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병, 안개주의보(권천학)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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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병∙안개주의보

 

에스프레소를 내리기 위하여 커피머신의 전원을 꽂고 예열을 기다리는 동안 창가로 가서 블라인드를 열었다. 넓은 유리창 가득 희부연한 허공이 가로 막아선다. 안개다. 농무(濃霧). 그 순간 찰칵, 마음 속 어느 구석에선가 오래 동안 잠겨있던 열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 근처가 쏘삭거린다. ‘안개병’이 도지는 것이 분명하다. 설마!

 

안개만 보면 까닭 없이 마음이 둥둥거려지고 마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일어나지 않을 무슨 일인가를 저지르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환상에 빠지곤 했던 그 병. 괜히 달떠서 우왕좌왕, 서성이기도 하고, 설레는 마음을 달래느라 약속도 없는 거리로 나가 안개 속을 휘저으며 돌아다니곤 했던 그 증상은 사춘기에 찾아온 바람기 같은 것이었다. 그 무렵, 안개의 장막은 세상물정 모르고 풋풋하기만 한 소녀에게 비밀의 나라를 선물해주었고, 소녀는 안개나라의 공주가 되어 온갖 상상을 하며 꿈의 날개를 펼치곤 했다. 돌아 돌아다니다가 후줄근히 안개에 젖어서 돌아올 때쯤이면 반짝, 해가 떠서 씻은 듯이 안개가 사라졌다. 젖어버린 마음도 뽀송뽀송해지면서 온 데 간 데 없는 안개처럼, 온 데 간 데 없는 꿈들이 허무해서 허무병도 함께 앓았다. 어른들은 말했다. 아침에 안개가 낀 날은 따뜻하다고. 그 엄연한 사실을 듣는 둥 마는 둥, 그 병을 나 스스로 ‘안개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의 ‘안개병’은 치유 여부를 모른 채 흐르는 세월에 묻혀버렸다. 중년, 세상을 절반쯤 살았을 그 무렵에는 안개가 없는 도시생활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고, 안개를 만나는 일도 드물어져서 안개병도 잊고 살았다. 오히려 매마름이 병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느닷없이 안개 앞에서 막막해지고, 막막함의 어느 틈으론지 그때의 기분이 되살아났다.

 

덮어 두게나/ 속세에 뒹구는 아랫도리// 횐 설음/ 붉은 웃음도/

조금은 감추고/ 더러는 잊으며/ 그냥 그렇게/ 먼발치서 보게나

 

오랜 전에 쓴 자작시 「안개」의 한 구절이 스르르 입에 올랐다. 신기했다. 내가 쓴 시일망정 시를 외우는 일이 거의 없는 내가 자신도 모르게 오래 된 시 구절을 입에 올리다니! 안개병의 증상인 듯.

 

따끈한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다시 창가로 다가 서는데 어디선가 붕부우웅~ 부우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만 쫑긋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쫑끗해졌다. 밴쿠버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저 소리! 바다 쪽으로 목을 늘였지만 안개가 잔뜩 서려있어서 우리집과 옆집의 뒷마당사이에 서있는 상록의 측백나무 울타리조차 희무끄레, 잉글리시베이(English Bay)를 볼 수 없었다. 잉글리시 베이는 태평양의 물결 한 두름이 구불구불한 땅의 끝자락을 파고들어와 빚어낸 바다풍경의 한 조각이다.

바닷가 도시인 밴쿠버로 이사 와서도 정작 바닷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것은 오로지 발코니에 서서 저만큼 보이는 잉글리시 베이를 보는 것뿐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살고 싶어 비싼 값을 치르고 골랐던 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삿짐을 정리하고 발등의 불을 끄듯 밀렸던 일들을 정리해나가는 일만으로도 시간에 쫓겨 낯선 거리를 탐색할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그 바쁜 사이사이의 틈을 비집고 이층의 발코니에 서 잉글리시 베이를 건너다보며, 여기가 분명 밴쿠버지, 그리고 저기 보이는 저 바다가 분명 태평양이지. 저 물결을 따라가면 한국에 닿지. 태 평 양! 그렇게 뇌이면서 하루 빨리 일상의 일들이 정리되면 낯선 거리, 낯선 도시의 바닷가 길을 내 발로 걸어보리라 벼르고만 있던 어느 날, 발코니에 나갔다가 바다대신 안개로 막힌 허공을 만났을 때 들려왔던 소리였다.

뱃고동소리! 부산이 이럴까?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지만 몇 점 추억이 있는 부산에 이어 가요가 끌려나오고, 그 가요의 자락 속에 들어있는 갈매기며 항구며 이별이며 손수건… 이 따라 나온다.

한 시절, 바다에 빠져서, 바다 테마 연작시를 써대던 시절도 생생하다. 그땐 정말 바다에 익사한 기분이었다. 익사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나를 바닷가에 사는 클레맨타인 쯤으로 알기도 했고, 어부의 딸이 아니냐는 질문도 던졌었다. 하지만 나는 바닷가에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만 바다를 동경하고 그리워해서 나의 인생에, 나의 창작생활에 바다를 끌어들였을 뿐이다. 그 결과 시집 3권 분량의 바다연작시를 썼고, 시집 󰡔초록비타민의 서러움 혹은󰡕이 그 중의 한 편이다.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 출렁이는 바다를 품고 산다. 그리고 드디어 바닷가 도시에 살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게 안개에 가로막혀 잠시 멍해 있는 동안, 며칠 전, 두 녀석을 데리고 학교에 가던 언덕길에서도 그 소리를 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매일 아침 손자손녀를 데려다주는 학교는 경사 20도 정도의 언덕배기 길을 십 분쯤 걸어 올라가야 한다. 우리 집은 언덕길이 시작되는 아래 부분에 있고 학교는 언덕 위에 있다. 그 언덕길에서도 저만큼 잉글리시 베이가 보인다. 손을 담그면 잉크 색 물이 들것 같은 잉글리시 베이의 그 암청색 바다를 보면서 밴쿠버로 이사와 산다는 확인을 하곤 했다. 그날도 언덕길을 걷고 있는데 지금 들은 것과 같은 부우우웅~ 하는 소리가 들렸었다. 길가 화단에 다닥다닥 붉은 꽃송이를 매달고 있는 동백나무를 몽상적으로 보이게 할 만큼 안개가 짙은 날 아침이었다.

아하, 뱃고동은 안개가 끼는 날에만 울리는 구나. 발코니에서도 에워싼 안개에 포위되었었고, 그 언덕길도 안개가 잔뜩 끼어 발 앞부리만 보며 걸을 때였다. 머릿속에 전깃불이 빤짝, 뱃고동은 안개주의보였구나!

 

가까이, 너무 가까이는 말고,/ 조금만 당겨 서게,/

나무가 나무로,/ 바위가 바위로/ 그리하여 숲이 되듯이,

 

삶을 고해(苦海)라고 했던가. 익사하지 않기 위하여 고된 항해를 하며 바다를 건너는 일이 우리의 삶을 살아내는 모습이 아닌가. 바다와는 거리가 먼 서울과 토론토에서 살다가 이제는 눈 아래 바다를 보며 살 수 있다니. 그것도 태평양이라니 그게 어디 보통 바다인가, 태,평,양, 하는데, 쿡! 웃음이 터진다. 작년 여름 한국에 갔을 때, 지리산 토주대감노릇을 하는 사람의 초대를 받고 밤 새워 양주파티를 열었던 일이 생각나서다. 젊은 날, 시(詩)쟁이들과 밤낮 가리지 않고 어울려 다니던 한때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분위기였다. 그 밤에 대결이라도 하듯 독주를 털어 넣으며 흥을 돋우다가 나의 오래 전 별명인 ‘왕푼수’ 이야기가 나왔고, 누군가 자기도 ‘왕푼수’ 하고 싶다고 해서 그럼 난 ‘태평양 왕푼수’로 기억하라! 마치 이순신 장군이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하는 호령조로 일갈, 만장일치했었다.

 

안개 주의보! 그것은 곧 고해 위에 펼치는 우리 삶의 주의보가 아닐까. 고해이든, 희망봉을 돌아가는 바다이든, 바다는 늘 우리 곁에 머물러 길을 열어놓고 있다. 이제는 멀리 떠나와 있다. 나의 인생 항해 또한 먼 바다. 깊어져야 할 곳까지 왔다. 다소 익숙해진 항해라 하더라도 그 바다에 안개가 끼면 울리는 뱃고동 소리와 안개주의보를 귀담아 들어야겠다. 어른들의 말처럼 안개 끼는 날이 따뜻하듯, 안개를 헤치고 나면 밝은 길이 열리려니.

 

나, 여기 한 떨기 꽃으로,/ 그대, 저만큼 한 무리 그리움으로,/

그냥 그렇게,/ 그러나, 무심하지는 말게

 

질문인 듯 답인 듯, 마지막 시구절을 읊조리며 마시는 식은 커피 잔 위로 길게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 뱃고동 소리가 해무(海霧)처럼 떠돌았다.

 

□ 권천학, <문예가족> 동인으로 작품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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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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