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부표(한창규)

등록일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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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부표

 

‘좌사리도의 바로 앞이야. 부망도라고. 좌사리도에서 한 시간 코오스지. 욕지도 잔자누룩한 초록빛 바다 있잖니. 짱이야. 발효된 죽음이나 연상됐던 북태평양의 검푸른 색깔하고는 딴판이지. 네는 노상 그런 사멸의 바다만 봤지. 이곳 바다는 막 캐낸 무처럼 싱그러워. 예전의 찌든 시야가 확 달라지고 묵은 생각들이 수정된다. 내가 혼신을 바쳐 힘을 쏟고 있는 일. 이 바다 속에 있어. 이미 착수한 작업 말이지…… 그게 한마디로 바로 왕땡이고, 영영무궁 먹을알이야.’

장중동은 태산을 떠다 옮기듯이 그에게 소리 쳤다. 그 호언대성이 한 번씩 그의 귓전에 울려왔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하기 전이었다. 왜군들이 총칼에 우리나라 양민의 피를 묻혀가며 탈취한 금은주옥을 싣고 가던 군 수송선이 가라 앉아 있어. 목표는 바로 그거야. 앞서 그 침몰선은 잠수부를 동원해 확인했어. 선체는 하나 손상 없이 온전하더군. 이미 관계 당국에서 인양해도 좋다는 허가까지 났어. 야아!~ 김충기! 그 근처에 와서 붉은색 부표만 찾아봐. 주간 부표 야간 부표 다 있어. 언제든 금세 눈에 띄어.’

그는 지금 장중동의 큰소리의 실체를 확인하러 가는 참이다. 그에게 날아온 기별은, 나 장중동이 밥그릇만 축내고 어영부영 인생을 사는 줄 알아? 당찮은 말씀. 절대 아니라고 역설하고 있었다.

그와 장중동은 해양대학 졸업 후 3등항해사로서 외항선 마도로스의 길에 올랐다. 출발 선상은 같았다.

그러나 경력 1~2년차 되던 때 장중동은 당직근무 중 항해도를 잘 못 해독했다. 그러고 암초밭의 위험 구역에 배를 몰고 간 사건으로 중징계를 받았다. 또 다른 특이한 운항 사고를 냈다. 배와는 좋은 인연이 안 되려니…… 거기에 더하여 선상 폭력 사건에 엮여 실형을 받았다. 뒷배 봐 줄 이 하나 없었다. 장중동은 열 골 물이 한 골로 모이듯 여럿의 죗값을 제 혼자 받았다. 초장부터 짠물 인생의 근간이 뒤죽박죽으로 헝클어졌다.

제대로 풀렸다면 지금쯤 그와 같이 장중동은 외항선 선장이 되었을 것이다. 동기들 중 선두 주자의 그룹을 형성했을 것이다. 하다하다 못해 짬밥 양을 따지거나 연공서열에 문대도 선임 초사에서 선장의 지위에 오를 기회를 노릴 것이다. 일순에 대양에의 야망과 꿈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러고 부지불식의 세월에서 사람들 관심이 희미해질 때 홀연히 배를 떠났던 장중동이다.

그에게 장중동의 모습이라니. 떠올릴 때면 가슴이 먹먹해 지고 덩그런 흔적에 마음을 저민다.

통영에서 거기까지 세 시간 남짓 퉁탕거리면 바로 갈겨. 일생 배꾼으로 밥줄을 이었쟤. 이깟 배질이야 뭐…… 맨날 하는 짓인데. 남해 바다는 내 손바닥 안이야. 한창 때는 제주도 남단 먼 해역은 물론 동지나해까지 들락거렸어.

매물3호 선장은 배를 부리는 일은 일상이고 천직이라고 했다. 선장은 입만 약간 벌리고 웃었다. 일거리가 없어 손을 놓고 있던 터라 기름값이라도 벌충할 수 있으니, 대절을 청하는 걸 싫지 않은 눈치였다.

그는 매물3호에 오르자마자 갑판에 서서 원통식 잔교 쪽을 바라보았다. 선장이 돌핀에 걸어두었던 삭구 고리를 손으로 튀겨 벗겨냈다. 손끝에 익은 솜씨로 삭구를 사려 뱃머리에 던져서 동갰다.

이내 선장은 물결에 흔들거리는 매물3호로 훌쩍 뛰어 건너왔다. 선장은 기관장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기관실로 들어간 선장은 엔진 발동을 걸었다. 기관은 노쇠해서 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한참 쉰 소리를 몇 번 거듭 토해낸 후 발동이 걸렸다. 선장은 시동을 꺼트리지 않게 요모조모 단속을 했다.

선장은 어지간한 기관 고장은 스스로 해결했다. 기관부 일 또한 매물3호를 모을 때부터 도맡았다. 엔진 기종 선정과 센터를 잡고 엔진을 제자리에 앉히는 일 등 죄다 주관했다. 엔진의 성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간혹 엔진이 까탈을 부려 애를 먹일 때도 있었다. 이럴 때면 남다른 손재간으로 곧잘 살려냈다.

시동이 걸린 상태에서 진동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선장은 떨꺼덕 소리를 내며 기관실 문을 닫아걸고 나서면서 웨이쓰로 손에 묻은 기름을 닦았다. 선장은 키를 잡았다. 곧이어 매물3호는 뭉텅뭉텅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하략)…………………

 

□ 한창규, 단편소설 「시선」 「스케치 가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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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문예지 : <해양과 문학>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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