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아 해녀의 귀향

등록일202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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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 해녀의 귀향

남순백 I 소설가

 

 

󰡔헨드릭 하멜은 항해사였다. 1653년 동인도회사 소속 스페르베르호의 항해 도중 제주 근해에서 풍랑으로 좌초되어 함께한 선원 일행과 조선에서 14년간을 살았다. 그동안 그는 표류기를 썼으며 여수의 전라좌수영과 그 근처에서 7년간 생활했다. 그 후 하멜은 고향인 네덜란드의 호르컴으로 돌아가 자신을 외로움과 배고픔에서 구해준 여수 사람들, 특히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두 손엔 빗창과 호미를 든 해녀들의 따뜻한 정과 살뜰한 도움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가훈처럼 가슴에 새긴 하멜의 후손들은 3백 년이 훨씬 더 지난 88서울올림픽 무렵 한 갓난아기를 여수에서 해외 입양했다. 그녀가 바로 마리아 하멜이다.󰡕

 

아침 일찍 일어난 마리아는 학교에 갈 생각은 않고 듬뿍 비누를 칠해 하얀 거품이 덕지덕지 인 자그마한 얼굴을 계속 문질러대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매우 심각했다. 자기보다 늦게 일어난 오빠들이 벌써 밥을 먹고 가방까지 챙겨서 대문 밖에서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밥을 먹는 것은 고사하고 학교에 가는 것조차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엄마, 아무래도 나는 엄마의 진짜 딸이 아니고 주워 온 아이 같아요. 엉엉엉……”

마리아의 비명에 가까운 울부짖음에 출근 준비로 바쁘던 엄마가 부리나케 그녀 곁으로 달려왔다.

“얘야, 학교 갈 준비는 안 하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울기는 왜 울어?”

엄마는 그녀를 안아 일으켜 다정스럽게 감싸 안으며 다른 한 손으론 딸의 얼굴에 잔뜩 묻은 하얀 비누 거품을 닦아내기에 바빴다.

“아이고, 예쁜 내 딸, 어서 학교에 가야지. 아빠가 차를 대놓고 벌써 기다리고 있단다. 오빠들과 함께.”

엄마가 그녀를 더욱 가까이 꼭 안으며 다른 손으로는 젖은 옷을 급히 갈아입히며 또 연신 울먹이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어린 딸의 얼굴을 닦아주며 토닥거리고 있었다. 마리아의 갸름한 작은 얼굴은, 딴에는 얼마나 열심히 세차게 문질러댔던지 보드라운 살갗에 군데군데 빨간 생채기가 나 있을 지경이었다.

“엄마, 내 얼굴은 아무리 많이, 자주 씻어도 엄마와 오빠들처럼 하얘지지를 않아요. 머릿결도 다른 아이들과 다른 보기 싫은 검정색이고. 으흐흑……”

“우리 예쁜 마리아야, 사람은 날 때부터 모습을 타고난단다. 마리아와 엄마는 여자이고 오빠들과 아빠는 남자인 것처럼 아무리 애를 써도 바꿀 수 없는 것도 있단다. 네가 일찍 눈을 떴으니 오늘은 곧 모든 이야기를 해주마. 지금은 학교에 갈 시간이니 어서 학교부터 잘 다녀오너라……”

엄마는 초등학교 1학년짜리 어린 딸을 지극히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맑은 하늘에 검은 구름이 끼듯 어두운 수심이 가득했다. 언젠가는 딸에게 출생의 비밀을 밝히겠다고 마음을 수도 없이 다잡아왔지만, 그 시기가 번개가 치듯 이토록 빨리 갑작스레 도래할 줄을 꿈에도 예상치 못하던 터였다.

 

제대로 공부했는지 잔뜩 긴장하여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온 마리아를 보자 역시 오늘은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일찍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저절로 터져 나오는 진한 한숨부터 토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런 탈 없이 밝고 명랑하게 잘 자라고 있는 딸에게 갑자기 나는 너를 낳은 진짜 엄마가 아니라고 말하려면 여간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보다 소중한 오직 엄마만 믿고 살아가고 있는 어린 딸에게 자칫 잘못된 섣부른 말 한마디가 딸의 여린 가슴에 남길 수 있는 평생 씻어지지 않을 치명적 상처 때문이었다.

엄마는 갓 태어난 마리아를 입양하여 집으로 데려올 때부터 마음속에 해줄 알맞은 말을 늘 준비해 왔지만, 막상 그때가 되고 보니 벙어리처럼 갑자기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속절없이 숨결은 빨라지고 가슴은 콩닥콩닥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이렇게 될까 봐 마리아가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노심초사,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며 조금이라도 더 철이 들고 세상 물정을 아는 나이가 되기를 하루가 여삼추처럼 애타게 기다려 오던 그녀였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지고 말았다.

“마리아는 저 먼 동양의 한국이란 나라에서 하나님이 엄마에게 보내 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소중한 보물이란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가 줄곧 너를 낳은 진짜 엄마를 찾고 있단다. 좀 더 기다렸다가 네가 6학년 졸업반이 되면 우리 함께 너를 낳아준 나라에 가자꾸나.”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던 영리한 마리아의 눈에서 그렁그렁 이슬처럼 눈물이 비쳤으나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그녀 역시 이곳 사람들과 너무나 다른 자신의 모습에 벌써 어떤 각오를 하고 있었던 듯 어쩔 수 없는 슬픈 운명을 그대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엄마는 이를 악다물고 울음을 참아내는 앙증맞은 그런 마리아가 더욱 슬프게 보이며 가슴 속으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며 그만큼 더 사랑스러워졌다.

 

엄마와의 이런 대화가 있고 난 후부터 마리아는 정말로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 가고 싶은 듯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같은 반 여자아이들처럼 보이기 위해 예쁘게 꾸미지도 않았고, 세수를 하면서도 심하게 얼굴을 문지르는 짓 따위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다. 엄마의 눈에는 어린 그녀가 갑자기 많이 성숙한 것 같았다.

“마리아의 성은 여기서는 하멜이지만 실제의 한국 성은 현 씨란다. 마리아 현, 현 씨는 한국 사람들의 성이란다. 프랑수아와 루이 오빠는 아빠와 같이 성이 하멜이잖니? 한국에 가면 성이 현 씨인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구나……”

“한국이 위치한 동양 사람들은 피부가 너처럼 황색이고 머릿결이 검정색이야. 그곳 사람들은 모두가 그렇단다. 마리아는 한국의 미인이야……”

이제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대놓고 해도 마리아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더 많은 호기심을 보일 뿐 이 집의 오빠들과 피가 다르고 엄마가 자기를 낳은 진짜 엄마가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심하게 외로움을 탄다거나 조금도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럴수록 그녀는 진짜 엄마를 찾아 한국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한국에 관한 책을 사서 읽으며 열심히 공부했다.

 

드디어 마리아가 네덜란드의 졸업반인 초등학교 6학년쯤의 여름 방학 때였다. 온 가족이 여수로 여행을 갔다. 그 옛날 조상 할아버지가 배가 난파되는 바람에 오랫동안 살았다던 곳이었고, 그동안 아버지는 대사관과 입양기관을 통해 마리아의 친부모들이 살고 있는 주소를 알아두었는데, 그곳이 바로 아름다운 섬 여수의 남면(금오도) 바닷가였다.

여수에 도착한 다음 날, 온 식구들이 호텔에서 도통 먹지도 않고 잠을 이루지도 못하던 막내 마리아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며 혹시 병이라도 날까 봐 무진 애를 태우고 있는데, 네덜란드 영사관의 직원이 새카맣게 그은 두 사람을 데리고 그들을 찾아왔다. 꿈에도 그리던 그녀의 생부와 생모였다. 첫눈에도 그 생김새에서 당장 마리아의 부모임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이목구비는 물론 주름지고 새카만 얼굴에는 어딘지 많이 본 듯한 마리아의 그림자가 어렴풋하게 들어 있었다.

“저 아이가 여섯째딸이었다오. 만삭이 되어 곧 출산할 무렵에 서쪽 문바위 근처 바닷가에 있는 남의 집 보리밭에서 날품팔이로 김을 매다가 그만 발뒤꿈치를 뱀에 물리고 말았지요. 산모가 너무 놀랐는지, 뱀의 독이 퍼졌는지 사경을 헤매어 난리가 난데다가 우리 남면 금오도에서는 임산부가 뱀에 물려서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심한 장애자가 되고 같이 크는 다른 아이들한테까지 독이 퍼져서 집안에 변고가 잇따른다는 나쁜 소문이 전설처럼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오. 으흐흑……”

생부는 그 당시의 긴박하고 기막혔던 상황을 생각하고 서러움이 북받치는 듯 울먹이며 까만 얼굴에 닭똥 같은 굵은 눈물을 줄줄 흘릴 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실은 낳고 보니 원하던 아들이 아닌데다가 찢어질 듯 지독한 그놈의 가난이 원수였지요. 여수 시내 병원의 많은 병원비를 댈 형편도 못 되었고요……, 으흐흑……”

그러다 아버지는 통역을 통해 역시 말없이 눈물만 흘리며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리아를 향해 불쑥 이렇게 말했다.

“아가야, 미안하다. 으흐흑……. 언니들은 모두 집에서 낳았지만 너는 엄마가 뱀에 물리는 바람에 병원으로 갔는데, 우린 병원에서 너를 낳아서 울고 있던 핏덩이인 너를 홀로 두고 그만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단다. 아가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생모 역시 이역만리에서 찾아온 생면부지의 딸과 그 양부모를 신기한 듯 멀뚱멀뚱 번갈아보며 매우 미안해하며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오직 쩔쩔매며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겨우 한다는 것이 흐르는 눈물과 훌쩍거리는 코를 연신 짧은 치마를 뒤집어 닦아내는 일이었다.

이때 뜻밖에도 마리아가 밝게 웃으며 오른손 손가락 다섯 개를 펴면서 크게 소리쳤다.

 

…………(하략)…………

 

□ 자료출처 : <해양과 문학> 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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