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항해(남순백)

등록일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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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항해

 

부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늘어서서 우리 배의 출항을 배웅하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좁쌀 같은 눈 알갱이가 섞인 찬바람이 쌩쌩 불어와 사람들의 얼굴을 사정없이 갈겨대고 있었으나 아무도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모두 지금 새로 쓰이고 있던 해양의 새 역사를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위해 모진 추위를 감내하고 있었다. 물론 그 수많은 사람들 중 단 한 명도 나와의 이별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사람은 없던 것이 확실했다.

막 출항을 앞둔 우리 배는 이십오만 톤급으로 컨테이너 6천여 개를 떡시루처럼 차곡차곡 빼곡하게 싣고 있었다. 그러나 이 배에 사람은 단 한 명 바로 나 혼자뿐이었다. 나는 다양한 경력을 가진 베테랑 선장이었으나 이 배의 운항과는 별로 큰 관련이 없었다. 이 배는 선장이나 항해사나 기관장이나 선원이 필요 없게 설계·제작된 완전히 오토자이로 파일럿 시스템 선박이었다. 흔히 요즘 인공지능이니 로봇이니 하는 자동장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배였다. 다만 만약의 경우 일부분을 수동으로 전환할 수는 있었다.

지금 해양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육상 철도노선의 비약적 발전 때문이었다. 부산과 후쿠오카를 잇는 해저터널이 완성되고 한국과 유럽을 잇는 대륙횡단고속철도가 운행되면서 많은 물동량을 육로운송에 빼앗기고 있었다. 비용도 저렴한 고속철도 화물운송은 일본 상품을 유럽까지 단 일주 일만에 도달시키고 있었다. 오늘 우리 배의 배웅을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해양에 종사하던 사람들로 선원이 없이 운행되던 자율운항시스템에 큰 기대를 걸며 밝은 해양의 미래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었다. 이 시스템은 항해에 사용하던 내비게이션이 차량의 운행에 획기적 도움을 주었듯이 일찍이 개발된 자율운행차량의 앞선 시스템이 선박에 적용되어 많은 발전을 한 결과였다.

드디어 우리 배는 도선사의 아무런 도움 없이 환송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접안하였던 부두에서 서서히 떨어져 나와 유유히 항구를 미끄러져 외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항구가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자 아무런 할 일 없이 선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 항해사의 실습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바다에서 살았다. 따지고 보면 물고기도 아니면서 실제로 뭍에서 육지 사람들과 보낸 것보다 바다 위에서 파도와 보낸 세월이 훨씬 더 길었다. 그러다보니 지금 나는 흔들리는 물위가 움직이지 않는 탄탄한 육지보다 편하게 느껴진다. 요동치는 물위에 떠있으면서 파도에 흔들리고 세찬 바람이 씽씽씽…, 선창을 흔들어 댈 때에야 비로소 땀이 배고 부모님이 계신 오랜 내 고향집에 든 것처럼 편안해지던 것이었다. 우선 밥맛이 좋아지고 따라서 소화가 잘 될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파도가 일렁대어야 엄마가 자장가를 불러주듯 숙면을 취할 수도 있던 것이었다.

육지에서 무인자동차가 늘어나듯 바다에서도 배에 선원이 필요 없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선장이나 기관장을 비롯하여 선원들이 일자리를 잃었지만 유독 내가 홀로 완전 자동화된 이 배에 남을 수 있던 것은 그간의 나의 비교적 화려한 경력 때문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지금 우리 배는 겨울의 항해를 떠나고 있었다. 12월의 중반이 막 시작되던 북태평양으로 난 뱃길은 험하고 파도는 높았다. 앓고 계신 어머니를 두고 떠나는 나의 마음은 납덩이 같이 무거웠다.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급보를 받고 남미 베네수엘라의 항구도시 쿠마나에서 여러 번 비행기를 갈아타고 부랴부랴 도착하니 장례를 치른 지 벌써 닷새가 지나 있었다. 이번에도 나를 대체할 사람이 없던 중요한 항해이다 보니 깊은 병을 앓는 어머니가 다만 무사하시길 빌면서 나는 배에 올라야 했다. 이건 바로 뱃사람의 운명이기 때문이었다.

날씨조차 나의 기분을 아는지 해는 짙은 검은 구름 속에 잠겼고 진눈깨비마저 뿌려대어 눈앞의 희미한 뱃길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눈망울에 그대로 넣어두고 싶은 태종대와 오륙도의 하얀 등대가 가물거리더니 드디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나는 서글픈 눈길을 큰 바다의 희끄무레한 수평선으로 돌려야 했다. 완전 자동화된 우리 배가 지금부터 싸우며 나아가야할 운명의 길이었다.

난바다로 나설수록 흩뿌리던 진눈깨비는 굵은 눈발로 바뀌더니 막 퍼붓기 시작했다.

…………(하략)………………

 

□ 남순백, 2005년 ≪청람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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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지면 : <해양과 문학>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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