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섬 등대가 들려주는 동화

등록일2020-11-27

조회수583

 

동백섬 등대가 들려주는 동화

류근원ㅣ동화작가

 

 

부우웅 부웅

여객선이 동백섬으로 가는 무인도를 돌면서 뱃고동을 길게 날립니다. 방파제의 하얀 등대가 모습을 드러내자, 손님들이 부산스러워집니다. 육지에서 들여오는 생필품이 담긴 커다란 가방, 고기잡이배의 작은 부품들, 경운기 부품들…. 손님들은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짐을 챙긴 마을 사람들이 다 내리자, 낯선 손님이 커다란 카트가방을 끌며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합니다. 검은색 빵떡모자와 베이지색 바바리코트를 입은 손님, 선장을 향해 웃습니다. 선장도 웃으며 손님의 커다란 가방을 선착장까지 옮겨줍니다.

“등대 화가 선생님. 동백섬엔 며칠간 머무르실 건가요? 등대에 멋진 그림 부탁합니다. 보면 볼수록 끌리는 섬이에요.”

“고맙습니다. 한 일주일 정도 머무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낯선 손님은 화가입니다. 등대를 찾아다니며 등대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입니다. 화가는 선착장에서 방파제의 등대를 바라봅니다. 하늘 한가운데를 지나는 태양이 등대에 햇살을 쏟아 붓습니다. 온통 은물결금물결입니다.

‘흠 이상도 하지. 똑 같은 바다인데 왜 등대 부분만 저토록 반짝일까? 선장 이야기가 부풀려진 게 아닌 것 같아.’

부우웅 부웅

여객선이 긴 뱃고동을 날리며 동백섬을 떠납니다.

화가는 등대에서 눈을 떼곤 마을을 눈에 담기 시작합니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야트막 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산 위의 큰 나무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무슨 나무일까? 섬 이름처럼 동백?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 때였습니다.

“너무 먼 길이었지요? 서울에서 오신 손님 맞지요?”

“아, 민박집 주인이시군요? 잘 부탁합니다.”

“저희 집은 조기 ‘바다향기’ 음식점이고요, 민박집은 저 언덕너머에 있는 이층집이에요. 지금은 비수기라 손님도 없어요. 참, 그림 그리시는 분이라 그러셨죠. 마음 놓고 그리세요. 미리 부치신 페인트들과 짐은 민박집에 부려 놓았습니다. 이 카트가방도 부피가 큰데 차에 실어 옮길 게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여기저기 보면서 끌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밥 해 드시기 귀찮으면 언제든지 저희 가게로 오십시오.”

“허허, 말씀만 들어도 배가 부릅니다. 고맙습니다.”

화가는 언덕 너머 민박집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이젤, 스케치북, 붓 세트, 물감 등등….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파도 소리와 바다 냄새가 기다렸다는 듯 와와 소리 지르며 들어왔습니다. 산꼭대기의 큰 나무도 훨씬 가깝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참 후 화가는 집을 나섭니다. 동백꽃이 활짝 핀 집들마다 눈을 떼질 못하는 화가입니다. 동백꽃들이 떨어진 길 위를 화가는 요리조리 피해 걷습니다. 그것도 재미있는지 껄껄 웃습니다.

‘허허, 떨어진 동백꽃들조차 아름다워 밟을 수가 없네. 이거야 어디 원….’

마을을 빠져나와 산으로 이어지는 자드락길을 오릅니다. 산으로 들어설수록 동백나무는 더 많아집니다. 동백나무숲에서 동박새들의 울음소리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습니다.

산언덕 중간 쯤 길옆에 무덤들이 눈에 보입니다. 이상한 무덤 한 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산길 가장 가까운 쪽의 작은 무덤이었습니다.

‘이상도 하지? 왜 똑같은 무덤인데 요 무덤은 이렇게 작을까? 혹시 어린아이 무덤?’

화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발걸음을 빠르게 놀립니다. 등줄기로 구슬땀이 주룩 흘러내립니다. 산꼭대기의 큰 나무는 아주 오래 된 동백나무였습니다. 마치 ‘동백섬의 동백나무들은 모두 내 후손들이다’라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수평선에 노을이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노을 속에 잠기는 등대가 낮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으로 눈에 들어옵니다.

‘보면 볼수록 끌리는 등대야.’

산길을 내려오면서 화가는 작은 무덤을 보며 또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이상하게 눈길이 자꾸 가네, 왜 그럴까?’

화가는 산길을 내려가면서 뒤돌아보곤 했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화가는 밤 이슥토록 잠을 못 이룹니다. 바다로 향한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어두운 밤하늘, 별똥별들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이상하게도 별똥별들의 방향이 모두 등대 쪽으로 모아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둠 속에 잠긴 먼 수평선 근처, 고기잡이배의 불빛들도 별로 살아나 반짝입니다. 별똥별들은 쉬지 않고 떨어졌습니다.

이튿날, 화가는 바다향기 음식점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아휴,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요 사장님….”

화가는 뜸을 들이다가 어제 본 이상한 무덤에 대해 물었습니다. 주인이 깜작 놀랍니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아는 게 없어요, 죄송합니다.”

 

…………(하략)…………

 

□ 자료출처 : <해양과 문학> 24호

 

g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