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항해(장량)

등록일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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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 항해 荒天 航海

 

인천 선적 외끌이 저인망 어선 해룡호의 그물에 시체가 걸려 올라왔다.

어청도 서쪽 15마일 해상. 음력 9월 보름사리. 한 밤중이었다.

당연히 한가위 버금가는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라 있어야 했으나. 바다와 맞닿을 듯 낮고 두텁게 깔린, 검은 구름이 달을 삼켜버린 칠흑 같은 밤바다였다. 하늘도 어둡고 바다도 어두운 망망대해. 오직 돛대에 달려 있는 작업등만이 그 바다 한 구석에 외롭게 떠 있는 어선의 갑판을 을씨년스럽게 비추고 있었다.

준수가 스물 세 해 동안 살아왔던 이 지구상의 그 어떤 곳, 그 어떤 분위기와도 사뭇 다른, 스산하고 오싹한 공간이었다. 아마도 저승과 이승의 중간 쯤 되는 삼도천이 있다면, 아케론 강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싸늘한 가을바람이 갑판을 휩쓸었다.

 

어제, 꼭두새벽에 인천에서 출항하여 만 하루를 꼬박 배질해 다다른 어장에서의 세 번째 양망이었다.

처음 어선에 오른 초보 중의 초보인 김준수는 첫 그물이 올라왔을 때, 고기잡이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깨달아야 했다. 데릭 크레인으로 끌어 올려 진 그물 끝 자루는 어마어마하게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상갑판에 쏟아 부려진 산더미 같은 내용물은 준수가 상상했던 물고기가 아니었다. 폐타이어와 폐그물, 통발 등 버려진 선구, 장화 비옷 등의 선원 용품, 찌그러진 양푼과 깨진 접시 조각, 소주병, 비닐봉지 등의 생활 쓰레기와 유령멍게, 불가사리, 해저 진흙과 돌멩이가 대부분이었다. 그 쓰레기 더미를 헤쳐 고기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고기잡이’였다.

고기를 풀어 놓고 다시 그물을 정리해 바다에 투망해 배가 후릿줄로 그물을 끌어 바다 밑을 훑는 동안 선원 모두 갑판을 기어 다니며 고기를 종류별로 골라 바구니에 담아 물에 씻고, 크기별로 나누어 나무상자에 가지런히 담아야 했다. 나무상자에 고기를 담는 일도 단순 노동이 아니었다. 숙련된 선원이 해야 제값을 받을 수 있는 모양새가 나는 것이다.

준수는 흔들거리는 배 위에서 넘어져가며, 미끄러져 가며, 멀미를 참아가며 이를 악물고 고기를 골라 담고 물에 씻어 고참 선원들이 상자를 채울 수 있도록 가져 날랐다.

고기가 담긴 상자는 곧바로 어창을 열고 얼음을 채워 차곡차곡 쌓아 넣었다. 어창의 한 쪽에는 출항할 때 받아 담은 얼음이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 상자를 받아 어창에 쌓는 것도 숙련된 솜씨가 필요했다. 준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고기 상자를 들어 어창에 넣어 주는 단순 노동에 불과했다.

어창에 고기를 넣고 나면 갑판 가득 남은 쓰레기를 삽으로 퍼서 바다에 버리고 갑판을 청소해야 했다. 물을 부어가며 대솔로 박박 문질러 닦지 않으면 갑판이 미끄러워 큰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이 또한 초보인 준수와 중국인 선원 몫이었다. 당초 출항할 때 두 명의 중국인 선원도 함께 탔다. 해룡호에서 몇 항차 작업을 한 중고참 ‘리쓰’가 ‘짱싼’이라는 초보를 한 명 데려 온 것이다.

그냥 서 있기도 어렵게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겨우 한 그물 끌어올리기, 한 방을 끝내면, 다시 그물이 올라왔다. 쉴 틈이 없는 무한반복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그물이 올라오고 허겁지겁 선걸음에 저녁을 먹고 던져 넣었던 세 번째 그물이 한 밤중에 올라온 것이다.

배에 처음 오를 때 다져먹은 마음이 있었기에 준수는 커다란 플라스틱 컨테이너를 들고 야무지게 쓰레기 더미에 덤벼들어 고기를 골라냈다. 가자미, 넙치, 가오리 등 저서층 어류가 주종이었고, 그외 아귀 삼치 새우 꼴뚜기 등 온갖 잡고기가 섞여 있었다.

준수가 쓰레기 더미 속에 손을 넣어 고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속을 뒤집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겨운 냄새가 피어오르며 사람의 팔이 들려 올라왔다. 그리고 눈구멍에 낙지가 붙어 있는 사람의 머리가 보였다.

“으, 으악!“

준수는 비명을 지르며 사체의 손을 놓았으나 이미 사체의 손 껍질이 훌러덩 벗겨져 준수의 손안에 들어 있었다. 손을 휘저어 살갗과 살점을 털어 내는 준수를 보고 다른 선원들이 달려왔다. 선원들이 모여들자 준수는 앉은 채 엉덩이를 밀며 뒤로 물러났다. 뱃전에 등이 닿아 멈춘 준수는 틀어 오르는 토악질을 참지 못하고 뱃전을 잡고 일어나 바다에 토했다. 창자까지 토해 낼 듯, 눈알이 빠져 나올 듯, 숨을 헐떡거리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토하고 또 토했다. 겨우 숨을 고르고 입을 훔치고 갑판을 돌아보았다.

시체는 쓰레기 더미에서 끌려 나와 갑판 가운데 놓여 있었다. 바로 준수의 눈 앞 삼 미터였다. 사체는 반쯤 썩어 군데군데 백골이 드러나 있었고 배는 움푹 꺼져 있었다. 모든 선원들이 시체를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리쓰’가 뱃머리의 창고에서 도끼를 꺼내와 시체 옆에 섰다. 부채처럼 넓은 날이 시퍼렇게 선 긴 자루 도끼였다.

순간, 갑판에 유리로 만든 거대한 종이 씌워진 것처럼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엔진 소리도, 파도 소리도, 바람 소리도 순간에 증발해 버린 듯 귀가 멍멍했다. 쏟아지는 서치라이트의 날카로운 불빛을 받아 리쓰의 눈이 기괴하게 빛났다. 어둠 속에 숨어있는 고양이과 동물의 눈처럼 리쓰의 눈에 불이 켜졌다.

리쓰가 짐승의 소리처럼 낮고 깊게 말했다.

“니지거고우자이즈 종자오워먼더마판. 잔먼바타뚜어청로우콸바!”

높이 쳐들린 도끼날에 반사된 빛이 동그랗게 선을 그리며 내리 찍혔다.

서해 바다 한 가운데, 한 밤중, 고깃배 갑판, 작업등이 내리 쏘는 동그란 그 공간이 그 순간만큼은 진공이 되어버린 듯했다.

도끼날은 정확하게 시체의 목에 내리 찍혀 단번에 목이 잘려 떨어졌다. 시체라서 피가 튀지는 않았다. 그냥 댕강 목이 몸체와 분리되었다.. 리쓰는 떨어져 나온 목을 뱃전 한쪽에 열려있는 현문으로 차 바다에 빠트렸다.

준수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통째로 입에 넣어 터져 나오는 비명을 막아내었다. 무릎이 후들거리고 오줌이 새어 나와 바지를 적셨다.

곧 이어 팔 다리가 잘려 나가 바다로 던져지고 마지막으로 몸통이 발길에 채여 바다로 들어갔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눈앞이 까마득해진 준수는 그대로 무너져 내려 정신을 잃었다.

 

육군 보병으로 병역을 마친 준수는 구월 말에 전역했다. 돌아오는 삼월 복학까지 오 개월 동안의 공백이 생긴 것이다. 오 개월 동안 어떻게든 돈을 모아야 학교생활이 넉넉할 터였다. 하지만 시급 몇 천원의 아르바이트 자리도 쉽게 구할 수 없었고, 막노동 일용 잡부도 팀을 이루지 못하면 어쩌다 하루 일거리나 얻어 걸릴까, 며칠 씩 허탕이었다.

그러나 정작 준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일당 몇 푼이 아니었다. 삶에 대한 의욕 상실이었다.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준수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부모가 노점을 하여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는 집안의 외동아들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고, 부모도 어떻게든 준수를 가르치려고 했기에 큰 어려움 없이 대학까지 진학했다.

학업성적이 남다르게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열등생도 아니었다. 그냥 평범하게, 착실하게 모범생으로 눈에 띄지 않게 지극히 평균적으로 이 십 년을 살다가 가장 평범한 육군 보병으로 입대해 총 들고 뛰고 기다가 전역을 했다. 당초 초등학생 시절부터 준수는 큰 포부가 없었다. 친구들이 판사, 의사, 교수, 국회의원, 심지어 대통령까지 장래 희망을 밝힐 때도 준수는 아무 생각 없이 ‘선생님’이라 적었다. 그렇게 특별한 재능을 보이지 못하고 자라서 이류대학의 합격 가능한 학과를 찾다 보니 영문학과를 다니게 되었을 뿐이었다.

영문학과를 지원할 때만 해도, ‘영어만 잘해도 먹고 산다.’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말을 따랐고, 열심히 하면 영어선생은 물론 무역회사, 출판사, 하다못해 학원 강사, 과외를 해서라도 밥벌이는 할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전역을 하고 복학을 앞두고 보니 해먹고 살 일이 캄캄했다. 영어쯤이야 초등생들도 기본이었고, 유학파를 넘어 이민 이, 삼 세대들이 대거 귀국해 준수 정도의 스펙으로 먹고 산다는 건 까마득한 옛 이야기였다.

아직도 부모님들은 준수가 졸업하기만 하면 짐을 벗어 놓는다고 부부간에 몇 년 만 더 고생하자고 열심이었다. 그런 부모를 지켜보는 준수의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준수는 성취동기를 잃었다. 복학도 시들했다. 뭔가 심장을 뛰게 할, 생명력을 불태워 이루고 싶은 그런 뭔가가 준수에게는 없었다. 준수는 집구석에 들어박혀 뒹구는 게으름과 무기력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가능하면 집밖으로 내돌았다. ………(하략)…………………

 

□ 장량, 1989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당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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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문예지 : <해양과 문학>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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