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퐁우 속의 고요(한창규)

등록일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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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속의 고요

 

오클랜드!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뛴다. 바닷바람에 노스탤지어 같이 가슴 저미며 번져오는 항해에 대한 설렘. 마음은 이미 그곳에 가서 닿아 있다. 이때쯤이면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바람을 받는 체감이 감겨온다.

나는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한국인 초등학교의 초빙교사로 재직했다. 내가 요트와의 만남은 그때부터였다. 그곳에서 현지인 동료 톰 라이스 교사를 만났다.

나는 그가 세일링 요트에 무척 빠져 있음을 느꼈다. 그는 주말이 더욱 바빴다. 그의 생활이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먼저 선뜻 요트라는 단어를 끄집어낼 수 없었다. 요트를 타고 싶다고 말하는 게 망설여지는 대목이었다.

톰 라이스 교사가 어느 날 내게 쭈뼛쭈뼛 다가왔다. 그때 나는 어리둥절해 있었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혹시 요트 좋아 하지 않으세요? 이 번 주말에 세일링을 하는데 함께 갈 수 있을까요?”

그는 특유의 함박웃음을 머금고 나에게 제안했다. 나는 마음이 약간 달뜨는 걸 느끼며,

“요트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무지렁이인데요.”

“어떤 일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접해 보는 것도 좋을 때가 있어요.”

나에게 용기를 내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어떤 분야에 대한 무지가 오히려 용기를 뛰어나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때 기분이 난 김에 일단 저질러 놓고 판단은 뒤에 하기로 했다. 그 주말 아침 나는 톰 라이스 교사를 따라 요트 계류장으로 갔다.

그 곳에는 요트 마니아들이 여럿 나와 있었다. 그들은 톰 라이스 교사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고 악수를 해댔다. 한국에서 온 이국인 나에게도 친숙한 듯 손을 뻗어왔다. 그들 중에는 요트의 도락에 빠져서 다니던 직장도 그만둔 허우대 멀쩡한 치들도 있다고 했다.

그날부터 톰 라이스 교사와 나는 주말이면 바다에서 지냈다. 그는 너무 자연스럽고 쉽게 요트와 친숙해지도록 나를 인도해 주었다. 아이들의 놀이처럼 나를 가르쳐 주었다. 중간 중간 이론과 기술을 연관지어 지도했는데 매우 능률적이었다.

나는 꾸준히 애쓰는 그에게 매료되고 빨려들었다. 눈먼 말 워낭소리 따라가듯 마냥 그의 뒤를 쫓아다녔다. 나는 그의 헌신적인 도움을 크게 누리는 대상이 되었다. 스스럼없이 바다를 제 집 들락거리듯 하면서 함께 놀았다.

막연하게 동경해왔던 바다를 향한 어린 시절의 꿈이 요트를 통해 손에 쥔 듯한 현실이 되었다.

나는 그의 열성과 그곳의 요트 열풍에 편승하여 세일링의 묘미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그는 평소 겸손하고 후덕하여 나와 재미삼아 세일링 경주를 할 때면, 장기를 한 수 접고 두듯 항상 나에게 유리한 조건을 가지게 배려해줬다.

나는 개헤엄도 치지 못했던 수영까지 그의 지도를 받아 중쑬쑬한 수준에 이르렀다. 바다에 대한 문외한이 쌍 날개를 달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바다가 이 손 안에 있다고, 한껏 어깨를 부풀렸다.

어떤 때는 깊은 밤 해월 아래 해수면에 떠서 달빛이 파도에 부서지는 감상에 젖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곳에서도 아무나 요트를 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론을 터득하여 필기시험에 합격하여야만 자격증 취득을 위한 실기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해상에서의 실전 경험도 많이 쌓아야 했다. 해상재난에 대비한 동력기관의 운용과 고장 수리에 관한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려운 고비를 별로 느껴 보지 않은 채 제반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자격증을 땄다. 그것은 오로지 톰 라이스 교사의 덕분이었다.

나는 훗날 햇볕이 쨍쨍히 내리쬐는 바다에 서서, 돛에 탱탱한 바람을 받으며, 물방울을 튀기며 파도를 가르는, 세일링 요트를 상상했다. 심장이 새가슴처럼 파닥파닥 뛰던 자신을 느끼곤 했다.

요트의 매력에 한창 빠져 있을 때 나는 그곳을 떠나오게 되었다. 톰 라이스 교사와 손에 익은 요트와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한동안 머리가 멍해지도록 아쉬웠다.

거기서의 요트에 대한 공부와 체험은 나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귀국하면서 세일링에 필요한 자료와 요트의 고장을 손볼 때 쓸 수 있는 희귀한 공구들을 몇 점 챙겨서 가져왔다. …………(하략)………………

 

□ 한창규, 단편소설 : '시선',󰡕'하늘의 부표'󰡕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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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지면 : <해양과 문학>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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