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유산을 찾아서8(황을문)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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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유산을 찾아서(8)

 

법성포法聖浦의 두 遺産

 

목포에서 승용차로 북쪽을 향해 한 시간 가량 달려 영광군 법성포구에 들어서면 그 유명한 영광굴비가 두름에 매달린 채로 반겨주고, 굴비만큼이나 선착장길을 따라 즐비한 굴비상점들은 굴비 본고장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굴비의 탄생은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에 다량으로 잡힌 조기는 젓갈로 담기엔 너무 커 적당히 염장한 후 해풍에 말리는 수밖에 없는 궁여지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비법에 속할 염장의 정도에 따라 굴비만의 독특한 맛은 선조들의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을 것으로 추정하기에 어렵지 않다. 또한 다른 곳보다 유독 이곳 굴비를 제일로 치는 것은 좁은 만에 뻗은 작은 반도의 남안에 자리 잡아 북서계절풍을 막을 수 있는 천연의 좋은 포구라는 지형적 이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산란철에 이곳 칠산 앞 바다를 지나는 참조기가 최고로 정평이 나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가히 국민적 기호식품이었던 굴비가 이유가 어쨌건 금비가 되었다. 작은 놈은 제쳐두고, 한 두름에 몇십만 원에서 알이 밴 최상품은 백만 원을 호가 한다고 얼마 전 TV에 방영된 적 있다. 그렇다면 10마리씩 두 줄로 엮은 것이 한 두름이므로 한 마리 당 5만원이나 된다. 인터넷에서는 지난 설날 선물용으로 한 두름에 250만 원짜리도 있었다니 크기에 비례해보면 수산물 중 최고가이다. 옛적에 지독히도 인색했던 어느 자린고비가 천정에 매달아 놓은 굴비 한 마리를 쳐다보며 밥을 먹었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색맹色盲은 잘 알려져 있어도 미맹味盲이란 말은 생소하게 들린다. 혓바닥위에 음식 한 조각을 올려놓아도 그 맛이 쓴지 단지를 모르는 이가 미맹인데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의 미각은 민감하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약 10%정도가 미맹이라 한다. 그래서 대체로 한식보다 양식이 우리에겐 간이 맞지 않는지도 모른다. 참조기로 만든 참굴비의 오묘한 맛을 우리 선조들은 미리 즐기시고 후손에게도 남겨 두었으므로 영광 법성포의 굴비는 먹거리 해양문화의 진수珍羞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영광 혹은 법성포라 하면 굴비만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굴비거리를 조금 벗어나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백제불교최초도래지’가 길손의 발길을 묶는다. 영광군에서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이곳은 마라난타 존자가 중국 동진에서 해로를 통해 백제에 입국하여 최초로 불교를 전파하였던 곳으로 백제시대 지명은 ‘아미타불’의 의미를 함축한 ‘아무포阿無浦’였으나, 그후 성인이 불법을 들여 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의미를 살려 법성포法聖浦로 칭하게 되었다 한다.

-또한 간다라 출신 신승이라는 ‘마라난타’ 존자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 동진에서 384년(백제 침류왕 원년) 백제에 도래한 고승으로 신통한 힘을 지녀 온갖 일을 다 해내는데 그 능력을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해동고승전’에 기록되어 있다. 스님은 불교를 전파하는데 뜻을 두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면서 교화했기에 찬란했던 백제불교문화의 서막이 열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하기야 우리 연안의 수많은 포구 중에 성스러울 성聖자가 쓰여진 포구 본 적 없어 아마 없을 것으로 단정지을 수 있다. 이처럼 불연佛緣이 깊은 곳에 영광군에서 문화적 역사성의 구체화를 위해 후세에 길이 남겨질 수 있도록 ‘백제불교최초도래지’ 라는 명소를 조성한 것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이곳의 5대 주요 시설물 중 제일 먼저 ‘사면대불상四面大佛像’이 눈에 들어온다.

아미타불을 전면에 주존불로 모시고 관음세지보살을 좌우 보처補處로, 마라난타 존자가 부처님을 받들고 있는 모습을 뒷면에 배치한 약식 석굴사원 형식을 띤 간다라 양식(높이 23.7m)이 특이한 느낌을 자아낸다. 다음으로 참배 및 서해 조망을 위해 건립된 누각인 ‘부용루’에는 1층 석벽에 간다라 양식의 불전도 부조 조각이 23면에 걸쳐 부처님의 전생 인연담과 일대기가 생동감있게 조각되어 비록 불자가 아니라도 불심佛心이 동할 것 같은 곳이다.

다음은 파고다(Pagoda)로 명명된 ‘탑원塔園’인데 간다라지역 사원중에 가장 잘 남아 있는 ‘탁트히바히’ 주변탑을 본떠서 조성한 탑원으로 마라난타 존자의 출신지인 간다라사원 양식의 대표적이고 전통적인 모습을 띄고 있는 탑이라 한다.

도래지의 일주문 역할을 하는 ‘상징문’은 간다라 양식의 건축 개념을 도입하여 건립된 불교도래지의 상징적 이미지를 입구에서부터 느낄수 있다.

끝으로 ‘간다라 유물관’은 대승불교문화의 본 고장인 간다라의 2~5세기경 불전도 부조 및 불상등 진품유물들을 전시하여 간다라 불교문화예술의 특징적 요소를 느낄 수 있게 하였고 건축양식도 간다라 건축요소를 담도록 한것이라 한다.

이 5곳 모두가 우리의 전통 사찰과는 전혀 다른 이국적 분위기 연출 양식은 전술한 대로 인도 간다라풍이기 때문인데, 특히 나의 주목을 끈 것은 유물관 앞에 세워진 여인동상이었다. 오래 전 인도 갤커타 박물관에서 봤던 여인석상과 무척 흡사했기 때문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켈커타의 여인은 완전 나상裸像 인데 비해 법성포 여인은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사진에 나온 줄모양은 옷을 뜻한다.) 이렇듯 동방예의지국에 오면 동상이던 석상이던 옷을 입는가 보다. 무더운 날씨 탓인지 인도 여성들은 배꼽을 노출한 팻션 스타일을 선호하고 있었다. 게다가 비교적 우리네 여성들 보다는 대체로 비만한 체형에 허리부분 노출은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했었지만, 석상의 풍만은 바로 풍요와 다산多産을 기원한다고 했다. 그 기원이 효험을 톡톡히 보았던지 지금 인도는 13억 중국을 바짝 추격하는 인구대국이 되어있다.

여인상의 머리 위 즉 정수리 부분을 원판형으로 조각한 것은 건물을 받치는 여인형 기둥인 ‘카리야티드(Caryatid)’를 연상케도 한다. 왜 이 여인상을 여기다 세워두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지금 저출산문제로 한민족 인구감소가 심각한 지경에서 뭔가 시사하는 바도 있다. 아무튼 법성포는 우리네 먹거리 해양문화의 진수와 인도발 보고, 생각해볼거리 불교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 황을문, 문학박사. 저서 '동상과 우상'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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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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