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여기 있다(조득춘)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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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여기 있다

 

1990년 1월 1일.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보았다’라는 제목의 연극이 장안의 화제다. 그런데 나는 지금 나이 사십에 바다를 보고 있다.

새해 첫날 인도양에서 늦잠을 잤다. 어젯밤 몰디브(Maldives)를 지날 즈음 술판이 벌어졌다. 너무 많이 지껄인 것 같아 나는 잠시 머쓱했다. 바다에서 보내는 제야를 바위처럼 침묵한다고 하여 침수당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은 아닐 테지만.

정오에 침실 커튼을 걷었다. 현창(舷窓) 밖으로 검푸른 바다가 눈부셨다. 오늘도 나의 일상은 무엇 하나 달라진 것이 없다. 수평선 넘어 저기 보이는 것은 구름인가 신기루인가? 올해에도 나는 저 바다를 향하여 열심히 나아가겠지만, 다음에 또 만나게 될 그곳에는 또 다른 바다가 있을 것이다.

북위 1도 27분, 동경 71도 30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Cape Town)에 도착하려면 아직 수천 마일을 더 가야 한다. 삼등항해사의 손끝을 따라 잠시 해도(海圖)를 넘어다보았다.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한’ 기억들이 차트 위에 버려져 있다. 어느 것 하나 뜻대로 된 것 없는 인생의 잔해들이 항적(航跡)으로 남아 있다. 지난해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나는 오만했다. 이제는 그 불손(不遜)을 무수히 용서하며 가야 할 바다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글은 1990년 벽두에 쓴 항해일기다. 그때 나는 갑자기 ‘바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미련하게도 국어사전을 펼쳐 보았는데, 거기에 적힌 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옮겨 놓으면 이러하다.

 

바다란 지구상에 짠물이 괴어 있는 넓은 곳.

 

아, 세상에 이런 압권이 어디 또 있을까? 바다가 무슨 밥상 위의 간장 종지도 아니고 ‘짠 물이 괴어 있는 곳’이라니! ( 혹시 내 말이 의심스러운 독자분이 계시면 지금 당장 이희성 박사의 『우리말 사전』을 찾아보시기 바란다 ) 차라리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뜨는 곳’이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인천 시민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참으로 간단명료한 전대미문의 주석(註釋)이라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사전을 뒤적거린 나도 별 수 없지만, ‘짠물이 괴어 있는 곳’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사전 편자(編者) 역시 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다는 지구 표면적의 71%에 해당한다. 그 넓이가 무려 삼억 육천만 평방킬로미터나 된다. 이러한 광대무변한 대자연을 누가 가벼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껏해야 발동선에 실려 범섬(虎島)이나 새섬(鳥島)을 오가던 주말의 낚시 길에서, 그 알량한 노스탤지어로 바다를 쉽게 이야기하려 든다.

내 고향 남쪽 바다는 또 얼마나 쪽빛이었던가. 해조음(파도 소리)에 잠을 깨어 문을 나서면 가슴 가득 출렁이는 은빛 바다가 있었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보면서 인생은 물거품 같고, 애증과 갈등과 온갖 시기와 음모가 바다 앞에서는 무색하다고 읊조렸다. 그것은 마치 바다가 자기네 명사(名士)들만 가진 심오한 철학인 것처럼 너무 쉽게 수사(修辭)하는 것이다.

그러나 1박 2일간 본 그 바다는 사람들이 그저 막연히 생각하는 관념의 바다일 뿐, 결코 살아서 숨 쉬는 차안(此岸)의 바다는 아니다. 백사장이나 낚시터에서 바라본 수평선은 속살의 바다가 아니다. 바다를 쉬이 이야기하지 마시라. 태평양, 대서양, 북빙양에서 피와 땀을 뿌린 동서고금의 진정한 해양인들은 바다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극작가 유진 오닐(Eugene O’Neil)은 그의 작품 「안나 크리스티」(1922년)에 등장하는 크리스처럼 ‘저놈의 악마 같은 바다’라고 외치면서도, 정작 그가 죽을 무렵에는 ‘나의 바다로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조셉 콘래드의 「나시서스호의 검둥이」를 읽고 바다에 미쳐 버린 그는 원래 한 명의 훌륭한 선원이었다.

유진 오닐은 지금 보스턴 외곽의 포레스트 힐스 묘지 한구석에 묻혀 있다. 뉴욕 타임스 건물 근처에서 유랑극단 배우로 활동하던 그의 부모는 근처 한 호텔에서 오닐을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뉴욕 브로드웨이와 43번가가 교차하는 언저리에 가면, ‘미국의 위대한 극작가 유진 오닐이 태어난 곳’이라고 새겨진 동판이 놓여 있다.

1988년 겨울, 나는 외투 깃을 세우며 그 동판 옆에서 한참을 서성인 적이 있다.

취중 결혼식으로 유명한 그를 추모하면서...

결혼식 다음날, 오닐이 술에서 깨어 보니 낯선 여자가 옆에 누워 있었다.

“당신은 누구요?”

놀란 오닐의 물음에 여자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무슨 소리예요? 우리는 어젯밤 결혼했잖아요.”

오닐은 여자의 말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선원이 되어 세상을 떠돌게 된다. 술에 취해 얼떨결에 한 결혼이 그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결국 그의 선원 생활은 바다를 무대로 한 단막 해양극의 백미(白眉) 「카디프를 향하여 동쪽으로」의 주제가 되었다.

오닐은 193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샌프란시스코 교외에 ‘타오(道) 하우스’라는 새집을 마련하고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러나 죽기 3년 전 병세가 악화되어 보스턴의 찰스 강이 내려다보이는 셀튼호텔 401호실에서 2년이나 폐칩(廢蟄)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이처럼 온 세상 사람들이 위대한 극작가라고 추대하는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1931년)가 왜 끝내 ‘나의 바다’라고 유언처럼 말했을까? 바다는 그냥 여기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나아가야만 하는 대상인 것이다. 이스라엘 청년들이 사막에 도전할 때, 영국의 청년들은 바다에 도전했다. 미국의 청년들이 서부에 도전할 때, 이 땅의 우리는 어디에 도전했는가?

 

허먼 멜빌은 「모비딕(Mobby Dick)」(1851년)에서 바다에 대한 열망에 불타오른 한 인간을 이야기하면서 대다수 인간이 지닌 나약함을 추상같이 꾸짖는다. 거대한 흰 고래(백경)를 잡기 위한 포경선 피쿼드호의 선장은 모험심에 차 있다. 대자연에 도전하는 에이허브 선장은 그야말로 ‘멋진 남자’다.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모비딕을 잡으려고 사투를 벌이는 외다리 선장 에이허브, 그는 이렇게 외친다.

“백경(白鯨)이라는 가면을 쳐부수고 정체를 봐야겠다. 나중에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해도 괜찮다. 벽 속에 갇힌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야겠다.”

심지어 그는 ‘태양도 나를 모욕하면 쳐부수겠다’고 말한다. 인간의 무능과 허약함에 반기를 든다. 삶이 그에게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결국 피쿼드호는 침몰하고 만다.

에이허브의 노력은 자신의 죽음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죽음까지 가져왔지만, 굴복하는 삶보다 도전하는 죽음을 택했다. 비록 운명과의 승부에서 패배할지라도, 한 번 맞서 싸워 보고자 하는 도전 의지가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벽 속에 갇힌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야 겠다’고 궐기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증명했다.

 

바다, 여기 그대로 있다. 강산이 변해도 바다는 변하지 않는다. 원은희 시인의 시구처럼 “바다에 가 닿기까지 사연 없는 사람 있으랴”만은, 비록 ‘짠물이 괴어 있는’ 이 바다가 언젠가 마르고 닿는 날이 온다 해도, 누군가 뜨겁게 도전해 올 그날을 위해 저렇게 울렁거림만 남아서 넘실대는 바다가 ‘여기’ 있다.

 

□ 조득춘, 극단 전위무대 예술감독, 저서『바다,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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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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