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가을 해양시 페스티벌 "나무들의 항해"

작성자아침파도

등록일2021-08-19

조회수45

 

나무들의 항해

 

 

문이 열린다. ‘잠보안가’ 마을에서 문은

세상을 향하여 열렸다.

강과 숲에서 자란 가난한 순수가

가축처럼 말없이 서 있다.

비에 적시어 온 몸의 세월

천둥에 떨리어 온 몸의 세월

이제 사람의 손에 끌리어

멀리 바다를 건널 것이다.

그러나, 나무여 슬퍼 말아라.

비와 천둥으로

언제나 지상은 젖고 떨리었나니.

저 먼 바다 건널 적

차가운 금속의 화물창 안에서

속삭이며 속삭이며 서로를 위로하라.

보이지는 않아도 태양은 밝게 빛나고

보이지는 않아도 흰 구름은 평화롭게 수평선 위에 흐를 것인즉,

 

흔들리며 흔들리며 세계의 바다를 건너는

나무들이여.

 

 

<감상과 해설> 적도 지방에 원목 적재 부두가 있는 잠보안가는 인구 수백 명이 사는 작은 마을입니다. 부두라 해야 겨우 화물선이 붙을 수 있는 허물어진 안벽岸壁 위에는 밧줄을 거는 작은 쇠기둥인 계선주繫船柱가 몇 개 있고 야드에는 목재 더미와 컨테이너 사무실 세 동이 전부입니다.

 

그 뒤로 야자수와 바나나 나무와 마을의 집채가 있습니다. 그리고 열대우림의 산이 있습니다. 산은 그 숲속에 크고 작은 나무들과 풀들과 이끼류의 온갖 식물과 거기에 서식하는 파충류, 양서류, 조류, 나비, 지네, 박쥐, 원숭이 등 온갖 동물들이 있습니다. 열대우림에 햇빛이 쨍쨍 내리고 비가 내리고 안개가 끼고 천둥이 치고 그러면서 숲은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열기로 가득합니다. 바닷가에서 멀리 열대우림의 산을 향하여 귀를 기울여 봅니다. 또 가만히 눈을 감고 숲속의 세계를 상상해 봅니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숲이 내뿜는 깊고 아득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그 속에서 운동하는 생명체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잠보안가에서 나무를 적재하였습니다. 큰 화물선의 큰 화물창에 아름드리나무를 차곡차곡 채워 넣었습니다. 부두에 묶인 계선줄을 풀고 드디어, 배가 출항을 합니다. 항구의 바깥, 난바다의 물목에서 늙은 도선사가 배를 내리면서 잘 가라고 인사를 합니다. 깊은 바다에 들어섰습니다.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고, 안개가 끼고, 바람이 불고, 또 태양이 갑판을 달굽니다. 이렇게 많은 나무를 실은 이렇게 큰 배를, 위에서 선교에서는 눈동자처럼 전방의 수평선을 지키고, 밑에서는 기관실에서 기관이며 발전기, 보일러, 그리고 각종 기계들이 돌아가고, 선미에서는 스크루가 일으키는 와류로 인해 배는 해면 위에 길게 하얗게 궤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사람이 바닷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 심호섭, 작품집 '해류와 노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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