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항해(심호섭)

등록일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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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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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다. 너무나 어둡다. 오늘 밤 바다는 세상의 어둠을 죄다 끌어 모은 듯 아무리 둘러보아도 검은 벽의 연속이다. 이등항해사는 조타기 앞에 서서 방위반의 불을 밝혔다. 현재 선수 방위는 310도, 좌우로 오차 범위는 0.3도. 침로를 확인한 이등항해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바깥의 윙 브리지갑판으로 향했다.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은 아득히 멀리 어딘가에서 불어와서는 선수와 갑판을 지나 이 곳 항해실로 불어오고 있다. 아까부터 검은 허공 속에서 신선한 공기 입자가 끊임없이 날아와서는 눈썹과 코끝을 간질이며 지나가고 있다. 밤인데도 이렇게 공기가 포근하다니. 아, 이렇게만 항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마치 세수를 하 듯 두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얼굴을 문질러 보았다. 잠시 후, 서서히 어둠의 벽이 걷히면서 희미하지만 수평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검은 밤바다에는 아무것도 없다. 섬도 육지도 지나가는 배도 없이 그저 무거운 적막 속에 선측의 외판을 스쳐 가는 파도 소리만 들릴 뿐.

하늘에는 별이 총총 빛나고 있다. 흰 우유를 흩뿌려 놓은 듯 은하수가 여기 저기 흐르고, 안드로메다자리, 전갈자리, 물병자리, 페가수스, 이런 별자리들이 밤하늘에서 또 하나의 바다를 이루며 지나가고 있다. 이등항해사는 고개를 한껏 젖히고 하늘의 숱한 별자리, 그 중에서도 가장 구석에서 빛나고 있는 육분의자리와 이등항해사자리를 찾아내었다. 그것은 다른 밝은 별자리들의 틈새에 끼여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등항해사는 수많은 별자리 중에 선원과 관련된 별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것은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이렇게 깊은 밤을 지나는 항해자보다 더 별에 가까운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등항해사는 항해실 뒤의 해도실로 들어가 스탠드 불을 밝혔다. 그는 해도대 위에 크게 펼쳐진 해도 앞에 섰다. 그리고는 디바이더를 쥐고 침로선을 따라 몇 번이고 간격을 잡아보았다. 이번 항해는 매우 길다. 가도 가도 끝없이 바다만 계속될 것이다. 육지에 다다를 때까지 변침도 몇 번 되지 않아 그저 자동조타장치만 잘 살피고 가면 된다. 다만 한 곳, 모레 새벽에 나타날 얕은 수심이 있는 지역. 그 곳이 문제이겠지만.

이등항해사는 스탠드 불을 낮추고 해도실을 나섰다. 그는 항해실의 조망창 앞에 서서 사방의 검은 허공을 둘러보았다. 그는 쌍안경으로 수평선 근방을 응시했다. 물론, 수평선 위에는 검은 하늘만 내려 서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쌍안경을 든 팔을 내리자 곁눈에 윙 브리지 방향으로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 어둠 속에서 검은 물체는 처음에는 팔 다리를 움직여 팔목 발목과 같은 관절을 푸는 데 열중하다가 잠시 후, 양 팔을 좌우로 크게 흔들며 위로 솟구쳤다가 내려오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다. 조타수 전 씨는 대양항해 중 야간 당직 때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체력단련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특히 뜀뛰기를 많이 했으므로 만약에 갑판 위에 고무 깔판을 두껍게 깔지 않았더라면 필시 밑의 선실에서 잠을 자고 있는 선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운동을 마치고 나서 야식 준비를 하러 선실로 내려갔다.

이등항해사는 조망창 앞에 서서 짙은 어둠 너머 희미하게 드러나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출항 후부터 지금까지 그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해도 위에 그어진 침로선을 허공에 다시 그려 보았다. 괜찮을까? 아니야. 그렇지 않아.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왜 하필이면 거긴 수심이 30미터밖에 되지 않을까? 그 주변은 대개 500미터 이상 1000미터, 아무리 얕아도 200미터인데, 왜 거기만 그럴까? 혹시 주변에 암초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등항해사는 머릿속으로 침로선 위에 디바이더를 한 뜸 한 뜸 놓아보았다. 남은 거리 740마일, 현재 속력은 14.5노트. 바람과 파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기관회전수에 변동이 없다면 이틀 후 새벽 3시 30분에서 40분 사이, 그의 당직 후반부에 통과하게 된다.

조타수 전 씨가 음식 쟁반을 들고 항해실로 올라왔다. 그는 해도실에 쟁반을 내려놓고 나서는 곧바로 항해실로 나가서 조망창 앞에 섰다. 그는 묵묵히 전방의 어둠을 향하여 응시하기 시작했다. 이등항해사는 바위처럼 무겁게 서 있는 이 사나이를 힐끔 쳐다보았다. ………………(하략)………………

 

□ 심호섭, 2002년 문예지 ≪관점21-게릴라≫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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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지면 : <해양과 문학>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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