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가을 해양시 페스티벌 "천둥 번개의 마을을 지나갈 때"

작성자아침파도

등록일2021-08-19

조회수49

 

천둥 번개의 마을을 지나갈 때

 

 

천둥 번개의 마을을 지나갈 때

세상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날아가는

바람의 날개를 보았나니.

그것의 격렬한 움직임에 놀랐나니.

 

잔잔하던 해면이 들끓어

하얗게 물보라가 휘날리고

번쩍이는 불빛,

귀를 찢는 굉음,

허공을 날던 바닷새는 사라지고 없고

물속의 물고기는 숨을 죽인 채

유영을 멈추었나니.

 

천둥 번개의 마을을 지나갈 때

큰 배를 타고

인생의 바다를 순례하는

젖은 어깨들을 보았나니.


 

<감상과 해설> 길을 가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길을 떠났습니다. 더러는 봇짐을 메고 더러는 말이나 낙타에 짐을 지우고 길게 행렬을 지어 멀리 멀리 길을 갔습니다. 길을 가다가 도둑이나 강도를 만나기도 합니다. 국경을 통과할 때에는 세금을 무릅니다. 잘 차려진 객사에서 잠을 자고 좋은 음식을 먹기도 하지만, 때로는 텅 빈 벌판에서 천막을 치고 야영을 하기도 합니다. 비가 내리면 비에 젖으며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길을 갑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바다에서 길을 내었습니다. 나무판을 잇대어 외판을 만들고 늑골을 가로로 대고 갑판을 깔고 돛대를 세우고 돛을 달고 거기에 화물을 가득 실어 물에 띄웠습니다. 사람들은 차츰 차츰 더 큰 배를 만들었고, 더 멀리 항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육지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 사면이 오직 동심원으로 둘러싸인 깊은 바다로 나갔습니다. 가도 가도 바다에는 바다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낮에는 태양, 밤에는 별을 보고 길을 갔습니다. 나침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찍부터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자석바늘을 물에 띄워 사용했을 겁니다. 아직 지자기의 영향으로 인한 나침반의 자차, 편차의 존재를 모를 때였으니 바닷길은 참으로 험한 길이었습니다.

 

바다에서 길을 가고 있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바람이 붑니다. 파도가 치오르면서 배가 옆으로 기우뚱거립니다. 비와 바람이 그치면서 안개가 끼기 시작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레이더를 보면서 항해를 합니다. 한참 후에 안개가 걷혔습니다. 하늘에는 무겁게 먹구름이 걸렸습니다. 한낮인데도 밤중처럼 어둡습니다.

 

아까부터 하늘에서 번갯불이 번쩍입니다. 천둥이 칩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해면에 백파가 일고 있습니다. 배가 기우뚱거립니다. 번갯불이 번쩍이고 천둥이 칩니다. 가도 가도 바다에는 비가 내리고 번갯불이 번쩍이고 천둥이 칩니다. 사람과 화물을 가득 실은 화물선이 순한 가축처럼 묵묵히 길을 가고 있습니다.

 

■ 심호섭, 작품집 '해류와 노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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