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同行

등록일202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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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同行

하동현 ㅣ 소설가

 

 

먼저 바다를 버렸던 한 친구를 떠올린다. 나름 정규코스를 밟았던 나와는 달리, 출신성분 때문에 진급이 뒤처져 미안해했던 기억이 있다. 바다든 육지든 모두 사람 사는 세상이지 않나. 바다를 무대로 전문용어를 쓰는 본격 해양소설보다 뭍에서도 거북하게 이어지는 땅 멀미 같은 다양한 뱃사람들 삶의 결을 풀어보고 싶었다. 내 이름과 한자까지 겹치는 데다 이런저런 연유로 가장 친숙하게 다가오는 지명을 배경으로 했다.

 

1

어머니와 삼십오 년을 살았다는 사내와 마주 앉았다. 하동河東에서.

파마머리에 기골이 장대했다. 금장시계를 찬 왼쪽 손목 위로 그림인지 글씨인지 명확히 판독할 수 없는 초록빛 문신이 언뜻 보였다. 목청이 크고 말이 많았다. 내 예상과 기대를 배신하지 않은 셈이다. 적당히 무례하고 상스러웠으며 터프한 것이 남자다움이라 평생을 믿어온 건달 출신이 분명했다.

송림공원에서 하릴없이 섬진강 모래사장을 내려다보며 서 있을 때였다. 포대썰매에 올라타 환호하는 아이들과 그것을 끌며 활짝 웃는 젊은 아버지 어깨에 설핏한 초겨울 햇살이 내려앉았다. 짐작도 할 수 없는 번호가 떴지만, 덜컥 전화를 받았다. 기다리는 사람도 반겨 줄 사람도 없는 고향에서 누군가의 음성이라도 듣고 싶었을까.

“……그랑게 보자, 그 뭐시냐, 장 재훈씨 휴대폰이 맞는가 모르겄소?”

짙은 남도 사투리, 약간의 떨림이 배인 목소리.

“이 영란씨 알겄지라?”

마른침을 삼켰다. 먼저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다. 머뭇대던 그가‘자네 엄마의 남편’이라는, 복잡하고도 당혹스러운 신분으로 자신을 밝혔다. 이 영란, 엄마의 이름. 아무런 기억도, 사진 한 장조차도 없이 이름 석 자만 남아있는 여자. 그가 한껏 목소리를 낮췄다.

“……자네 어무이가 저 세상으로 가부렀단 말시…….”

생각을 가다듬을 여유라도 주려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 헛기침을 했다. 햇살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훑고 지나갔지만 애써 덤덤하려 했다. 그가 준비된 원고를 외듯 재빨리 덧붙였다. 신장이 극도로 악화 되어 투석치료를 받던 중에 갑작스러운 쇼크사였다고.

“만나서 야그 좀 하더라고. 나 시방 하동읍이여.”

이쪽 지리를 잘 안다며 공설시장 부근 재첩전문집 상호를 일러줬다. 휘적휘적 교차로를 걸어 나오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중학교를 마칠 때쯤 사전에서 엄마 이름을 찾았었다. 오얏 리李에 비칠 영暎, 난초 란蘭. 그 나이대 여자들 흔한 돌림자인 순, 자, 희 같은 이름이 아닌 것을 떠올렸고 속내를 비치지 않는 무표정한 낯빛일 거라는 혼자만의 상상을 했다.

열 달 만에 귀국해 쉬고 있던 중이었다. 페루 카야오(Callao) 항에서 선박회사 이 년짜리 임시 주재원 자리를 원했으나 거절당했다. 섭섭해하지도 괘념치도 않았다. 수백만 달러를 관리하는 해외기지 업무를 도대체가 핏줄이나 연고라고는 없다시피 한 외톨이에게 맡기는 게 내키지 않았으리라. 회사는 미안했던지 차라리 계속 승선하기를 제안하며 다음 항차 선장 진급을 약속했다.

그가 내게 술을 따랐다. 배를 탄 담서? 눈빛에 연민 같은 것들이 얼핏 스쳐 지나갔다. 시인과 연극배우와 배를 탄다는 것은 왠지 안 된 마음에 어깨라도 두드려 주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는 농담을 떠올렸다.

“한 잔 하더라고. 이 재첩국 한 사발 들이켜야 여게 온 실감이 나제.”

이내 그가 표정을 바꿨다. 엄마와 닮은 곳이라도 찾아냈는지, 그리고 그 사실이 어떤 안도감이라도 준 것 같은 눈빛이었다. 엄마를 살려내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듯 잘못을 고백하는 말투를 썼다.

“이식을 할라그랬제. 그란디 줄을 서도 언넝 아다리가 안 되는 거여. 중국 아그들 것 까지 찾았는디, 도야지 창시인지 아편이나 하던 썩으랄 놈들 건지 불안혀서 국산을 기다리다가…….”

안주를 뒤척이던 그가 엄마 음식솜씨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엄마 밥이라고는 구경도 못 해본 버려진 자식 앞에서 엄마 손맛 자랑에 침이 넘어갈 판이었다.

“손맛이 참말로 뻑적지근 해부렀제. 술장사, 밥장사할 때여, 재첩국에다 생선조림에, 아무렇게나 치대부러도 그 맛깔난 김치는 또 어떻고. 손님들이 줄을 섰제. 상판대기가 밥 먹여주나, 미인은 소박맞아도 음식솜씨 좋은 여자는 그랄 리 없제, 암만.”

계속해서 소주와 맥주를 섞어 벌컥대며 잠시라도 어색한 고요를 견디지 못했다. 내가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도 식당 아주머니를 붙들고 끊임없이 주절대고 있었다.

“나가 참말로 오랜만에 여그 들렀소. 나가 목포출신인디 군대 마치고 여그 퍼져앉았던 거이 삼십 년도 더 전이어라. 언놈들이 목포서는 이 난영이, 부산서는 울 나라 최고 가수가 남 인수라 씨부려 쌓길래, 속으로 아하, 니긔들이 하동을 무대로 나 훈아가 불러제끼는‘물레방아 도는데’를 몰라부렀구나 했었제…….”

아주머니와 내가 함께 들으라는 말인지, 아주 재미난 농담을 말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자신 말대로 제2의 고향, 이곳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눈 닦고 찾아보시라, 대한민국 강산에 여기만큼 멋들어진 곳이 어디 있겠냐느니, 힘들 때마다 눈을 감고 쌍계사며 십리벚꽃길 멋들어진 풍광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느니, 대략 그런 말들이었다.

앞뒤 맥락도 없었다. 수해 입은 화개장터를 대폭 확장해서 복구개발 했어야한다는 비분강개까지 튀어나왔을 때 매몰차다시피 그의 말을 잘라야 했다. 어찌 나를 찾았는가보다 왜 찾았는지가 더 알고 싶었다. 움찔한 그가 헛기침을 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뭣 땀시 자넬 요로코롬 찾었냐 하믄, 거시기 사망보험금을 탈랑게 자네가 걸려있더라고.”

 

2

배에서 몸에 익은 습관대로 토막잠에서 깨어났다. 초등학교 근처 원룸형 빌라였다. 냉수를 한잔 마시고 어제 일을 돌이켰다.

그는 빨리 취했다. 두서도 없이 자신의 지난날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왕년에 공설시장 부근을 무대로 장래가 촉망되는 씨름꾼 출신 주먹이었다. 천애 고아 짝이라 휴전선 인근 섬에서 해병대 제대하고는 돌아갈 곳도 없었다. 군대 동기 따라 이곳으로 흘러들어 바로 두목의 가방모찌로 입문했다. 날고 긴다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이름깨나 알릴 때쯤 덜컥 엄마를 만났다.

“시장 사무실서 퇴근헐 때여, 잡놈 몇이서 공판장 수박 포장 일마치고 집에 갈라는 젊은 아녀자들을 히야카시(희롱)하고 자빠진 것이라. 나가 한참 피가 펄펄 끓을 때제. 이단 엽차기로 한방에 뭉개 부렀네. 그라고 별 탈 없냐 살피는디 아 글씨, 자네 어무이가 고맙다믄서 로터리다방에서 쌍화차를 한잔 사는 것이라. 앗따, 그담 야그는 자네 앞서 쬐까 거시기 하구먼…….”

벼락을 맞은 듯 첫눈에 반해 미친 듯 들이댔다. 아뿔싸, 새파란 처자인 줄 알았는데 일찍 결혼해 애가 둘이나 딸렸더란다. 하지만 사나이 끓어오르는 첫사랑을 주체를 못 했다. 자신이야 기왕에 맨몸 신세였다. 엄마 입장에서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알만한 고장이라 함께 이곳을 뜨기로 약속할 만큼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정상적인 삶과는 천릿길 동떨어진, 막장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한바탕 쏟아 놓고 있었다. 누가 듣기라도 할까 낯이 화끈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승승장구하던 조직에서도 미련 없이 탈퇴했다. 야반도주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으로 향해 달셋방을 잡고 밑바닥을 전전했다. 재첩국을 내놓는 자그마한 대폿집부터, 나중에는 홍등가 귀퉁이에 색시집까지 열어 먹고 살았다. 그러다 아이가 생겼다. 이 대목에서 그가 눈시울을 붉혔다.

“아비헌티 불효허는 후레자석은 봐줘도, 어미 애먹이는 놈들은 싸그리 죽여부러야제. 아그 놀 적에 자네 어매 고생허는 걸 보고 나가 뼈저리게 느꼈네.”

태어난 사내아이는 옳게 걷기도 전에 뇌막염으로 세상을 떴다. 자식을 버리고 온 죗값이라는 트라우마라도 생겼던지 엄마는 그길로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했다.

“그때 해먹인 개소주가 몇 말은 될거이네. 가버린 아그보다 골골대는 엄마가 못 볼 지경이었제. 나가 징허게 자네 엄마를 사랑했응게…….”

십 년 전쯤부터 신장이 나빠져 병원 신세를 졌다. 이곳을 떠올리고 ‘섬진이’라 이름 지었던, 십육 년을 키운 강아지마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다시 극심한 우울증에 무릎관절염까지 겹쳤다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 그는 많이 취해있었다. 정작 보험금 이야기는 새까맣게 잊고 있는듯했다. 덩달아 반쯤 취한 내가 밖으로 나가 부산 선박사무실 전화를 받고 들어왔을 때, 그는 장판 바닥에 드러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난감했다. 껌을 파는 할머니가 들어왔다. 허리가 굽은 꼬부랑 할머니였다. 은단 향 껌 한 통을 사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불현듯 칠레 발파라이소(Valparaiso)항구를 떠올렸다.‘천국의 계곡’이라는 지명,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였다. 담배 한 대와 와인 한잔을 얻어 마신 답례로 손금을 봐줬던 주름투성이 집시 할머니, 루마니아 출신 전직 소매치기라 했다. 서로가 서툰 스페인어 대화였다.

“뚜 코라손 에스타 바씨아(너는 가슴이 텅 비어 있구나)…….”

 

시계가 여덟 시를 지나고 있었다. 그에게 전화를 넣었으나 응답이 없었다. 어젯밤 업다시피 끌고 가 방에 뉘었으니 아직 취해 잠들어 있지 싶었다. 언제나처럼 송림공원 강변 산책로를 잠시 걸었다. 먹구름이 솟은 흐린 날씨였다. 솔숲으로 축축한 물안개가 내려앉았다. 강 쪽에서 으깬 오이 향같이 알싸한 물비린내가 일었다. 제법 매서운 강바람을 등지고 모텔로 향했다.

시장길 두어 블록 안쪽 포장도로였다. 인기척에 놀란 길고양이 한 마리가 화들짝 전신주 뒤로 몸을 숨겼다. 모텔 입구 화분에 묻힌 몇 그루 키 작은 동백들이 붉었다. 어젯밤 기억을 되살려 출입구 비밀번호를 눌렀다. 찰칵하고 금속성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황토빛 2층 복도를 지나 그가 묵고 있는 방 앞에 섰다. 노크하려다 그만뒀다. 또 기억을 더듬어 도어 락 비밀번호를 눌렀다.

커튼이 다 젖혀있어 불을 켤 필요도 없었다. 그가 지독한 술 냄새를 풍기며 더블 침대에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팽개쳐 버린 윗도리, 가슴의 용 문신이 숨결에 출렁댔다. 깨울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어떡해야 하나. 그의 코 고는 소리가 평안하게 들렸다. 덩달아 나른해지며 피곤이 몰려왔다. 슬그머니 침대 바깥쪽 그의 왼편에 몸을 뉘었다. 몇 번 눈을 껌벅대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어렴풋이 그의 팔이 내 어깨 위로 뻗치는 걸 느꼈다. 그는 잠결에 아기처럼 내 귓불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얕은 꿈이 어지러운 선잠이었다.

……………<하략>……………

 

 

□ 자료출처 : <해양과 문학> 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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