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비소리(남순백)

등록일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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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

 

그날, 아버지는 바다로 나갔다. 날씨는 맑고 화창했다. 바다 역시 그랬다. 그랬는데 오후가 되면서 돌변하던 것이 날씨였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는가 하더니 장대비를 쏟아놓기 시작하면서 바다는 점차 험상궂게 되어갔다. 아버지가 나간 바다를 길녀는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마음을 조이며 발을 동동 구르던 것이 길녀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바다는 무심하게도 길녀의 마음을 외면한 채 하늘과 맞붙더니 급기야는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요란했다. 바다는 뒤집혀서 날뛰며 집채 같은 파도가 몰려오며 광분했다. 길녀의 집안에서는 모두 사색이 되어 어쩔 줄을 몰랐다. 아침에 바다로 나간 아버지 때문이었다.

“이 날씨가 와이 카노. 날씨 때문에 바다가 미친데이······,”

발을 동동 구르는 길녀 옆에서 어머니가 분노로 이글거리다 이제 저주를 쏟아내었다.

“에그, 이 무신 놈의 바다가···. 이라믄 몬산데이···. 생사람 목숨이 걸렸는데···”

어머니의 바다 저주는 끝이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 역시 바다를 떠날 수는 없었다. 내일이라도 날씨가 좋아지고 바다가 가라앉으면 또 그 바다로 나가야 하던 것이 갯가 사람들의 팔자였다. 평소 바다는 논이고 밭이었다. 그 바다에서 모든 것을 구하던 것이 갯가 사람들의 삶이었다. 그래서 너 나 없이 그 바다를 떠나지 못하던 것이었다.

밤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날씨는 얄미울 만큼 이튿날 아침이 되면서 말짱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날씨는 거짓말처럼 개였다. 파도도 잦아들었다. 오히려 어제보다 잔잔한 물결 위에 유리알 같은 햇빛을 쏟아 붓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멀리까지 길이 트인 수평선은 조용하기만 했다. 아버지와 함께 나간 장정들도 마찬가지였다. 사흘인가 뒤에 난바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부서진 채 뒤집혀서 떠도는 배였다. 빈 배로는 차마 돌아오지 못해 그 난바다에서 파도에 몸을 맡기고 떠 있던 것이 아버지가 타고 나간 당도리였다. 아버지의 부푼 만선의 꿈이 부서진 빈 배로 돌아온 것이었다. 아버지는 바다를 베고 태어나 그 바다에 기대고 살다가 이제 그 바다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것이 이 갯가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공통된 운명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설두해서 짚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에 옷을 입혀 시신 없는 장례를 치렀지만 그때까지 길녀는 곡기를 놓은 채 울기만 하던 어머니를 붙들고 함께 견뎌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는 길녀 말고도 아래로 동생들이 넷이나 되었다. 피서리 같이 어린 동생들을 그냥 두고 어머니처럼 탈진해서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길녀를 강하게 만든 것은 그것이었다. 아버지의 자리를 그렇게 맡게 되었던 것이다.

“어무이. 산 사람은 어떡해서든 산다 안 카는교. 뭐라도 좀 들고 우리가 있다는 생각도 좀 하이소. 걱정이 반찬이면 상다리가 부러진다 않캅니껴?”

퍽이나 어른스러운 소리를 하는 길녀를 바라보는 어머니는 대견하다는 생각까지 했지만 넋두리를 늘어놓던 것은 엉뚱한 소리였다.

“너거 아부지도 그렇지. 바다로 나갈라카문 집 뒤 다랑이 논을 저렇게 버려두지 말고 저거라도 마쳐놓고 나가라고 했는데···, 에고, 에고···”

그건 농사가 아쉬워서 그러기 보다는 애절한 나머지 절규를 한다는 것이 그런 소리였던 것이다. 사실 다랑이 논은 온통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벼는 갈라진 논바닥에서 가을의 단 햇볕 아래 고개를 잔뜩 숙인 채 비틀어져 있었는데 갓난 애기처럼 애지중지 키우던 때를 생각하면 한 시도 버려둘 수가 없었다. 집 뒤 각단 밭 아래로 이어진 계단식 몇 다랑이의 나락을 다 베어도 곡수라곤 불과 몇 섬도 채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건 장정 없는 집안에서는 여간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역시 어머니였다. 아버지가 없다는 생각이 어머니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며칠 후 눈물로 범벅이 된 자리를 털고 일어난 어머니는 물질 나갈 설두부터 하던 것이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자 길녀는 속으로 눈물이 났다. 길녀도 따라 나서기로 했다. 열다섯 해 나이로 물질은 벅찼지만 그렇다고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처지였다. 운명은 그렇게 길들여져 갔다. 바다는 무한한 것이었다. 비록 아버지를 삼킨 바다였지만 원망하거나 저주를 할 수는 없었다. 바다, 바로 거기에 삶이 온통 매달려 있던 것으로 그랬다. 바다를 앞에 두고 섰을 때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 보다 아버지를 삼킨 바다라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 바다를 외면하고 살아갈 수는 없었다. 마을에는 함께 물질을 하는 아낙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알고 보면 모두가 같은 처지였다. 대개가 남정네를 그 바다에 빼앗긴 나머지 물질을 나서야만 했던 것이다. ………………(하략)………………

 

□ 남순백, 2005년 청람문예 신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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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지면 :  <해양과 문학>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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