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등록일202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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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이윤길 ㅣ 소설가

 

 

1

이사벨라는 마리나를 벗어났다. 잔뜩 흐려있던 하늘에서 가랑비까지 찔끔거리며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편동풍이 삼 일 동안이나 불었다. 수평선에서는 그르렁거리는 천둥소리만 들려올 뿐 바람은 잦아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바우로 넘쳐드는 파도는 이사벨라 항로를 지워가며 조타륜을 잡고 있는 그녀마저 두려움으로 떨게 했다. 그토록 고대해온 일이었으나 막상 산더미 같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니 두렵기 그지없었다.

바다, 하늘, 파도…. 이사벨라는 바우를 향해 밀려오는 파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녀는 이사벨라가 파도에 눌려서 신음을 흘릴 때마다 이제는 마지막이다.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습기로 뒤덮인 대기는 후덥지근했고 파도는 마치 거대한 붕새가 수평선을 삐죽삐죽 쪼아놓은 것 같이 날카로웠다.

-언제쯤 이 광란의 파티가 끝날까?

리우데자이네루항 예수상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뱃사람을 맞듯 바람을 잔득 머금은 메인세일은 부풀어져 있었고 장력으로 인해 메인세일은 쉬지 않고 펄럭거렸다. 강풍에 세일이 찢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세일을 접어서 바람의 장력을 줄여야만 했다.

마침내 마음을 결정을 내린 그녀는 하네스를 핸드레일에 걸었다. 철컥하고 스냅 채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신중하게 콕핏을 벗어나기 시작했고 마스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만에 하나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어떤 곤경에 빠질지 그녀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젠장!

그녀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다시 쿵 소리가 들리며 물보라가 일어났다. 바우 앞 수면이 부풀어 오르며 바닷물 덩어리가 그녀에게로 날라들었다. 몸을 쓸고 지나가는 파도의 굉음이 그녀의 귓가에서 맴돌았다. 그녀는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하네스를 꽉 움켜잡았다.

“정말로 떠날 거야?”

폰툰을 걸어오던 희수가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결심을 되돌리기 위한 회유였다. 그러나 단독항해는 이미 선언되었다. 어떠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선언이 아니라 그녀가 떠나보낸 시간과 약속이었다.

방파제로 둘러싸인 수영만 마리나에는 여러 개 폰툰이 있었다. 폰툰마다 쌍둥선인 카타마란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수 십 척 요트가 계류되어 있었고 맞은 편 안벽에는 주말을 맞아 해양소년단의 딩기강습을 참관하려 나온 보호자들로 붐볐다. 그때 벚나무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꽃잎이 희수 얼굴 앞에서 배추흰나비처럼 나풀거렸다.

“오랜 꿈이었어. 그래서 이사벨라를 타는 거야. 마침내 시간이 되었어. 쇼 타임인거지. 떠날 거야…. 잘 다녀올게. 잘 있어.”

그녀는 들리듯 말듯 입술만 들썩거렸다.

파도가 그녀의 몸을 흩어가는 동안 희수와 나누었던 대화가 이명처럼 쟁쟁거렸다. 다시 파도가 덮쳤다.

-덤벼 봐. 덤벼 봐.

그녀는 파도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파도가 지나간 것을 확인하고 일어서려는데 허벅지가 풀려서 감각이 없었다. 문득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하였다. 단독항주를 결정한 일이 잘한 일인가? 언제까지 이렇게 바람 속을 헤매야하는가? 의지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녀 뿐. 그렇다고 이제와도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녀는 몸의 중심을 잃을 정도로 흔들리는 롤링과 피칭에서 몇 번이고 발걸음을 멈추어야했다. 파도…. 또다시 달려드는 파도. 그녀는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다. 핸드레일을 잡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2미터…, 3미터…,

메인마스트까지 거리는 까마득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기었다. 1미터, 2미터 파도와 바람을 뚫고 앞으로 기어가는 것, 그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파도가 덮쳐 올 때마다 그녀는 하네스 안전줄을 꽉 움켜진 채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하길 수차례 마침내 메인마스트에 도착했다.

그녀는 축범용 끈을 재빨리 조이기 시작했다. 세일을 줄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강한 바람 탓에 도무지 마음먹은 대로 되어지지 않았다. 중간에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빨리하고 돌아가서 좀 쉬어야지. 마침내 축범을 완료했다. 그녀는 눈물이 핑 돌았다.

축범을 마치자 이사벨라가 받는 바람의 장력이 적은 탓에 롤링과 피칭 각도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서둘러 콕핏으로 돌아왔다. 열대바다였지만 파도와 드잡이를 하느라 방풍재킷이 흠뻑 젖은 탓에 한기가 느껴졌다. 이사벨라 주변으로는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파도는 어둠에 묻혀 사라지며 바다는 언제 파도가 쳤는가 모를 정도로 잔잔해졌다. 이사벨라가 파도 위의 시간이 흘러가는지 파도 속으로 그녀가 달려가는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요티의 주신인 포세이돈에게 다가가는 세 가지는 육지와 단절, 황천 속 난파, 절대 고독이라더니 바다가 이렇게 고요하다니….

그녀가 혼자만의 생각 속에 빠져 있는 그때, 뭉글한 느낌의 물체가 종아리를 툭 하고 쳤다. 그녀는 콕핏 주위를 살폈다. 요트 밖에서 날치가 떼거리를 지어 날고 있었다. 날치 떼가 허공으로 비상하기 위하여 파도를 지친 주변에는 작은 동심원이 보였다. 그녀의 단독항해가 일탈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 마음에 일으킨 적지 않은 파문처럼. 날치무리 중에서 닿고 싶었던 목적지가 콜럼버스처럼 이사벨라라 여긴 걸까? 무리 중 한 마리가 그녀의 종아리 아래로 불시착을 했던 것이다.

이사벨라 원래 이름은 프린스였다. 37피트 레이스 급으로 10년 전 일본의 전문기술진에 의해서 건조된 요트였는데 그녀가 인수하자마자 이사벨라라고 선명을 바꾸었다. 이사벨라는 열흘 전 수영만 마리나를 떠났다. 출항이라는, 난데없는 이별통보에, 그것도 희수로부터 전해들은 경훈은 당황했을 것이다.

그녀는 항해를 시작하자마자 덮쳐온 황천으로 인해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다. 동쪽으로부터 줄기차게 불어오는 강한 바람 때문에 항해는 제자리에 머물고 있었다. 이래서 언제 타이티에 닿을까도 싶었다.

-빌어먹을.

그녀는 다시 중얼거렸다. 이사벨라가 두 동강이라도 나는 것은 아니겠지. 그녀는 파도와 바람에 당할 걸 알면서도 출항을 늦추지 않았다.

“삼사일 후면 저기압이 지나가고 고기압이 들어온다는데 꼭 지금 출항해야 하겠니?”

희수는 날씨가 좋지 않을 거라면서 출항을 늦추라고 했다.

“일기예보라는 게 어디 믿을 것이 되니. 저기압이라 해도 봄이니까 괜찮을 거야.”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사실 출항하기 며칠 전부터 그녀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잠이 들면 번번이 악몽에 시달리다가 깨어났다. 이젠 남남이 되어버린 남편이 마약에 취해 뒷덜미를 낚아채거나, 아파트를 내놓으라며 목을 죄는 꿈에 깨어나곤 했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시달리느니 차라리 출항하는 것이 마음은 편할 것 같았다.

그녀는 담배를 빼어내 물었다. 불도 붙이기 전에 날라든 물보라에 담배가 흠신 젖어버렸다. 악천후로 인해 시야가 제한 된 탓인지 갈매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프린스를 인수하자 희수에게 단독항주의 계획을 들려주었다. 처음에 희수는 그녀의 계획을 벚나무가지를 지나가는 바람처럼 간주했다. 허황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희수의 생각은 당연했다. 여태까지 한국에서 대양항주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더구나 여성으로서는, 그러니까 그녀가 여성이란 사실만으로도 항해는 불가한 것이었다.

“미친년. 미친년.”

희수는 그녀를 보기만 하면 그렇게 외쳤다.

“미친년. 미친년.”

그녀의 단독항해에 대한 무모함과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설득하는 와중에서도 욕설은 빼먹지 않았다. 그녀는 희수의 말을 무시했지만 어쩌면 자신이 미친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경훈 씨를 만나 마음의 안정도 찾았는데 안 가면 안 되겠니?”

그녀는 희수의 말에 고개부터 가로 저었다.

“떠날 거야. 먼 바다로. 수평선 너머로.”

그녀의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희수가 판단하기에 그녀에게 있어서 경훈과의 관계는 살아나가는 과정에서 만나 남자 하나였을 뿐이다. 서로에게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고 말했으나 희수가 보았던 것은 그녀의 허울뿐이었다.

파도에 시위를 하듯 이사벨라가 놀이공원 바이킹처럼 높이 치솟았다. 미처 배수되지 못한 바닷물에 발목까지 잠겨버리며 허리가 휘어졌다. 그녀는 가위에 눌린 것처럼 허우적거렸다. 그동안 팀 드레이크를 승선하며 황천에 대응하는 항해 테크닉을 익혔다고는 하나 대자연의 위력 앞에선 그녀의 노력은 하잘 것 없는 것이 되었다.

이모의 소개로 만난 남편의 첫인상은 조용하고 선량했다. 하긴 조금만 주위를 기우렸다면 알아챘을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남편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했고 그녀도 남편이 싫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들어주었고 그녀도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었다. 무엇보다 병중에 있던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의 결혼을 다그쳤다. 그러나 부모님 재산을 탕진하며 무위도식하는 남편과 결혼생활은 이미 끝장 난 것이나 만찬가지였다.

거기에다가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지 아이조차 생기지 않았다. 더군다나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그녀를 쳐다보는 남편 시선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경멸에 가까워졌다. 그처럼 의미 없는 생활에서 그녀가 얻어낼 기쁨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결혼은 그녀에게 점차 형벌이 되었다. 결국 삶에 대한 실망감은 그것이 사랑이든 증오든 갖가지 상념으로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그녀는 바다를 찾는 날이 많아졌다.

그날은 모지포 해안에서 요트를 보게 되었다. 강열한 전율 같은 게 온몸을 흩고 지나갔다. 온몸의 솜털이 모두 일어서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기쁨, 새로운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녀는 요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노을 속에 서 있었고 바다에서부터 육지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해초냄새가 담겨져 있었다. 사실 송도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어릴 적부터 바다는 꿈이었다.

수평선 너머로 가면 그곳에는 금방이라도 바다로 넘어질 듯이 길게 드러누운 코코넛이며, 그 잎사귀 끝에 걸린 채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저녁 해와, 산호모래 해변을 거니노라면 어디서인가 야자 게가 기어 나오고 그것을 요리해 주는 구리 빛 살결을 가진 폴리네시안 왕자님이 달려올 것만 같았다. 순간 그녀 어떻게 자신을 가두고 다그치는 현실을 벗어나 이 평화로운 마음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요트를 보았던 그 날 이후부터 그녀의 관심은 요트로만 쏠렸다. 그녀는 마침내 수영만 계류장에서 프린스를 찾아냈다. 그녀가 요트와 처음 마주대하였을 때 프린스는 우아하면서도 날렵한 멋을 한껏 풍겨내고 있었다. 선실에는 2인용 침실을 겸하여 SSB. GPS. 레이더. 위성전화기, 컴퓨터 등등 온갖 첨단 항해장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최고 10노트의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제너럴 모터스 100마력짜리 디젤엔진까지 장착하고 있었다. 팀 드레이크는 구태여 스피니커며 짚세일 등 보조 돛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항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프린스는 멤버십으로 운항을 하고 있었다. 이미 희수가 홍일점으로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던 여성 크루의 입회에 회원들은 반겨했다. 그날부터 그녀의 생활은 수영만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항해는 순조로웠다. 희수와 A팀과 B팀으로 나누어져 정기적으로 출항하는 팀 항해를 비롯하여 해군참모총장배 라든지 장보고배 대회출전은 물론 독도레이스 등 수많은 대회와 레이스를 아무런 문제없이 치러냈다.

요트는 무작정 돛을 펼쳤다고 항주가 가능한 것이 아니다. 기상 역시 천진하게 엎드린 잠든 아기가 아니었다. 바다의 기상은 변덕스럽기 짝이 없어서 맞바람이 불어올 땐 크로스 홀드라는 45도 각도로 항주 하는 스타보드 택과 포드 택을 번갈아 반복하며 바람을 거슬러 항해할 수 있어야 했다. 또한 예기치 못한 조난에 대비하여 도움을 필요로 하는 긴급통신 방법에 대해서도 습득해야 했다. 그녀가 꿈꾸고 있는 항해를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항해술이기도 했다.

……………<하략>……………

 
 

□ 자료출처 : <해양과 문학> 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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