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가을 해양시 페스티벌 "해는 바다에서 뜬다"

작성자아침파도

등록일2021-08-19

조회수47

 

해는 바다에서 뜬다

 

 

해는

바다에서 떠오릅니다.

 

바다에서 해는

수평선에서

소리 없이 달아오르다가

소리 없이 끓어오르다가

 

파란 하늘에

손을 뻗치어

 

나타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외침도 없이

 

태어나서는 하늘로 올라,

드디어 해는

 

세상을 향해 달려갑니다.

바다에서는 매일, 해가 뜹니다.

 

 

<감상과 해설> 사막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협곡에서 탠트를 치고 야영을 하며 밤의 냉기에 몸을 떨곤 했습니다. 동이 트기 전 우리는 텐트를 걷고 다시 낙타에 행랑을 지우고 멀리 길을 떠났습니다. 빛은 어디서부터 오는 건지 까만 대지가 차츰 차츰 밝아지고 있습니다. 잠시 낙타에서 내려 지평선의 동쪽을 향하여 섰습니다. 어둔 지평선 위로 빨간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윽고 해가 떴습니다. 해가 하늘을 향하여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어둠을 걷어 낸 해는 맨몸인 대지를 향하여 달음박질하기 시작합니다. 사막의 생명체들이 부르르 몸을 떨며 기지개를 펴고 벌판에는 낮게 아지랑이가 피어오릅니다. 지금도 사막에는 아침이면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오랫동안 바다에서 길을 가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움직이는 집, 배를 타고 말이지요. 선교의 항해실에서 바다의 하루는 파도와 햇빛과 바람과 함께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흘러가면서, 저 밑의 갑판에서는 정비작업을 하느라 쇠판을 두들기고 기관실에서는 엔진이며 발전기, 보일러, 그리고 각종 기기들이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루해가 서쪽 바다로 넘어가고 붉은 노을의 저녁이 되자 밤은 미리 예약된 손님처럼 어김없이 이곳으로 찾아옵니다. 바다의 밤은 밝은 낮이 결코 보여 주지 못하는 것들, 즉 세상 밖의 세상, 풍경 밖의 풍경, 상상 밖의 상상을 보여 주지요. 깊이를 알 수 없는 밤바다의 두려운 심연, 뱃전을 부딪고 지나가는 파도의 울음, 또는 바람의 달콤한 속삭임, 그리고 위로 별자리들이 만든 또 하나의 세계. 캄캄한 밤, 깊은 바다 위에서 파도와 바람과 하늘의 별들과 함께 지새우다가 어느새 멀리서 밝아오는 수평선을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눈가가 촉촉히 젖고 콧등이 시큰해진답니다.

 

아침 이슬이 갑판 위에도 선교에도 우리들의 마음에도 소슬히 내리고 있습니다. 함께 항해당직을 서는 조타수가 포트에 물을 데우고 있습니다. 조타수가 권하는 뜨거운 온수를 한 잔 마십니다. 감사합니다. 차갑던 몸이, 그리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멀리 수평선을 바라봅니다.

 

검은 해면 위에 밝은 빨간 물체 하나가 막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그때까지만 해도 일직선이던 수평선이 우둘툴해지며 마치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려는 듯 들뜨기 시작합니다. 바다가, 어둡고 고독했던 바다가 아침을 출산하기 시작합니다. 아아, 이 세상의 밤들이 어디 캄캄하지 않은 밤이 어디 있던가요? 그런 밤들치고 쓸쓸하며 절망이 아닌 밤이 어디 있던가요? 그러나 바다는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찬란한 아침을 맞이합니다.

 

아침 해가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해는 높이 떠오르면서 세상을 향해 달려갑니다.

 

■ 심호섭, 작품집 '해류와 노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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