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옥터봇(해양동화)

등록일202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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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옥터봇

류근원 I 동화작가

 

1

선착장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어둠을 뚫고 승용차가 나타났다. 승용차는 선착장 가로등 옆에서 멈췄다. 가로등 불빛에 모습을 드러내는 쓰레기 더미. 폐그물, 플라스틱, 페트병, 비닐, 스티로폼…. 역겨운 냄새까지 났다. 승용차 속에서 한숨 소리가 길게 새어 나왔다.

잠시 후 한 남자가 내렸다. 남자는 한참 동안 쓰레기 더미를 바라보다가 승용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트렁크 안에서 검은 물체가 사뿐 내려앉았다. 비행접시를 닮은 로봇이었다.

“옥터봇으로 변신!”

남자의 명령이 끝나기 무섭게 비행접시 로봇에서 철컥철컥 소리가 흘러나왔다. 비행접시는 다른 모양의 로봇으로 거듭 변신했다. 비행접시 위로 둥근 얼굴이 나왔다. 비행접시 아래로 8개의 다리가 슉슉슉 나왔다. 문어와 똑같이 생긴 로봇이었다.

로봇은 ‘이상 없음’ 소리를 연거푸 쏟아냈다.

“센서부 이상 없음, 제어부 이상 없음, 구동부 이상 없음. 3차원 청진기 이상 없음.”

로봇은 금방이라도 바다로 뛰어들 듯했다.

“옥터봇, 그동안 실험실에서 고생 많았다. 바닷속 쓰레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옥터봇의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쏟아졌다. 레이저 광선이 닿는 쓰레기 더미가 흐물흐물 녹는가 싶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옥터봇은 휘익 바다로 뛰어들었다.

“옥터봇, 바다를 위한 첫걸음이다.”

남자는 옥터봇이 사라진 쪽의 바다를 바라보다가 승용차에 올랐다. 하늘에선 별똥별들이 쉴 새 없이 바다로 떨어지고 있었다.

 

2

바닷속 오손도손 마을.

물고기, 거북이, 가오리, 오징어, 조개, 새우…. 정답게 모여 사는 마을이에요. 가끔 상어가 나타날 때도 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뒷동산 산호 숲에 걸려있는 나팔고둥 때문이에요.

상어가 나타나면 누구든지 나팔고둥을 뿡뿡뿡 불거든요.

마을 끝에는 오싹 동굴이 있어요. 어린 물고기들은 무섭다고 안 가는 곳이에요. 나이 많은 물고기, 거북이, 가오리, 오징어들이 죽을 때가 되면 이 동굴로 들어가 나오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몇 년 전부터 돌아다니는 거예요.

“살이 썩어 사라진 곳에 썩지 않은 작은 조각들이 많이 흩어져 있어. 그게 뭐지?”

모두 고개를 흔들었어요.

오손도손 마을에 봄이 왔어요.

겨우내 발발 떨던 미역, 다시마, 파래 들이 기지개를 활짝 켰어요. 아기 미역들이 쑥쑥 자라고, 여기저기 아기 물고기들이 태어났어요.

“아기 오징어 좀 보세요. 정말 예쁘지요?”

“후훗, 우리 아귀 얼굴 좀 봐요. 참 귀엽지요?”

“우리 불가사리 아기는 어떻고요, 별을 닮지 않았어요?”

마을은 축제 분위기 속에 휩싸였어요.

바닷물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반짝반짝 빛나는 작고 이상한 것이 또 나타났어요. 지난해보다 훨씬 더 많이 나타났어요. 아주 작은 해파리 떼들도 나타났어요. 마을은 우와와 신바람이 났어요.

“우와. 플랑크톤과 해파리다.”

물고기들은 꼴깍꼴깍 후루룩 먹기 바빴어요. 거북이, 가오리, 오징어, 바닷가재들도 정신없이 먹어댔어요. 나이 많은 거북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이상해. 왜 이렇게 가렵고 자꾸 속이 울렁거릴까?”

“나도 그래. 무얼 잘못 먹은 걸까?”

이상하게 생긴 플랑크톤과 해파리들은 미역과 산호 숲 아래 쌓이기 시작했어요. 새우와 가재들은 숨바꼭질하며 신나게 쪼아 먹곤 했어요. 강을 향해 가는 연어 떼들이 나타났어요.

“여전히 아름다운 마을이구나.”

호기심 많은 가오리와 거북이가 바짝 다가갔어요.

“여기 말고 다른 마을은 어때요? 궁금해요.”

“저기 보이는 높은 산 있지? 그 산을 넘으면 마을이 하나 나온단다. 작년만 해도 밤엔 깜깜했는데 지금은 밤에도 환해. 물속으로 많은 먹이가 내려와 살랑살랑 춤을 추기도 해. 그런데 정신없이 먹다가 하늘나라로 휙 날아가기도 해.”

“하늘나라로 휘익? 재미있겠다. 하늘나라는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도 몰라. 하늘나라로 휙 오르고선 다시 내려오는 것을 못 보았거든. 이제 우리는 떠나야겠어. 상어가 뒤따라올까 봐 무서워.”

연어 떼들은 사라졌어요.

“거북아, 하늘나라는 어떤 곳일까? 우리 한 번 가볼까?”

“그래그래. 재미있겠다.”

가오리와 거북이는 신이 났어요.

 

3

가오리와 거북이는 떼쟁이가 되었어요. 하루 종일 엄마 아빠를 따라다니며 고집을 부렸어요.

“안 돼. 위험해!”

그러나 떼쟁이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어요.

“그렇담 저녁때까진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알았지?”

가오리와 거북이는 신이 나 떠났어요. 물고기들도 뒤따라갔어요.

엄마 아빠들에게는 시간 가는 게 너무 느리게 느껴졌어요. 틈만 있으면 언제 나타날까? 눈이 빠질 것 같았어요. 저녁때가 되자, 마을은 걱정 속에 빠졌어요.

“올 때가 지났는데….”

엄마 아빠들이 이웃 마을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때였어요.

“뿌우웅 뿌웅 뿡뿡뿡.”

뒷동산 산호 숲에서 나팔고둥 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이상한 것이 나타났어요!”

나팔고둥을 부는 복어의 볼이 빵 터질 듯 부풀어 올랐어요. 무엇인가 언덕을 데굴데굴 굴러 내려오고 있었어요.

“으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언덕을 데굴데굴 굴러오던 것은 바위에 쿵 부딪혀서야 멈췄어요.

“아니 산 너머 마을로 갔던 애들이잖아.”
쓰다 버린 그물에 가오리와 거북이가 갇힌 거였어요. 가오리와 거북이의 얼굴은 상처투성이였어요. 거북이는 더 심했어요. 코에는 길쭉하게 생긴 이상한 것이 박혀있기까지 했어요.

이빨 힘이 센 복어들이 그물을 물어뜯었어요. 어림없었어요. 바닷가재들이 집게발을 흔들며 나타났어요.

“걱정 마. 우리가 있잖아.”

바닷가재들의 집게발도 뚝뚝 부러졌어요.

“우리 때문에 미안해요. 어쩌지요?”

“괜찮아. 또 나올 거야. 그런데 뭘로 만들었기에 이렇게 단단할까?”

오징어가 그물 사이로 손을 넣어 거북이 코에 박힌 것을 잡아당기기 시작했어요. 코에 박힌 것은 꿈쩍도 안 했어요. 거북이의 비명 소리는 더욱 높아졌어요. 많은 오징어가 와서 띠를 만들며 잡아당겼어요.

“영차영차, 조금만 참아!”

…………(하략)…………
 
* 자료 인용 : <해양과 문학> 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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