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도 갱년기(동화, 류근원)

등록일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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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도 갱년기

 

7월 초순 무렵부터 무더위는 시작되었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되는 찜통더위, 뉴스 시간만 되면 제일 먼저 날씨 소식을 쏟아낼 정도였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덥겠습니다. 이렇게 찜통더위가 계속되는 원인은….”

우리 섬은 무더위를 모르며 지내왔다. 수평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섬 뒤쪽 동백나무 숲을 지나오는 바람은 그야말로 자연 선풍기였다. 더욱이 경치가 아름다운 거북바위 근처만 가면, 파도가 만들어내는 물보라만 맞아도 소름이 오싹 돋을 정도였다.

그러나 올해는 우리 섬도 무더위를 피해갈 순 없었다. 마을 어른들은 “어휴 이놈의 찰거머리 같은 지긋지긋한 더위, 이러다 가두리 양식장의 물고기들이 떼죽음 당하는 거 아녀?”라며 무거운 한숨을 쏟아내곤 했다. 우럭 양식장에서는 무더위를 이기지 못한 우럭들이 죽은 채 둥둥 떠오르고, 광어 양식장에서도 광어들의 움직임이 눈에 띌 정도로 둔해지고 있었다.

작년 이맘땐 많은 관광객들이 우리 섬을 찾아왔다. 펜션마다 초만원이어 우리 집까지 민박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엄청난 무더위 때문에 관광객들의 발길도 뚝 끊기고 말았다. 낚시꾼들만 서너 명 찾아와 배를 타고 낚시를 나갈 정도였다.

바다가 환히 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우리 집은 마을에서 가장 시원한 집이라고 소문난 집이다. 그러나 요즘은 섬에서 가장 더운 집이다. 짜증이 만드는 더위는 찜통더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짜증 무더위는 두 달 전서부터 시작된 부모님의 티격태격 말다툼 때문이었다.

“찬수 아버지, 이제 그만 정신 차리세요. 고기가 예전만큼 안 잡힌다고 해도 바다에는 나가봐야하지 않겠어요?”

“가면 뭘 하누, 옛날의 바다가 아닌데. 고기들도 예전처럼 안 잡히지, 양식장도 수온이 너무 올라 손쓸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방구들 귀신처럼 집에만 있어서야 되겠어요? 그래도 바다 때문에 지금껏 우리가 살아왔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이참에 낚시꾼들을 위한 낚싯배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생각도 해보는 중이야. 아니면 아예 뭍으로 떠나는 게 어떨까, 좋은 생각이지?”

“아니, 이 양반이 점점…. 당신 혹시 갱년기가 찾아온 거 아니에요?”

“허허, 갱년기라니? 갱년기는 여자에게만 찾아오는 거야.”

“하이고 몰라도 한참 모르시네. 남자가 갱년기에 걸리면 여자보다 몇 백배 더 징글징글하다는 말 들어보지 못했어요?”

“허허, 난 갱년기가 아니야. 바다가 갱년기에 걸렸다면 몰라도….”

“바다가 갱년기라고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도저히 이해 못할 말을 하는 거 보니 정말 갱년기가 맞네. 이거야 어디 원 대화가 돼야지. 난 거북바위로 물질이나 하러 갈 거예요.”

“가든가 말든가.”

그럴 때마다 나는 답답해서 집을 나와야 했다. 숨이 훅훅 가빠지고 가슴 속엔 용광로가 들어있는 느낌이었다. 도시처럼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는 작은 섬, 요즘 같아서는 섬이 감옥 같은 기분마저 든다. 정말 갈 곳이 없다. 그래도 있다면 선착장 뿐…….

오늘도 마찬가지, 선착장으로 가는 내리막길의 해당화 숲을 돌 때였다. 푸득푸득 이상한 날갯짓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꾸욱꾸욱 신음 소리도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 예감이 좋지 않은데….’

해당화 숲 아래 괭이갈매기가 폐그물에 걸려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주변엔 수많은 깃털이 흩어져있었다.

“어휴 저런. 언제부터 폐그물에 걸려 있었던 거야? 이제 걱정 마, 내가 살려줄게,”

괭이갈매기를 끌어안았다. 괭이갈매기는 내 품에서 더욱 발버둥을 쳐댔다. 내 손등을 물기까지 했다.

“야, 고맙다고 해도 모자랄 판인데 물기까지 해. 너, 내 눈에 띄지 않았으면 도둑고양이 밥이 되기 십상이었어. 알기나 해?”

나는 바지주머니에서 맥가이버 칼을 꺼내 폐그물을 자르기 시작했다.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휴, 이제 됐다. 다음부턴 폐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 알았지?”

괭이갈매기는 몇 걸음 뒤뚱거리더니 이내 하늘로 날아올랐다. 갈매기는 거북바위 쪽으로 사라졌다.

“고맙다, 맥가이버 칼! 네가 아니었다면 괭이갈매기를 땀 뻘뻘 흘리며 집까지 안고 가야 했을 거야.”

맥가이버 칼은 작년 이맘때 우리 집에서 사흘간 묵고 간 손님이 준 칼이었다. 내 또래의 여자애 서희와 아버지…….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굴을 돌멩이로 따는 내 모습을 보며 서희 아버지가 준 것이었다.

“이 칼이 재미있게 쓰일 거야. 내년에도 시간이 되면 오마.”

맥가이버 칼을 접으며 슬몃 미소가 지어졌다.

“부우웅.”

선착장으로 여객선이 들어오고 있었다.

‘혹시 이 배로 오지 않을까? 헉, 갑자기 왜 이런 헛된 생각을….’

고개를 심하게 흔들어댔지만, 내 다리는 선착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뭍을 갔다 오는 동네어른들과 낚시꾼 몇 명만 내릴 뿐이었다. 선착장 한구석엔 바다에서 걷어 올린 폐그물과 온갖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했다. 볼 때마다 늘어나는 바다쓰레기들이었다.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 휴대전화 벨이 딩동 울렸다.

“아들, 아빠가 전활 영 안 받으시네. 너라도 와야겠다. 엄마가 지금 거북바위에서 물질을 하고 있거든.”

“어휴, 이 무더운 날 물질은 왜 하세요?”

“어머나 왜라니? 바로 우리 아들 때문에 하고 있는 거야.”

…………(하략)………………

 

□ 류근원, 아동문학평론 동화 천료, 저서 ‘열두 살의 바다’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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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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