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항해선

등록일202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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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항해선

한창규 I 소설가

 

 

선수 쪽에서 갈라서는 파도가 철썩철썩 소리를 냈다. 가볍게 부딪치다가 때때로 둔중한 소리가 울렸다.

승선 인원과 현지 조달 물품 등 총괄적인 점검이 끝나고 예정된 오전 열 시에 배는 출항이다. 일찌감치 기관은 부르릉거리며 굉음을 내며 워밍업을 했다. 거북스럽기만 하던 소음이 점차 규칙적인 소리를 내고 있었다.

거대한 몸뚱어리의 실습선은 부두에서 서서히 몸체를 떼기 시작한다. 터그보트의 힘을 빌려 서서히 좌현을 선창다리에서 간격을 벌리며 차츰차츰 뱃머리를 초록빛 해원으로 향하는 채비를 한다.

월간 H해양 잡지사 르포라이터 공말식은 입사한 지 겨우 1년이다. 그는 B대학 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부와 에너지수송시스템공학부 3학년 학생 167명을 태우고 원양 실습수업을 하는 2,800톤급의 실습선 S호에 승선하고 있다.

공말식은 대학 졸업 후 5년 동안 백수와 아르바이트 생활을 전전하다 천신만고 끝에 취업 경쟁에서 뜻을 이뤘다. 대학 생활이 그랬고 졸업 후도, 그의 삶이란 게 맨날 속이 허한 상태로 하동거리다 보니 일이 제 뜻대로 풀리는 게 없었다.

부산에서 대만 가오슝까지 6일간 항행하는 동안 그는 멀미와 피로와 선상 환경의 부적응에 시달렸다. 잠결인지 생시인지 비몽사몽간에 의식은 몽롱하고 어렴풋한 상태가 계속됐다.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더불어 생소한 선상 생활을 하느라 제 딴엔 집 떠난 고생을 겪었다.

그는 본사의 지시에 따라 정기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선상의 고달픈 생활을 견디면서 때론 흐려지려는 정신을 곧추세우고 본사 편집실에 글과 사진을 보내야 했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보냈다. 큰 파도가 뱃전을 때릴 때를 기다렸다가 바닷물을 뒤집어써 가며 사진을 찍었다. 적어도 선상에서 어영부영 놀고먹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대학 실습선의 해외 항해 현장 르포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내용과 사진글을 준비했다가 항해가 끝나면 바로 잡지의 다음 호에 싣고, 커버스토리로 나갈 예정이었다. 그는 노상 신경 쓰며 차근차근 수집하고 기록을 했다.

대만의 분위기를 흠씬 느끼며 4박 5일을 머물렀던 가오슝항은 부지불식간에 멀어졌다. 조금 후 까마득해졌다. 항만의 경계에 이르면 파일럿은 배에서 내려 되돌아가고 방향키를 선장에게 인계했다. 그것을 항해 당직을 맡은 초사(일등항해사)가 다시 받아 계획된 침로를 따라서 운항을 이어간다.

둔탁한 기계음과 진동 소음으로 휩싸인 선박은 승선한 사람들에게 많은 피로감과 스트레스에 지치게 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선내의 환경이다. 그걸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승선 경력이 많은 베테랑은 그것이 몸속과 신경 안으로 들어와서 체화되기 전에 흘러가게 한다. 또한 자신의 몸과 정신이 선박의 소음에 맞는 생활 리듬으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해소되게 한다. 그러나 멍멍한 난청과 날카로워지는 신경은 어쩔 수 없이 병원 신세를 지는 경우도 있다.

신참은 그렇게 하지 못해 배를 타는 순간부터 골골거리며 멀미까지 싸안고 시간을 죽이느라 안간힘을 쓴다. 여가에 술을 마시거나 바둑을 두거나 카드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흥미 위주의 월간지 정도라도 읽어내기가 만만찮아 독서는 대개 포기하고 만다.

이런 소음과 진동은 선박이 부두에 접안했다고 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선박을 떠났을 때에야 해방될 수 있다.

항구에 정박한 선박은 주기관은 멈추게 하고 보기(보조기관)를 돌리기 시작한다. 에너지 절약과 주기관의 장시간 운용에 따른 기체 소모와 피로도를 줄이기 위하여 휴면하는 것이다.

보기의 가동은 선박의 전체 전력공급과 선박직원의 제반 당직 및 통신 업무 등을 원활하게 하려면 필요하다.

가오슝에서 출항하여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세 번째 밤을 보냈다. 밤과 낮을 구분할 별다른 의미는 없지만 일력상 하루 이틀 날짜가 지나간다는 것은 그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두 번째 기항지인 싱가포르에 도착하면 또 다른 이국의 땅에 들어선다는 기대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젯밤 갑판에 수직으로 선 마스트를 바람이 난데없이 쐐 하며 핥고 지나갔다. 그 소리가 너무 강하게 들려서 전송 받은 기상도나 인근 해안국에서 강풍 경보라도 발효된 것은 아닐까. 하고 한참 동안 긴장했다.

그에게 어제 저녁은 유난히 급히 내린 밤이라고 여겨졌다. 어느 산촌의 사방에 지천인 점점홍 꽃멀미에 취한 봄밤같이. 그 봄밤처럼 속이 메스껍고 헛토악질을 수십 번 해댔다. 그는 이상스럽게 바작바작 간을 졸였고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달 올려보듯 공중을 휘둘러보았다. 그러나 달이 있을 턱이 없는 회색빛 하늘이었다. 우울하게 하늘은 낮게 드리우고 있었다.

뒤따라 다니듯 하는 어둠에 둘러싸여 있었고 그의 눈에 어둑서니가 끼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살갗에 으쓱한 한기가 돋았다. 차라리 심심산중 날카로운 야수의 울음소리라도 밤공기를 찔러주었다면 이렇게 마음이 무겁고 불안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여전히 소음은 포악한 점령군처럼 사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는 내심에 까만 허공에 결박당한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미친개가 울부짖으며 발광하다가 얼핏 시야에서 스러지듯 어둠 속의 그림자가 스쳤다. 그것은 눈앞에서 실루엣으로 희번덕이며 지나갔다. 하지만 너무 또렷하게 뇌리에 각인된 것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질급했다. 가슴께에 불쑥불쑥 치밀어 올라 몸이 바르르 떨리며 뒤이어 목이 타고 애를 졸였다.

한사코 그걸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었지만 털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가슴 절절한 사랑을 청하다가 무시되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양 공황 속에 빠졌다. 썩고 썩은 초가가 제풀로 주저앉으며 급자기 고요해지듯, 그런 형국이었다. 연이어 적막함 뒤의 두려움이 전신을 옥죄어 왔다.

서 있기조차 얼떨떨하고 허청거리는 자신이 아득하게 의식되었다. 선상의 조명은 빛을 내고 있었지만, 시야는 캄캄했다. 그냥 주저앉아 버린 것은 자신도 알 수 없는 아주 짧은 사이에 벌어졌다. 있는 힘을 죄다 모아서 용을 써 봤지만, 오금이 펴지지 않았다.

일정에 따라 오전에 항해 실습수업이 진행되는 조타실에는 실습생 10명이 조타륜을 마주 보고 1열 횡대의 부동자세로 도열을 지었다. 형광등 불빛이 흐릿하게 퍼져 보였다. 조별로 항해항법에 관한 모둠 토의와 실습을 하고 있었다. 일등항해사가 봉을 쥐고 도열한 전면에 서서 몸자세를 가다듬었다. 한참 동안이 오랜 실습생의 대선배인 일등항해사가 앞에 서서 항해술에 대한 실무 교육을 이어갔다.

항해사들과 실습생들 모두 규정된 제모를 썼으며 멋들어진 항해사 제복의 견장이 빛났다. 항해가 순조로운 듯 자동조타기를 걸어놓은 당직 항해사가 전방을 견시하고 있었다.

수업 중 때때로 알았나? 알았나?……하는 강도 높은 호령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예엣! 옛!…… 악쓰는 실습생들의 기합이 브리지를 차올라 갑판 쪽으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 위에 때때로 야압! 야압! 얍! 하는 단체 구령이 규칙적이고 절도를 지켰다.

해도는 전지보다 큰 흰색 지면에 2등분 4등분 8등분 16등분 등의 굵다란 구김과 자글자글하게 잔 구김이 수없이 잡혔다. 네 귀퉁이가 나달나달 낡았고 해도대 면적보다 더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하단 귀서리가 바닥으로 향한 채 수직으로 흘러내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바스락거렸다. T자로 자세히 해도면을 재어 가면서 연필로 선을 그으며 초사는 설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주의가 산만해진 실습생에게는 일등항해사가 T자로 옆구리를 쿡쿡 질러대는 시늉을 했다. 수업은 근엄히 진행되었다. 실습생들은 기합이 바짝 든 자세로 큰 소리로 질문에 답했다.

배는 늘 망망대해의 자연재해에 노출되어 있고 언제 어디서든 위급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 항상 정신을 가다듬고 대비해야 하며 관련 매뉴얼을 숙지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뱃사람은 늘 배의 바닥 아래가 바로 사멸이라는 생각을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선박의 사관이 되려는 자는 굳건한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승선한 모든 인원을 피난시키거나 구조한 연후에 불가피한 최후에는 배와 함께 목숨을 던져야 한다. 제반 교육과정은 물론 엄격한 선상 규율에 따른 단련이 몸에 익어야 한다. 그와 함께 정신 무장에 한 치의 빈틈도 있으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멀미 중에 뱃멀미는 욕지기와 구역질, 현기증, 이런 모든 게 사람이 배에서 내리기 전에는 피할 수 없어요. 항상 푹 자 두세요. 그렇지 않고 거기에다 수면 결핍이 쌓이면 괴상한 몽상에 빠지지요…… 그러고는 그게 겹치고 반복되면서 걷잡을 수 없어요’

어제는 기관장이 초췌해진 그의 몰골을 앞에 두고 수심에 찬 표정으로 몇 마디 건넸다.

‘왠지 힘이 없고 식욕도 없고 멍멍하고 그래요……’

그는 맥없이 축 늘어진 어깨를 구부린 채 진득이 물기가 배어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해수면에서 올라온 검푸르죽죽한 빛깔이 주위에 퍼졌다. 그는 겨우 몸을 반쯤 세웠다. 그는 휘청거리며 넘어질 듯 복도 벽을 오른손바닥으로 짚으며, 왼손으로 훑으며 움직였다. 복도의 끄트머리에 있는 그의 침실 출입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출입문을 열려고 심하게 당기고 밀고 하다 보니, 탕탕~~ 퉁탕~~! 듣기 거북한 소음이 났다.

조명이 어두컴컴한데다가 그의 눈은 어둡게 된 사물은 어렵게 받아들였다. 구역증이 두통을 몰고 와서 고통스러운데다가 한 번씩 때리는 거센 파도는 배를 간단없이 뜰썩거려서 몸을 낮추어 바닥으로 엉금엉금 기게 만들었다. 시간이 꽤 많이도 흘렸으리라고 그는 느꼈다. 힘들게 침실을 찾아 들었다.

다음날 그는 선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조리사가 붉은 혹돔구이와 찌개로 맛 들리게 차렸다. 머리가 띵하고 몸이 노곤했지만, 끼니는 때워야 했다.

부산에서 대만으로 오는 항행 도중 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부 학생들의 어구어법실습을 하는 차에 거문도 근해에서 트롤망을 투망했다. 제법 씨알이 굵은 돔을 2~30박스 정도를 올렸다. 돔을 잡을 수 있는 국내 어장터에서 해양생산시스템관리학부의 교과목 실습수업 이수의 일환이었다.

트롤어법은 투망한 채로 바다 밑바닥을 끌어 물고기를 그물 안으로 가두어 잡는 그물 어구어법이다. 투망하여 저인망 어법으로 끌고 다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 그물을 걷어 올린다. 어족자원의 분포 밀도의 높고 낮음과 조류의 강약과 방향에 따라 투망과 양망의 방법 등이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다.

어획물은 우선 선도를 보존하기 위하여 얼음을 채워 어창에 보관해야 한다. 산물을 크기별로 선별하여 상자에 담고 신선도를 유지하여 최상의 상품성을 갖도록 하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하략)…………

 

□ 자료출처 : <해양과 문학> 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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