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의 세계사-서평(김미진)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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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설탕의 세계사(가와기타 미노루 지음)

 

항구는 쉬는 법이 없다. 낯선 사람들이 도착하고 낯익은 사람들이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벌써부터 그립기만 한 사람들이 떠나간다. 단지 이름만 들어본 나라에서 만들어진 상품이 컨테이너의 두꺼운 껍질을 깨고 하늘 아래 모습을 처음으로 드러내는가 하면, 이 땅 어디에선가 만들어진 물건이 거대한 배를 타고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너무나 친숙해서 마치 이 땅에서 태어나 줄곧 우리 곁에 있었던 것만 같은 물건도 알고 보면 불과 얼마 전에 새롭게 도착한 외국의 상품일 경우가 허다하다. 토착화의 정도에 따라 여전히 이국적인 것으로, 때로는 아예 우리의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가령, 서면이나 남포동, 해운대 등 유흥가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는 노래방의 원형인 가라오케나, 겨울이 왔음을 맨 먼저 알리는 붕어빵이 그 예가 되겠다. 물론 우리 땅에서 저 너머 땅으로 간 경우도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의 태생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바깥세상에서 들어온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음을 알고 놀라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항구는 흔히 말하는 이별의 공간이 아니라 만남의 공간이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러 물건과 사람들이 떠나는 곳이고, 새로운 문화, 새로운 상품이 사람들을 만나러 맨 처음 도착하는 곳이다.

한 나라에서 생산된 제품이 전 세계 항구를 통해 그 나라 전체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뿌리내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석유나, TV, 자동차처럼 세계 어디서나 사용되는 상품들을 우리는 ‘세계상품’이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와기타 미노루 교수가 쓴 설탕 이야기는 첫 번째 ‘세계상품’인 설탕의 세계사를 잘 보여준다.

너무나 친숙하기에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설탕의 길을 죽 따라가다 보면, 달콤할 것만 같았던 설탕의 이야기가 생각만큼은 달콤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설탕의 역사는 무엇보다 노예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탕의 생산이 유럽과 그 외 지역으로 널리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이슬람교도들에 의해서라고 한다. 유럽의 크리스트교도들은 십자군 원정 중에 설탕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15세기 말,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대서양의 여러 식민지 섬에서 사탕수수를 대규모로 재배하게 된다. 이른바 인간사냥을 통해 아프리카로부터 노예를 조달하면서 대규모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만들어진다. 미노루 교수에 따르면 사탕수수는 ‘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식물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사탕수수 재배에는 먼저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고, 지력(地力)을 급속히 쇠퇴시키는 바람에 여러 해 연속 경작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노예를 이용해야하는 대규모 경작방식과 새로운 토지를 계속 찾아야 하는 필요성 속에서 사탕수수 재배는 끊임없이 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문제는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진 플랜테이션이 토착경제와 생활방식을 강제적으로 ‘모노컬처(mono-culture)’, 즉 단일경작, 단일경제, 단일생활방식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설탕생산만 하게 된 카리브 해를 비롯해, 면화밭 천지가 된 미국 남부, 국토 전체가 커피콩밭으로 변한 남미의 여러 국가들, 차밭으로 뒤덮인 실론 섬(현재의 스리랑카), 고무나무만 키우게 된 인도네시아의 일부 지역이 그 좋은 예다”(43, 46쪽). 생물학적 다양성이 사라진 섬은 곧 오직 하나의 ‘세계상품’을 생산해 주인인 플랜터에게 이익을 안겨다 주어야 하는, 단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착취의 땅이 된다(55쪽).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인 이 섬들을 움직이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노예사냥꾼들에 잡혀 팔려온 노예들이다. 16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유럽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카리브 해와 브라질, 미국 남부 등지로 끌고 간 흑인노예 수만 해도 적어도 1천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58쪽), 돈에 눈이 먼 인간이 얼마나 비인간적일 수 있는지 씁쓸해진다.

심고, 수확하고, 분쇄를 통해 즙을 짜내고, 그것을 졸이고 다시 증류를 통해 결정화 공정을 거쳐 유럽행 배에 실을 때까지, 설탕 생산은 전적으로 노예들의 노동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플랜테이션에서 생산된 설탕은 17 세기 후반부터 유럽 대륙으로 엄청나게 흘러들고, 그와 함께 사람들의 삶에도 일대 변화가 일어난다.

16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인들에게 설탕은 식품이 아닌 약품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설탕은 특히 결핵환자의 열을 내리는데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또한 설탕은 일찍이 데커레이션의 소재로도 사용되었는데, 중세 유럽의 국왕과 귀족들은 자신의 막강한 권세를 드러내기 위해, 비싼 설탕으로 파티용 데커레이션을 만들게 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파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데커레이션을 부숴 남김없이 나눠 먹었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슈가 크래프트(sugar craft), 즉 ‘설탕공예’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야금야금 부숴 먹던 음식이, 차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공예 예술 작품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17세기 이후, 설탕의 소비는 일반인에게로 점차 확장되는데, 이는 또 다른 ‘세계상품’인 홍차와 커피의 보급과 관련이 있다. 이를 미노루 교수는 “아시아 동쪽 끝에서 채취된 차와 서쪽 끝 카리브 해에서 만들어진 설탕이 영국에서 조우”(71쪽)했다고 그럴싸하게 표현한다. 그런데 왜 원산지인 중국, 일본의 녹차와는 다른 홍차가 영국을 중심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일까? 저자는 동인도회사 소속의 배가 차(茶)를 싣고 아프리카 남단을 향해서 인도양을 항해하던 중, 선박 안에서 차가 발효 되어버려 홍차가 되었다는 설을 전하면서도 그 진위성에 의구심을 표한다.

어찌됐든 낯선 식품인 차 역시 설탕과 마찬가지로 여러 질병에 효험이 있는 약으로 유럽에 소개된다. 건강의 효능을 강조하지 않으면, 습관의 기관인 우리의 혀는 낯선 음식에 대한 경계심을 결코 풀지 못하는 것일까?

17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차 100 그램 가격이 도시 직공의 수십일 치 일당에 해당했다고 하니, 그 당시 차의 만만치 않은 가격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차와 설탕은 대중적 음식이 된 것일까? 초기, 차와 설탕은 소비자의 경제적 신분을 말해주는 고품격 식품이었다. 미노루 교수는 영국식 홍차의 기원을 신분의 상징, 즉 ‘스테이터스 심벌(status symbol)’(76쪽)의 과시 욕구로 설명한다. 즉, 비싼 홍차에 비싼 설탕을 넣어 마심으로써 남들과 다른 자신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은 귀족과 젠틀맨, 부유한 상인들의 욕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스테이터스 심벌’로 “일부 국가에서 고급술에 금가루를 풀어 마시는”(p.78) 것을 예로 들면서 그 또한 동일한 욕망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금가루를 넣은 술이 한동안 인기였던 적이 있었다. 물론 금가루와 건강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교묘히 ‘신분 과시’의 욕망을 감추었지만, 문명이 바뀌고, 시대가 달라져도 인간의 욕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설탕을 넣은 홍차는 서서히 상류계급의 독점에서 벗어나 차츰 중류층, 나아가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심지어 교도소의 수인(囚人)에게까지도 지급되는 그야말로 ‘국민적 음료’(79쪽)가 된다. 이러한 대중화는 상류층을 모방하려는 중류층, 그리고 다시 그 중류층을 모방하려는 서민층의 욕구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다. 또한, 설탕을 넣은 홍차가 영국에서 아침식사로 자리 잡은 데에는 미노루 교수의 지적대로 도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공간 문제도 있다. 그에 따르면 당시 도시 노동자들의 주택은 매우 비좁고 더러웠으며, 수도나 화장실은 말할 것도 없고, 제대로 된 요리를 꿈꿀 수 있는 부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146쪽). 또한 농촌에서처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나무와 같은 연료가 없었으므로 노동자들은 가게에서 석탄을 사서 땔 수밖에 없었고, 그것도 그나마 돈이 떨어지면 난방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146쪽). 그러한 상황 속에서 짧은 시간 안에, 제대로 된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점점 더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리듬 속에 빨리 아침 끼니를 때워야만 했던 노동자들이 찾아낸 것이 바로 설탕을 넣은 홍차라는 것이다. 그러나 칼로리가 제로에 가까운 홍차에 설탕을 넣어보았자 비싸기만 할 뿐 영양학적으로는 불충분한 식사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분 과시가 가져다주는 심리적 충족감 때문에 런던을 중심으로 한 도시노동자들은 아침식사로 기꺼이 설탕을 넣은 홍차를 마시게 된다.

반면, 상류층은 또 다른 과시적 차별화를 위해 상류계급 여성들을 중심으로 ‘하이 티(High Tea)’라는 고품격의 심벌을 만들어낸다. 오늘날 ‘오후의 홍차(Afternoon Tea), ‘티 브레이크(Tea break)’의 관습도 바로 이러한 관습에서 내려온 것이다(153쪽).

이처럼 영국 도시 노동자 가정의 아침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은 사탕수수로부터 또 다른 발명품이 등장해 삶을 다시 한 번 더 바꾸는데 바로 럼주다. 수확한 사탕수수를 축력이나 풍력을 이용, 절구에서 천천히 돌려 짜낸 뒤, 그것을 여러 번 졸여 결정(結晶)을 추출한 것이 바로 설탕이다. 그 과정에서 결정이 되지 못한 찌꺼기가 바로 당밀(136쪽)인데, 그 대부분은 양조과정을 거쳐 럼주라는 강력한 알코올 음료가 된다. 비인간적인 처우와 열악한 노동의 현실 속에서 고통 받는 노예들과 식민지 정착 주민들의 시름을 위로해주는 럼주는 천사 얼굴을 한 악마로 그 이름을 떨친다.

우리는 이 책에서 미처 몰랐었던 설탕의 역사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전혀 궁금해 본 적조차 없는 몇 가지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답을 발견할 수 있다. 왜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커피는 차만큼 큰 성공을 거둘 수 없었던 것일까? 왜 프랑스는 찻집이 아닌 카페의 나라가 되었을까? 왜 커피와 코카콜라가 미국인의 음료가 된 것일까? 그리고 또 다른 낯선 상품인 달콤 쌉쌀한 초콜릿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또 어떻게 사탕무가 사탕수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지 책은 설명한다.

설탕이라는 상품을 두고 벌어졌던 착취와 경쟁의 숨은 역사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많은 상품들이 바닷길을 따라 여행을 하고, 도착하는 곳마다 그 곳 사람들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게 된다는 저자의 주장을 되돌아보며 새삼 지구촌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어쩌면 오늘 하역되는 컨테이너 안, 낯선 상품이 머지않아 우리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 놓을지도 모르며, 지금 부산항을 떠나는 상품 역시 낯선 그 곳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결코 닫히지 않는 바닷길을 따라 쉬지 않고 흐르는 상품을 통해 전혀 다른 사람들의 삶은 매일같이 조금씩 천천히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기회에 역동적인 변화의 길목으로서 대양을 조명하는 또 다른 책들, 󰡔향료전쟁󰡕(가일스 밀턴 지음, 생각의 나무, 2002)이나 󰡔소금의 문화사󰡕(피에르 라즐로 지음, 가람기획, 2001)도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하략)…………………

 

□ 김미진, 문학박사. 저서 '프랑스 문학으로 다시 쓰는 바다 발견의 역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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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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