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문명과 바다', 바다를 통해 쓰는 근대 역사 이야기(김미진) -해양인문학 서평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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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인문학 서평

 

주경철의 '문명과 바다', 바다를 통해 쓰는 근대 역사 이야기

 

저자가 한겨레 신문에 매주 1회, 1년에 걸쳐 게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묶어낸 󰡔문명과 바다󰡕(산처럼, 2009)는 한마디로 없는 게 없는 종합선물 같은 근대 바다의 초상화다. 한 때 바다를 제패했던 중국과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등의 해양제국 역사로부터 해적과 선원들의 숨겨진 일상은 물론, 금, 은, 구리, 인삼, 조개 등의 화폐 교류 및 노예라는 이름의 인간 자원, 도자기, 아편, 차, 커피, 코코아 등 각종 작물, 언어, 종교, 색채, 심지어 생태계에 이르기까지 바다를 통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서로 다른 문명세계 사이를 이동했었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정치, 경제, 문화, 환경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다루고 있지만,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고급 통속화’를 염두에 둔 덕에 무리 없이 끝까지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교양서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보다, 바다를 제패한 자가 세계를 제패했고, 미래에도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내는 자가 패권을 잡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그 증거로 중국의 ‘해상 후퇴’와 뒤이은 유럽의 ‘해상 팽창’이 가져온 결과를 비교한다.

8천 톤 급 선박을 중심으로 대략 60여 척의 대형 함선, 100척 정도의 소선, 총인원만 2만에서 3만에 달하는 원정대를 꾸려, 18만 5천 킬로미터 거리를 항해, 일곱 차례에 걸쳐 인도양을 탐험했던 정화(鄭和)의 원정(1405~1433)에서 보듯이, 송나라로부터 명나라 초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매우 강력한 해상 세력이었다. 그러나 황제의 위용을 만방에 알린다는 애초의 상징적인 동기가 북방 이민족의 위협과 농민봉기 등 다급한 국내 정세 변화 속에서 명분을 잃자, 중국은 1433년, 이른바 해금(海禁)정책이라는 것을 펴게 된다. 그 전까지 해상 팽창을 주도해왔던 환관 세력이 몰락하고, 농업을 탄탄히 키우고 유교를 정신적 지주로 삼아 국가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관료들이 득세를 하게 된다. 그 결과, 배들은 뜯겨 연료로 사용되고, 선원들은 건축 노동자나 일반 군인으로 전업하게 된다. 스스로 바닷길을 포기하고 내륙 쪽으로 몸을 돌려버린 것이다. 그 사이,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유럽 열강은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을 제패, 마침내 세계 근대사를 써내려가는 주역으로 우뚝 선다.

저자는 유럽이 바다 정복에 성공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요인으로 명쾌하게 설명한다. 기존 육상교역의 수단인 낙타가 가진 제한적 교역량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함께 항해에 필요한 여러 기술의 발전, 그리고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세계를 향해 나아가려고 하는 진취적인 정신 경향, 아울러 민간 자본과 국가 권력 간의 탁월한 협력관계가 그것이다.

특히, 해적이 그 당시 ‘영해’를 완벽하게 지배하지 못하고 있던 몇몇 국가들로부터 해상 전쟁의 대리자로 묵인, 심지어 보호를 받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공공의 적이 된 해적 소탕을 두고 국제적 공조가 논의되는 현실에서 시선이 가는 대목이다. 결국 해적이란 ‘국가를 대신하여’ 폭력을 행사했던 집단이 ‘국가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나아가 ‘국가에 대항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무법자 집단으로 진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유럽의 바다 제패 과정의 본질에 대해 저자는 당시 상인들의 활동이라는 것이 무력과 상업 활동이 반반씩 섞인 매우 폭력적인 것이었다고 못 박는다. 그에 따르면 바다를 통한 근대화는 곧 폭력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무역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불편한 노예무역 잔혹사 부분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 시기 바다를 통해 이루어진 문명의 근대화라는 것이 과연 계몽인지, 무자비한 약탈의 미명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물론 내륙의 길에 비해 훨씬 더 멀리에 있는 새로운 문명과 문물을 빨리 만날 수 있는 통로로서의 바다에 대한 조명 역시 빼놓지 않는다. 그 가운데에서도 눈에 띄는 부분은 하멜 일행에 대한 조선과 일본의 태도 차이에 대한 기술이다. 14년 동안 조선에 억류되어 있던 하멜은 일본으로 탈출을 하게 되고, 나가사키로 인도된 후 그곳 지사의 심문을 받는다. 나가사키 지사는 54가지의 질문을 체계적으로 던져 가능한 모든 정보를 하멜에게서 얻어낸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조선의 산물, 군사장비, 군함, 종교, 인삼 등 세세한 정보까지 두루 수집한다. 14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도 그들이 가진 지식이나 기술을 전혀 얻어내지 못한 조선과 매우 대조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보다 100년 앞서, 다네가시마에 도착한 포르투갈 선원들에게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일본이 유럽식 총기를 제작하게 된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본은 체계적인 접근 방식으로, 이방인들을 통해 바깥세상을 이해하고 세계와 호흡하려는 능력을 보여 왔다. 반면 조선은 소통에 성공했는가? 오로지 조선은 바다를 통해 들어온 이들을 단지 외국으로 다시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데에만 급급했다. 결국 바로 이러한 차이로 우리가 잘 알듯이 조선은 일본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바다를 통해 만들어진 근대사에 내재된 엄청난 폭력성의 고발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제6부 물질과 감각의 교류, 제7부 정신문화의 충돌, 제8부 생태환경의 격변 부분에 있다고 하겠다.

저자에 따르면 바닷길을 통해 대륙을 이동한 물질 수는 우리의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다. 만약 바다를 통해 근대의 활발한 교역, 교류가 없었더라면 현재 우리 삶의 풍경이 지금과는 얼마나 다를까 절로 상상하게 될 정도다. 금, 은, 구리는 물론이고 인삼, 아편, 후추, 코코아, 차, 빵, 염료를 통한 색깔들, 비단, 담배, 옥수수 등 바닷길을 따라 멀고 먼 여행을 한 물품 목록은 끝이 없다. 저자는 각 지역에서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던 물질들이 바다를 통해 새로운 사회 안으로 들어올 때 어떻게 그 의미가 변형, 갱신되는지, 해당 사회의 문화적 맥락 안에서 어떻게 새롭게 용인되는지 그 과정에 주목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코코아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는데, 코코아는 원래 마야제국을 비롯한 아메리카 문명 안에서는 신에게 바치는 최고의 식품이었으며, 지배자와 귀족, 전사에게만 제한된 음료였다. 그러나 에스파냐인들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를 통해, 프랑스 및 주변국가로 퍼져나가면서 코코아는 먼저 귀족들의 음료가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아침부터 맑은 정신으로 활동하기 위해 마시는 커피가 프로테스탄트적인 음료인 반면, 코코아는 여유로운 유희의 음료로, 심지어 에로틱한 정신과 통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귀족적인 가치의 몰락과 함께 인기가 시들해졌다가 다시 19세기에 이르러 아이들과 여성들이 즐기는 사랑스러운 간식거리로 거듭 태어나게 되는 코코아야말로 한 문물의 전파가 각 사회의 특수한 수용태도를 거쳐 어떻게 변화되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서양에서 들어온 빵과 동양의 단팥을 결합시켜 단팥빵을 개발한 일본의 예에서 보듯이, 현지 문화는 새롭게 유입된 문물과 소통, 흔히 보다 흥미로운 산물을 창조해낸다.

그리고 대항해시대 이후, 바닷길을 따라 대륙에서 대륙으로 빠르게 이동하게 되는 물질은 각 대륙의 개별 사회에 크고 작은 구조적, 문화적, 심미적 변화를 일으킨다.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정제를 위해 수많은 아프리카 흑인들이 신대륙으로 강제로 끌려와 참담한 생활을 하게 된 점, 그리고 그러한 노동의 집약물인 설탕이 구대륙으로 흘러 들어가, 귀족들의 고급 사치품에서 점차 일상적인 소비재로 탈바꿈, 결국 서민과 노동자 계층의 값싼 열량 공급원으로 자리 잡으면서 유럽 노동자들의 준(準) 노예급 노동력 유지에 큰 기여를 한 점 등이 그 예다. 이처럼 바닷길을 통해 가속화된 교류로 하나의 변화는 제한된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나비효과’처럼 세계 전체로 파급되어 나가며 세상을 하나로 묶는다.

제7부 정신문화의 충돌 편에 종교와 함께 기술되어 있는 언어의 확산과 사멸은 교류의 어두운 그늘로,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 중인 안타까운 현상이기에 더욱 공감이 간다. 책에 따르면, 12개의 중요 언어(중국어, 영어, 힌디어, 에스파냐어, 러시아어, 벵골어, 포르투갈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우르두어, 한국어)를 말하는 인구수가 세계 전체 인구의 절반에 이르며, 사용자 수가 5천 명이 채 되지 않는 언어 수만 해도 수천 개, 사용자 수가 10여 명에 불과한 소수 언어 역시 천 개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수 언어들은 조만간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기술한다. 그런데, 일개 잉글랜드 지방의 언어에서 지구인 일곱 명 중 한 명이 말하는 영어의 세계화는 어떻게 이루어지게 된 것일까? 저자는 대영제국의 해상 팽창을 통해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이 해외에 지배적인 공동체, 즉 식민지를 만들었으며, 자신들 -정복자- 의 언어를 광범위한 피지배민층에게 확산시킴으로써 그 기초가 마련되었다고 설명한다. 알고 보면 영어야말로 “지난 300년 동안의 단일 수출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품목”인 것이다.

기존의 많은 해양문화사가 인간 사회 변화에 주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 때문에, 바닷길을 통한 생태환경의 대전환에 관한 마지막 장은 그 분량이 적다고 느껴질 만큼 새롭다. 예로, 미국 서부영화에 으레 등장하는 말과 거대한 소 떼가 19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시작된 풍경이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었다. 그 이전, 아주 오랜 시간동안 북아메리카 대평원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은 바로 버펄로였는데 1830년대, 한 해에 200만 마리, 그리고 버펄로 가죽 제품이 널리 유통되던 1870년대부터는 한 해 300만 마리씩 사냥을 한 결과, 멸종 위기에 몰렸고 그 대신, 평원을 차지한 것은 유럽산 말과 소라는 것이다.

근대 해상 교류의 급속한 확대 속에 생물학적인 교환 역시 가속화되는데, 앨프리드 크로스비의 ‘생태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현상을 설명하자면, 정복자인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살고 있던 선주민들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원래 살던 유럽세계와 흡사하게, 자신들이 적응하기에 편하도록 식민지를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생태환경요소들을 신대륙으로 유입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대륙에 이식된 구대륙 세계의 일부가 기존의 생태계를 파괴, 변형시키며 서서히 원래의 풍경을 아예 지워버리게 된 것이다. 풍경의 제국주의라는 참신한 관점이 보다 상세히 설명되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병원균의 유입에 대한 기술 역시 시선을 끈다. 지금은 주로 하늘길을 통해서 퍼져나가고 있지만 당시, 바닷길을 통해 각 문명권이 가지고 있던 각각의 질병들은 해상 팽창을 기폭제로 전지구적인 차원으로 퍼져나가게 되었고, 구대륙 질병에 대해 면역체계가 없던 신대륙의 선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 근대 초, 바닷길을 따라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들어간 질병만 해도 홍역, 볼거리,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인플루엔자, 디프테리아, 성홍열, 천연두 등 이루 셀 수가 없다. 특히 천연두로 잉카제국 인구의 60~90 퍼센트가 유명을 달리 했다니 기막힌 일이다. 무기보다 강력한 보이지 않는 질병으로 유럽인들의 지배권이 공고해졌음은 당연하다. 먼저 기존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쓰러지면서 지도력이 급속도로 약화되었고, 허약해진 병사들은 유럽인들의 침략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백인들은 멀쩡한데, 왜 자신들만 병에 걸려 죽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당시 인디언들의 심리적 공황, 숙명적 비관주의로 그 저항이 완전히 무력화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거침없이 열린 바닷길을 따라, 진귀한 물건으로부터 끔찍한 재앙에 이르기까지 대륙 간, 문명 간, 사회 간, 개인 간 교류가 쉼 없이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나가게 된다. 󰡔문명과 바다󰡕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과거 대항해시대가 분명 전지구적인 폭력의 시대였고 가공할 파괴의 시대였지만 아울러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교류를 가속화시킨 시대라는 것이다. 아마도 바닷길이 열리지 않았더라면, 혹은 더 늦게 열렸더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은 분명 지금과는 무척이나 다른 모습일 것이다. 어느 부분이 더 좋았을지, 그리고 또 어느 부분이 더 나빴을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바닷길은 어떠한가? 충돌과 대립의 길인가? 아니면 소통과 상생의 길인가? 과거의 역사 속에서 미래를 묻게 하는 책이다.

 

□ 김미진, 문학박사. 저서 '프랑스 문학으로 다시 쓰는 바다 발견의 역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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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15, 16호 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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