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해발 부근(천금성)

등록일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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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해발 부근(零 海拔 附近)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차가운 물방울이 마치 얼굴 어디라고 없이 마구 우벼 때리고 있었다. 그는 다만 그것만을 의식할 따름이었다. 하늘을 치솟는 파도, 파도, 파도…….

그 파두(波頭)에서 깨어져 나와 흩날리는 물방울. 그 위 진공(眞空)처럼 둔후한 대기를 찢는 해명(海鳴). 시야는 온통 깜깜 칠흑(漆黑)이었다.

이미 2천 패덤의 해저(海底) 깊숙이 침몰해버린 원양 어선(遠洋漁船) 제8오대양 호의 항해사(航海士) 이 정민(李正珉)은 폴리에틸렌 부이 두 개를 죽어라고 부둥켜안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놓쳐서는 안 된다. 그는 벌써부터 체념에 빠져 기승을 부리는 바다가 아니더라도 숫제 사지(四肢)의 맥을 깡그리 풀고 있었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놓쳐서는 안 된다. 라이프 자켓을 등에 걸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우선만 하더라도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 전적으로 기대를 걸 계제가 못 되었다. 인조 코르크 성분으로 제조된 라이프 자켓은 기껏 스물 네 시간인가, 이것이 바다에서 유효한 부력 시한(浮力時限)임을 들은 기억이 얼핏 떠올랐기 때문이다. 조난자(遭難者)는 바다 위에 딱 스물 네 시간만 떠 있어라…… 세상은 온통 무관심한 녀석들의 투성이임을 개탄해 보기도 했으나 그뿐이었다. 모든 상황은 그런 경황조차 여유를 주지 않았다.

등에 걸쳐진 라이프 자켓은 이제 얼마 안 있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릴 것이다. 결국 그는 5십 패덤의 수중에서도 수압(水壓)에 용케 견뎌 낸다는 폴리에틸렌 부이 두 개에다만 그의 모두를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강도(强度)와 부력이 강하기 때문에 파곡(波谷)에 곤두박질쳐대는 그의 몸뚱이와 호흡이 잘 맞질 않아 몇 번이고 턱을 찧었다. 처음에는 깜짝 비명을 터쳤을 정도로 무척 아팠으나 이제는 턱뼈가 문드러져버리고 만 것인지 그저 얼얼하기만 했다. 큰 수박덩이만한 노란 빛깔의 그것은 그의 가슴에 끼어든 채 서로 맞부딪쳐 깔끄러운 마찰음을 내고 있었고, 그러나 그것은 이내 해명과 파도 소리에 말려 들어가 그의 귀에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에 짠물이 잔뜩 쩔어 든 그의 귓바퀴 속으로

「바다가 진력이 나거든 돌아와 주세요.」

그녀의 약간 코먹은 소리가 울려 오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체념하고 있었다. 거칠고 사납기로 악명 높은, 평균 수심 2천 패덤의 남부 인도양(南部 印度洋)에서 생존 귀환할 수 있다는 보장은 하나도 없다. 유독 남부 인도양이 아니더라도 여태까지의 조난자 경우가 모드 그러했듯이, 그는 전부터 이럴 때의 결과를 뻔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 그렇게 틀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 날의 정오 위치 관측(正午位置觀測)에선 배는 가장 가까운 육지(陸地)---마다가스카르 도(島)와의 거리가 3백마일 이상 격해 있었다.

인근 해역에는 분명히 섬 조각 하나 없을 뿐더러 가장 가까운 곳, 즉 그의 배가 조업하고 있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야 수심이 15패덤의 산호암암(珊瑚暗岩)이 하나 차아트에 기록돼 있었을 뿐이었다. 더구나 인근 해역에는 한국 어선이 조업하고 있질 않았다. 한국 어선들은 모두가 지난달에 중부 인도양으로 올라갔던 것이다. 1년 중 비교적 바다가 덜 사나운 5월 중순에서 3개월간이 남부 인도양의 조업 시기로 되어 있었다. 9월에 접어들기가 바쁘게 어선들은 중부로 꽁무니를 빼었다. <사이크로운>의 계절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한국 어선 이외의, 일본이나 중국 어선들이 있었는지를 그는 미처 확인하지 않았다. 매일 세 번씩 있는 조업선간의 어황 교신(漁況交信)에 중국선들은 정말 되놈처럼 주파수(周波數)와 교신 시간을 저네들이 암호로 수시 변경시켜 버림으로서 청취 불능으로 제쳐 두더라도 일본 어선이 인근에 있었는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언제나 알바코어 어획만 노리는 일본 어선이 수척(數隻)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틀림없이 인근에는 일본 어선이 있었을 것으로 그는 생각하였으나 그도 그뿐이었다.

그의 배는 언제나 재수가 없었다. 언제나 중부 어장에서는 샤치(鯱)를 만나곤 했다. 작업 중 엉뚱히 부상자가 속출했고, 때문에 항구에만 부지런히 들락였지 어획은 언제나 저조하였다. 2년의 계약 기간 동안에 오히려 적자를 내고 말 형편이었던 것이다. 젊은 선장은 매우 당황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는 모험을 택했는지도 몰랐다. 어가(魚價)가 높은 알바코어를 잡아서 이의 모든 불운을 만회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까지도 모험에 대응하는 대어를 하고 있었다. 만선(滿船)도 이제 불과 수일이면 가능하였었다.

시야는 여전히 깜깜한 칠흑이었다. 열대 저기압---<사이크로운>이란 발생 초기와 마찬가지로 또 쉽게 소멸(消滅) 되지 않는다고 정의되어 온 한, 바다는 여전히 기승을 부려 될 것이다. 초속 70미터의 속도로 진행해 왔던 <사이크로운>은 벌써 이 곳을 지나쳤을 것이나 바다는 오히려 더했다. 입과 콧구멍으로는 짠물이 사정없이 밀쳐 들어왔다. 귓구멍을 채운 물은 풀무 소리를 냈다. 모든 것은 이제 그만인 것이다. 그는 미리 체념하고 있었다.

선장은 배를 너무 과신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날 GMT 12시 기상 방송에서 통신사는 전에 없이 강력하다고 관측된 게일워닝을 수신했다. 18시에 가서는 <사이크로운>의 통보로 돌변했다. 일몰 무렵엔 검붉은 놀이 온 하늘에 깔려 기분 나쁜 광경을 자아냈고 스웰이 한 번씩 크게 선저(船底)를 치훑어 나갔다.

간간이 해명도 들려오는 듯했다. 바로 <사이크로운>의 전조(前兆)였던 것이다. 양승 작업(揚繩作業)이 끝나기에는 아직 두세 시간이 필요하였으나 선장은 그것이 도달하기까지 충분히 끝날 것으로 믿었다.

그 날 따라 고기는 낚시마다 물었다. 갑판에 올려진 고기들은 지느러미조차 제거되지 못하고 마음대로 뒹굴었다. 갑자기 현장(舷牆)넘쳐 온 물이 선원들을 갑판 구석까지 밀어붙였다. 예상외로 그것은 빨리 왔던 것이다. 그리고 350톤 급의 강선(鋼船)은 이미 그 중심권(中心圈)에 들어갔던 것이다. 예비 부력(豫備浮力)을 거의 갖지 못했던 배는 좌현 전타(左舷轉舵) 때 연거푸 몰아닥친 횡파(橫波)를 두 번 받았고, 미처 복원(復原)을 되찾기도 전에 치명적인 대파를 선수미(船首尾) 양쪽에서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러고는 그만이었다. 선체는 맥없이, 그리고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선(離船)! 전원 이선하라!」

사실 이러한 불시의 조난에 대비한 평소의 훈련을 태만히 하였던 것은 전적으로 항해사인 이정민 그 자신의 책임이기도 했지만, 이선이라는 용어조차도 생소할이만큼 이럴 경우의 조속하고 적절한 방법을 모르고 있던 선원들은 그저 갑판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한 경력 있는 선원은 비닐 호오스에다 재빨리 청수(淸水)를 반쯤 채워 넣어 표류중의 갈증에 대비하려했으나 그가 바다에 뛰어내리기가 바쁘게 파도 속에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하략)…………………………

 

□ 천금성, 196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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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지면 : <해양과 문학>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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