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풍경(김부상)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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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풍경

 

1.

이른 봄 햇살이 좋아 점심식사를 끝내고 곧장  바닷가로 나갔다. 처음 발길을 뗀 곳은 송도 아랫길 공동어시장이었다. 새벽에 경매가 이루어진 장터에는 고등어 찌꺼기와 스티로폼 어상자 조각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고, 삿갓형으로 길게 세워진 경매장 지붕 위에는 괭이갈매기 무리가 잔뜩 오수에 젖어 있다. 나처럼 바다새의 배도 포만하다. 방파제 너머로 남해여객선이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달려가고 있고 주전자섬에서 이송도(二松島)쪽으로 선수(船首)를 박은 러시아 어선 옆에는 통선(通船) 한 척이 마악 아스탕(Astern; 후진)으로 엔진을 쓰며 몸을 틀고 있었다.  

며칠 째 불어오던 매서운 북서풍은 멈추었다. 명랑한 하늘은 냉정한 표정이고 고갈산 자락에 딱정조개처럼 박혀있는 촘촘한 집들의 풍경이 후지컬러 선전물처럼 산뜻하다. 습도가 멀리 달아난 대기는 내 몸무게처럼 가볍다. 자갈치 어시장 후편 매립지에 접어들자  또 무릎이 저려왔다. 몸속에서 물기가 사라지면서 시작된 관절염. 몇 년이나 더 나를 이 땅에 세워둘 것인가, 작은 근심이 너울처럼 밀려왔다. 골다공증이 심해 몇 해 전에 무릎에 인공관절을 박았던 숙모님은 이제 앉은뱅이가 다 되었다. 자갈치와 충무동의 꼭지점인 안벽에 어깨동무하고 몰려있는 폐선들의 용골도, 너울이 밀려올 때마다 삐꺽거렸다. 그 소리가 아프다 아프다 호소하는 팔순이 지난 숙모님을 닮았다. 그러므로, 내 나이가 마음속 교만을 끌어내어 폐유가 엉겨있는 안벽 밑으로 투기했다.  

전경들이 지키던 초소가 허물어지고 양지바른 그 터에 노인이 머리를 깎고 앉았다. 불현듯 그 모습을 파스텔화로 그리거나 흑백필름에 담고 싶은 생각이 일어났다. 그 광경은  까마득한 내 유년의 앨범에 남아있는  몇 줌 안 되는 풍경들 중의 하나였다. 아직 면도질이 안된 여윈 볼과 턱에 쭈삣쭈삣 솟아난 성길고 허연 터럭도 영판이었다. 이발이 끝나면 무허가 이발소 주인은 가방에서 직사각형 거울을 꺼내 영화찍듯이 노인의 얼굴에 햇빛을 쏟아부을 것이다. 행복이발소의 대인요금은 일금 삼천 원이었다.

 

2.

남향인 꼼장어구이집 뒷 담벼락에는 여인네들이 배를 딴 가자미를 발에다 널어 말리고 있었다. 그 옆으로 따뜻한 햇살을 머리에 둘러쓰고 장어주낙 낚시를 통에 감는 늙은이들이 대여섯 명 또아리를 틀고 앉았다. 150개가 감기는 낚시통 하나에 2,500원을 받는데 낚시 가지줄(branch line)에 일일이 새 낚시를 묶어 바구니를 한 바퀴 돌려 감는데, 1시간 하고도 30분이 더 걸릴 성 싶었다. 늙어서 힘있는 일은 못하고 그래도 이거라도 하니 자식들한테 손은 안 벌려. 그래도 천 년 만 년 살겠능교. 가자미 배를 따던 아지매가 말참견을 했다. 우리 신랑은 힘이 장사였제. 시집 가 첫 아 놓기 전까정은 뒷간에 가 제대로 앉지도 못했다 아이가. 우습다. 뜬금없이 누구 들어라고 남편 정력자랑인가. 60줄에 든 그 아지매는 삼십 년 전에 낭군을 잃었다 했다. 배에 불이 나 숨도 못 쉬고 죽었는데 시체를 못가지 온다케서 후제 비행기 타고 댕기 왔다 아이가. 스페인령 라스팔마스 이웃 섬인 떼네리페의 한인 공동묘지에 다녀온 이야기인 듯 싶다. 가자미는 라스팔마스에서 잡아온 뻬루다라는 납작한 가자미-일명 납세미-이다. 서해안에서 잡히는 서대류는 렝구아라 부른다. 아지매 이 가자미가 어데서 잡아온 건지 압니까. 몰라요. 아침에 서울수산에서 10상자 받아 온 기라요. 아지매 신랑이 묻힌 그 동네꺼 아인교. 아지매가 내 얼굴을 함 보고, 허리를 펴더니 곧장 멀리 등대너머 남쪽바다 수평선에 눈을 묻었다. 그 모습이 참 하염없었다.

 

3.

충무동에서 자갈치로 접어드는 부둣길에는 사람이 걸터앉는 나무의자가 대여섯 개 있고 그늘이 지라고 나무로 얼기설기 지붕을 얹었다. 그곳에 엉덩이를 깔고 앉으면 등대 사이로 빠져나가는 수로(水路)가 빤히 보인다. 내 옆에 나이든 할머니와 어린 손녀가 나란히 앉아서 바다 위를 선회하는 갈매기를 바라보고 있다. 부리가 빨간 어린 새들이 날개에 힘을 올리느라 그러는지 안벽에 기대선 배 위를 원을 그리며 낮게 낮게 날고 있다. 그러다가 가끔씩 수면 위로 발을 적시기도 하였다.  

수변공간은 한적하지도 상쾌하지도 않았다. 화물차들이 연신 붕붕거리며 지나가고 공터에서 윷을 노는 무리들의 웅성거림이 신경을 건드려 앉아 있기가 거북했다. 무릎 아래로 고데구리라 부르는 소형 어선들이 길게 줄을 지어 묶여있다. 정부에서 조업을 전면 금지시키는 한편 면허를 몰수하고 감척을 종용하므로 영세선주들은 긴 한숨을 쉬었고, 다대포에서는 활어를 받아 생계를 이어가던 다라이 장사꾼 아지매들이 덩달아 죽게 생겼다고 또 울상이었다. 조업금지령은 불법어로이므로 당연해 보이고 보상감척은 자원관리를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지금에 와서 어민들의 원망을 사는 정부도 세월을 돌려놓고 보면 행정상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연안어장은 어업으로 먹고사는 토착어민들의 몫인데 진작부터 적법한 어업으로 계도하여 양성화시킨 후 허가척수와 자원관리를 병행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아무러나 긴 휴식에 들어간 배는 태평하다.

윷놀이 판에서 함성이 터졌다. 윷판을 중심으로 둘러섰던 커다란 원이 무너지며 배당금을 받아 쥔 사내들이 파안대소하며 마악 돌아서고 있었다. 말을 세 마리 쓰는 데 한쪽이 모와 윷을 연속으로 터뜨리며 상대방의 말을 잡고 역전한 모양이다. 행색이 말끔한 늙은이도 있고 장바닥을 무대로 살아가는 젊은 논다니들도 섞였다. 나는 대형트롤어선이 접안해 있는 부산시 수협 경매장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4.

인성 107호. 대형기선저인망(139톤). 7이란 숫자는 럭키 세븐의 뜻으로 한국 사람도 오래전부터 애용하던 숫자다. 다만 인성(仁成)이니 달성(達成)이니 하는 조어(造語)는 배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에서 본 어선들의 이름은, 대부분 ‘Wild Mary’나 ‘Captain Joe’같은 사람 이름이나 ‘Sun Flower’ 같이 동식물의 이름들이어서 배를 접할 때마다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바다와 배는 다 여성명사다. 그러므로 배의 이름도 당연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야 한다. ……………………(하략)……………………

 

□ 김부상, 200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해양소설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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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지면 : <해양과 문학> 15, 16호 합본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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