를 더 가깝게 할 것이다. 나도 그 프로그램을 이용해 파도와 바람으로 일상을 빚어온 섬들을 찾아야겠다. 고유의 문화와 끈끈한 공동체가 남아 있는 섬이면 더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작은 섬이라 외롭게 보이는 섬이면 어떠랴.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와 애틋한 사연에도 흠뻑 젖어볼 것이다. 섬을 걸으며 사유하고 치유되는 느낌을 누리고 싶다. 그리고 저마다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섬 이야기를 알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혼을 느끼고 섬의 매력에 듬뿍 빠질 날을 기대한다. 섬으로 향하는 뱃고동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것만 같다.

 

□ 최현숙, 2003년 ≪수필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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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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