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나를 비추는 거울(김동재)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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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나를 비추는 거울

 

바다! 이 짧고 간단한 두 글자의 단어 속에 과연 어떤 의미가 진실일까? 누군가는 바다의 어원을 ‘바라보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바다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의 바다는 ‘바라보다’라는 간단 하지만 복잡한 말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게 바다는 나를 보여주고 다듬어 나갈 수 있게 만든 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신안군의 작은 섬인 홍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내게 바다는 참 신기한 존재였다. 어른의 발걸음으로 걸어서 30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만큼 작은 섬이었음에도 그 속에는 바다가 만들어 준 작고 위대한 행복이 있었다.

 

언제나 이랑지고 순결하며, 밤과 함께 나의 믿음인 광활한 바다여! 바다는 불모의 밭고랑에서 우리를 씻어주고 배불려 주며, 자유롭게 해주고 서 있게 해준다.

―알베르 까뮈의 에세이 󰡔여름󰡕 中, 「바다 가장 가까이에서」

 

이렇듯, 내 어린 시절의 바다는 사람들을 배부르게 해줄 수 있는 존재였고 우리 섬사람들의 인심을 한 층 더 넓게 만들어주는 배부른 지갑이었다. 대표적으로 해녀이셨던 큰어머니께서는 내가 성인이 된 지금도 나에게 ‘니가 어릴 때 큰엄마가 물질만 해오면 어떻게 알았는지 시간 맞춰서 나와 전복, 해삼, 소라 이런 거 다 얻어먹고 댕길 정도로 머리가 똑똑했어야!’라고 하신다. 어렸던 나의 눈에는 바다가 주는 선물들이 너무 맛있었고 또 새파란 이불 속에서 무언가가 나온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해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장난기와 질투가 유난히 심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의 얼굴을 시기했었고 돌을 던지면서 바다를 인상 쓰게 하곤 했다. 그 날의 얌전했던 바다는 갑작스레 나를 끌어안았고 그의 양수 속에서 나는 잠시 동안 잠이 들었었다. 그땐 몰랐지만 되돌아보면 그 순간의 나는 아마 바다의 신이 내린 저주를 받은 율리시즈가 되었던 것이다. 바다는 자신의 품으로 안아 줌으로서 나의 오만함이 그 어린 나이에 바다에 대한 경외심과 겸손함으로 변하도록 교육시켜 주었다. 비록 나는 어렸지만 바다는 나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쓰디 쓴 가르침을 심어준 선생님이였던 것이다.

이렇게 바다에 대한 겸손이 생겨갈 때 쯤, 우리 가족은 학업의 문제(실제로 홍도에는 작은 분교 밖에 없다.) 로 섬을 떠나 육지로 이사를 하였다. 배를 타고 육지로 가는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동안 바다를 떠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정말 서럽게 울었다. 이런 나를 의식 했었는지 그 순간의 바다는 나를 향해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홍도를 떠나 목포로 온 나에게는 전과는 다른 새로운 바다가 있었다. 그 바다는 얼굴에 화장을 한 것처럼 더 이상 투명하지 않았고 항상 흐릿한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더러워진 바다의 얼굴을 보며 항상 안타까움을 느꼈고 누구보다도 바다의 얼굴을 씻겨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쓰레기를 주우면서 그의 여드름도 짜주었고 그의 얼굴을 검게 만들었던 기름자국을 닦아 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선생님께서도 나이를 드시는 건가요?’ 라고 계속 되물어 보았던 것 같다. 또한, 방학 때마다 자주 갔었던 홍도는 배를 타고 들어 갈 때 마다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배에 오를 때부터 나를 맞아주는 바다, 바다를 통해서만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태양의 따듯함이 작은 배 안에 수감된 나에게 새로운 해방을 선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 해방의 기쁨이 그리웠고 나에 있어서의 바다는 구원을 해주는 존재가 되어갔다. 홍도의 바다는 내가 찾아 갈 때면 언제나 자신의 살점을 내주었고 속살을 부끄럼 없이 보여주었으며 홍도 사람들의 인심을 넓은 바다보다 더 넓게 만들어 주었다. 나 역시도 그 바다 속에 부끄럼 없이 뛰어 들어 안기고, 그 속에서 행복을 줍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과 나누면서 그를 닮아 갔다. 그런 바다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 어느 계절이든 여행을 갈 때 제일 첫 우선 순위는 언제나 바다였다. 친구들과의 졸업여행, 형을 군대 보냈던 이별여행, 사랑했던 사람과의 핑크빛 여행 모두 바다를 보면서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던 고등학생 때의 서툴렀던 첫사랑과 헤어지던 날, 나의 손을 처음으로 감싸주었고 처음으로 입 맞춰 주었던 그녀와 이별했던 그 날에도 나는 바다 앞에서 쓰디쓴 물을 삼키며 혼자 눈물 흘렸고 그 눈물에서 느껴지는 바다의 맛을 안주로 삼았었다. 어떤 순간에도 나를 안아줄 수 있고 나의 무너진 비밀도, 찢어지는 아픔도 묵묵히 받아주는 거울 그것은 바로 바다였다.

바다에 보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한국해양대학교에 진학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바다를 볼 수 있는 항해사라는 직업이 나의 동경이었고 바다와 태양 사이 한 마리의 갈매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홍도 사람들은 내가 ‘바닷사람’ 흔히 ‘뱃놈’이 된다고 말 했을 때는 ‘너는 바다에서 나와서 바다로 갈 놈이다.’ 라는 말을 하면서 대견하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이로부터 내가 고향 사람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이상에 한 걸을 더 다가가 주었다는 생각을 하며 어디서든 잊지 않을 자부심을 쌓았다. 학교생활을 하며 그 동안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바다를 만나게 되었다. 그 바다는 이제 내 삶의 터전이며, 앞길이며 나의 존재를 무한하게 늘려줄 마주보는 두 겹의 거울이었다. 처음 와보는 곳에서 전혀 경험한 적 없는 힘든 생활을 하면서 내게 있었던 자부심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새로운 바다에 맨몸으로 뛰어 들며 내 상처에 연고를 발랐고 그 순간에도 바다는 나를 껴안아 주었다. 그 때마다 바다 속에서는 ‘많이 힘들었지?’ 라고 속삭이는 파도소리가 항상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어쩌면 내가 어렸을 적 바다가 나를 껴안았을 때도 그저 벌을 준 것이 아니라 ‘그 시절 나의 시기와 질투에 대한 위로를 했던 것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바다의 위로에도 힘이 들 때는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에 혼자 자갈마당에 나가 그 위에 뜨는 태양과 눈 맞추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피웠던 금기의 향기, 그 한 대의 연기는 내 마음을 태양과 바다에게 전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때의 바다가 준 담배 한 대는 하나 둘 나의 힘들다는 생각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점점 내가 성숙해지고 있는 증거라며 긍정적인 생각들로 ‘바로보게’ 되는 기회를 선물해주었다.

이렇듯 바다는 나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하였고, 내가 새롭게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주었다. 또한, 내가 힘들 때 넓은 마음으로 나를 다시 바로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면서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 내가 진짜로 힘든 이유를 마냥 핑계만 대면서 나태해져 가고 있는 내게 선물해주었다. 누군가 내가 말했었다. 바다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어머니의 뱃 속의 양수와 같은 존재라고, 어머니의 뱃 속에서는 분명 어머니와의 생각을 공유하며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 다짐을 새겼을 것이다. 점점 그 다짐이 흐릿해져 갈 때 다시 한 번 나에게 스스로와의 약속을 할 수 있게 도와준 그 손길이 바로 바다였다. 이렇게 바다를 통해서 나를 돌아보았고, 바다의 얼굴에 비추는 내 모습을 기억하며 거울을 통해 나를 더 가꾸어 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바다에 비추는 나를 보며 미래를 가꾸어 나갈 것이며, 나의 뒤에서 따라올 후배들과 나의 가르침을 받을 사람들에게 내가 보았던 색다른 바다를 선물 해줄 수 사람이 되겠다는 이 마음을 인생의 척도로 삼을 것이다.

 

□ 김동재(한국해양대학교 해사수송과학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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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19호 독자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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