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바라보다(임연태)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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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SEA) 나를 보다(SEE)

 

작년 이맘때… 19년 동안 대학 한 가지만 바라보고 공부했던 나에게 수능실패라는 시련은 감당하기 어려운 암같은 존재였다. 나는 마치 율리시즈에 나온 오디세우스처럼 앞길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위에 있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의미없이 살고있던 나에게 정시모집기간이 다가왔고 그런 나에게 해양대를 졸업하신 아버지께서 해양대를 추천해주셨다. 그렇게 나에게 해양대 아니 바다는 밀물처럼 다가왔다. 처음 아치섬을 접하게 된 대학 신입생 때의 일, 그때 걸었던 방파제와 서쪽에서 불어온 한겨울에 만나는 시원한 바람, 동쪽 너머로 보이는 출항을 기다리는 작은 고깃배들과 그 너머로 보이는 대양의 하늘과 바다의 맞닿음, 끝없이 나아가는 나의 시야, 어색하고 이상할 것만 같았던 처음의 예상은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학교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땅은 우리에게 융화와 조화를 거부할 때가 많았지만 본래가 육지를 보듬고 있는 바다는 이렇게 타지에서 온 날 자연스럽게 맞아 주었다.

물결이 반짝이는 이곳 아치섬은 예전엔 학관 앞까지 파도가 들왔었다고 한다. 방파제가 물을 막아서기 전엔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은 채로 아치섬 주위를 떠돌던 따스한 해수는 학관 앞 요트계류장에서 잠시 쉬었다 안식을 얻은 채로 다시 나갔을 것이다.

바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바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앞의 바다에 취해 있으면 어느새 수업시간이 다가오고 동기들 하나 둘씩 내 방에 와서 수업을 가자고 한다. 나는 아쉽지만 바다에 대한 명상을 잠시 뒤로한 채 수업을 들으러 털레털레 움직인다. 수업을 듣기 전 여유가 있어 난 방파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방파제를 걸으면 비린 바다내음이 내 코끝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 순간도 잠시 바람이 불어오자 예전의 바다내음은 코 끝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바다내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인생이란 이런 것일까? 머물렀던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새로운 존재가 예전의 존재의 존재이유를 감내하는 것. 바다내음과 바다 바람의 합창이 나에게 삶의 섭리를 하나 알려준 순간이다. 나는 이 순간을 망각하지 않겠다. 아니 영원토록 기억 하리라.

항해 중 하늘이 뚫린 듯이 내리는 비에 매서운 파도가 브릿지를 때리고 있다. 수업시간에 보았던 󰡔Moby Dick󰡕 이란 영화에서의 무시무시한 백경의 모습처럼, 영화 󰡔White Squall󰡕에서 13명의 소년들을 태운 알바트로스 호를 삼켜버린 화이트스콜처럼 이 세상 모든 것을 파괴할 것만 같은 노여움을 보여주는 바다… 해양기상학 때 배운 황천황해의 그 바다…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고 바다에 의지하고 뉘우치기도 하게 만든다는 바다 말이다. 시 「파선」 중에서

 

“탁자는 바로 옆에, 램프는 저 멀리/

성난 폭풍 속에서 다시 모일 수 없네,/

수평선까지 해안은 황량하기만 한데,/

한 남자가 바다에서 손을 들고, 외친다.

‘살려줘요!’ 메아리가 답하기를,

거기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요?”

 

라는 글귀가 머리에 맴돈다. 두렵다. 바다가… 집에 가고 싶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가 생각난다. “아… 이제 끝인가 보다.” 생각하는 순간 큰 파도가 우리 배를 덮친다.

퍽! “야 임연태! 일어나”

옆 동기가 나의 뒷통수를 친다. 수업 끝났단다. 나는 식은 땀을 닦았다. 짧은 꿈이 었지만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바다 항상 고요한 모습을 간직했던 바다는 거친 파도로써 우리에게 다시 자신의 경외심을 일깨운다. 바다는 이런 노여움 속에서도 우릴 길러내기 때문이다. 평온한 물결 속에서 안주하는 연약한 자가 아닌 거친 파도와 싸우며 자신을 키우고 참된 자아을 만나게 해주는 것, 온순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해기인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의 터전인 웅비관으로 올라간다. 가는 길에 바다가 보인다. 뭉게뭉게 핀 하얀 구름 사이로 태양을 잘 가라고 마지막까지 배웅해 주는 배려심 넘치는 바다… 항상 전율을 느끼게 해 날 몸서리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동해이다. 망향대로 오르며, 빨간 노을이 저물고 있는 저 먼 태양 아래엔 마치 네모 선장이 노틸러스호를 타고 구속 없는 인간세계에서 벗어나 자유를 항해하고 있을거란 상상을 해본다. 그들 역시 자신의 위로 저물고 있는 붉은 태양이 있음에 감사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고 말이다. 누군가가 왜 바다가 좋아서 거기 있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모두의 시선을 뒤로 한 채 보이지 않는 곳까지 떠나는 태양을 끝까지 함께 있어주는 바다를 본적이 있냐고 되물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바다가 내가 본 바다 중에 망설임없이 단연 최고라 할 것이다.

인원점검이 끝난후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문다. 저 멀리 부산항이 보인다. 오륙도를 지나 만나게 되는 부산항은 그 모습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맞이하는 이의 반가운 인사인 마냥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다. 대양을 향해 다시 새로운 항해를 할 준비를 하고 있는 배들이 바쁘게 컨테이너를 실어 나름과 동시에 먼 바다를 헤치고 그리운 육지를 향해 돌아오는 배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이런 부산항을 볼 때 마다 언제나 항해로의 의지가 솟아남을 느낀다. 거친 북태평양을 키에 의지하며 항해하는 항해사, 세계 건축가들의 낙서장, 중동 두바이로 향하는 항해사의 인도양 위에서의 여유 있는 커피 한 모금. 가끔 어린 해양대학 학생은 바다로의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기도 한다. 설사 내가 그리고 바라던 꿈이 󰡔백경󰡕에 나왔던 에이헴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다에 잃게 했던 모비딕일지라도, 스타벅의 말을 듣고는 뱃머리를 돌리진 않을 것이다. ‘키를 잡은 건 바로 너’ 라는 율리시즈의 잠언을 가슴속에 새기며 항해하는 해양인을 말이다. 해양대학교에서 바다를 공부하며 그리고 해양문학, 바다문학을 접해오며, 그리고 점점 배를 알아갈수록, 부산항을 접할 때 마다 항해의 의지는 더욱 커져 가는 걸 느낄 수 있다. 30만톤에 이르는 거대 선박에서부터 아치섬 주위를 바람에 의지하여 떠도는 요트까지, 배는 신이 인간에게 바다를 선물해주면서 보내준 바다와 인간에게 선사해준 친구인 것이다. 사람은 배를 통해 대양과 만날 수 있고, 배 역시 인간의 항해가 있을 때에만 진정한 영혼을 찾을 수 있지 아니한가!

처음 해양대에 들어온 순간부터 침대에 누워 다음날을 기약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 바다는 늘 특별했다. 바다의 모습에서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 그리고 인생을 볼 수 있었다. “바다는 비에 젖지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큰 비가 몰아쳐도 결코 늘거나 줄지 않는다. 나도 아무리 큰 시련이 있더라도 그것에 국한되지 않고 내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다.

 

□ 임연태(한국해양대학교 해사수송과학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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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19호 독자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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