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광우도(남청도)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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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광우도

 

제철음식이라는 말이 있다.

음식도 계절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말이다. 이제 바야흐로 봄이다.

봄은 생동의 계절이다. 겨우내 삭풍과 추위에 웅크렸던 가슴을 활짝 열고 다시 활동을 시작할 시점이다. 벌거벗었던 나뭇가지에서 새 순이 돋아나고 꽁꽁 얼어붙었던 땅 속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계절이다.

파릇파릇 올라오는 두릅, 취나물, 현닢, 엉개나무 순 등의 봄나물은 입맛을 돋군다.

‘봄도다리 쑥국’도 봄에 즐겨 먹는 제철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도다리는 살을 발라내어 회를 쳐서 먹어도 맛이 있지만 땅기운을 덤뿍 머금고 올라온 부드러운 쑥을 캐어 도다리와 함께 국을 끓여 놓으면 뜨끈뜬끈하고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가을에는 또 어떤가. 모든 생물들은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하여 한 여름 왕성한 활동으로 살이 포동포동 찐다. ‘가을 전어’는 대가리에 깨가 서 말이나 들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연탄불에 구워 놓으면 기름이 지글지글 흘러내린다. 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올 정도로 맛이 있다는 말도 있다.

 

어제 서울에 있는 친구가 어머니가 편찮으시다고 병원에 입원시킨다고 내려왔다. 그와 나는 일본 산꼬라인에서 LPG선을 같이 승선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일등항해사였고 나는 일등기관사였다. 우리가 탔던 배는 야간에는 기관실에 당직을 서지 않는 기관실무인화선(MO선)이어서 대양항해시엔 매일 오후 4시만 되면 첵크 리스트(MO Check List)대로 기관실을 돌면서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주기 조작핸들을 브릿지로 옮기고 나면 일등항해사 당직시간인 오후4시부터 8시까지 브릿지로 올라가서 함께 당직을 섰다. 직무상 서로 다투기도 했지만 함께 지내는 동안 즐겁게 지냈다. 대학 다닐 때엔 학과가 달라 서로 만날 기회도 없었으므로 별로 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 배에서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다 보니 서로 정이 들었고 하선한 후에도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오던 참이었다. 병원 수속하는 일이 끝나면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약속을 하여 집 근처로 오라고 해 놓고선 차를 몰고 민락동 활어센터로 갔다. 공자도 논어 첫 시작 문장으로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라고 하면서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는 것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할 정도이니 배우고 익히는 것 못지않게 마음에 맞는 친구 사귀기를 좋아한 모양이다. 활어시장 안으로 들어갔더니 수족관에는 광어, 우럭, 방어, 오징어, 도다리, 숭어, 돔, 낙지, 가오리, 해삼, 멍게, 전복, 대합, 꼬막, 개불 등이 살아서 꿈틀거리거나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마산 선창가에 살았으므로 해산물을 일찍부터 접하여 생선종류를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손바닥만 한 크기의 넙치와 도다리는 구별이 쉽지 않다. 원래 넙치는 성어가 되면 빨래판만큼 크게 자라지만 도다리는 그렇게 크게 자라지 않는다. 크기를 보고 대개 구별이 가능하지만 눈의 위치를 보고 쉽게 구별하기도 한다. 그래서 ‘좌광우도’라는 말이 있다.

눈이 왼쪽에 붙어 있으면 광어(넙치)요, 오른쪽에 붙어 있으면 도다리란 말이다. 그런데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서로 반대가 되니 헷갈리기 쉽다. 기준이라는 게 그래서 필요한 것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도 기준이 필요하다.

‘좌광우도’라는 말은 주둥이 쪽에서 꼬리쪽을 바라보아서 좌측에 붙은 놈이 광어고, 우측에 붙은 놈이 도다리인 것이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소주 한 잔 하고 광어회를 먹었다.

 

□ 남청도, 2003 월간 ≪한국시≫ 수필부문 신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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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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