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해기사들(조천복)

등록일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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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해기사들

 

1

 

“고래가 드디어 귀국했단다.”

정수의 전화였다. 고래라면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우리 친구끼리 통하는 해규(海虯)의 별명이었다. 마침 우리가 부산해양박물관의 친수공간 끝의 안벽에서 고만고만한 낚시를 끝내고 돌아 온지 채 한 시간도 안 됐을 때였다.

전화통으로 전한 그의 첫 마디가 뜻밖에도, “만나면 바로 귀국 턱을 쏘고 싶은데 요새도 고래고기 먹을 수 있나?”라고 묻기에,

“아니, 고래가 왜 고래를 찾는데? 돈만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는 세상인지 모르냐?”하고 정수가 반문했다고 한다.

해규는 참치선망선의 어로장이다. 그는 재작년 가을 우리와 함께 횟집과 노래방을 전전하며 그의 씀씀이로 밤늦게까지 거창하게 출국 송별회를 했다.

“남태평양에서 참치를 실컷 먹고 있었을 놈이 왜 고래고기를 찾는데?”

“그건 확실히 모르겠고. 암튼 만나보면 알겠지. 그간의 소식도 듣고 하여간.” 하며 정수는 전화를 끊었다.

해규는 수산전문대학을 졸업한 우리 동기로 상선을 은퇴하고 낚시로 소일하는 정수와 나와는 형편이 사뭇 다르다. 그는 육순의 중반임에도 회사에서 놓아 주지 않는, 우리 친구 중에서도 유일하게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해기사다. 현재 우리 기수 6십여 명 중 해난사고나 기타 지병으로 죽은 사람을 빼면 이제 겨우 반이나 살아남아있다. 그 중 대부분은 자의든 타의든 해양수산계에서 은퇴한 후 귀촌 아니면 연고지를 따라 다른 지방으로 가버렸는데 해규와 정수, 그리고 나만 부산에 살고 있다.

우리는 예전처럼 일차로 남포동 입구의 전통찻집에 모였다. 그는 우리를 보자마자 “야! 양서류들아 육지에서 방콕한다고 고생했겠구나. 그간 잘 있었나?”하고 농지거리로 우선 반가움을 표시했다. 우리는 그의 변화에 우선 놀랬다. 1년 반 만에 만난 그는 원래의 까무잡잡한 피부가 더 검어졌고 튀어나온 배와 이마의 주름이 사뭇 매듭지게 보였다. 게다가 듬성한 머리조차 눈발에 덮인 갈대처럼 온통 흰머리투성이로 목소리까지 더 거칠어진 것 같았다.

“인마, 고래야! 니는 왜, 그리 삭았노? 쩍이 덕지덕지 더 붙어설랑 말이야.”

우리는 대부분 갯가 출신답게 사투리와 표준말을 마구재비로 섞어 부산하게 농지거리를 토해내며 시끌벅적거리기 시작했다.

“외로움에 곪아 봐라, 안 삭고 견딜 재간이 있는가. 이제 니들은 녹물이 다 빠졌겠네!”

해규가 녹물을 빗대며 우리에게 농을 섞어 응수했다.

선원들은 바다생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바다의 덫에 빠진 사람이라고 빗대고는, 그들이 육지에 적응 못 할 때는 녹물 때문이라고 구실을 붙였다. 그들은 녹물이 배는 단계를 승선 20년 이상이면 무릎 위, 10년 이상이면 발목 위, 그 미만이면 발바닥에 들었다고 했다. 그러니 선원들이 육지 생활에 적응하려면 바다의 덫에서 빠져나와 그 녹물을 발바닥 바깥으로 빼지 않고서는 무조건 실패한다는, 해양계 특유의 징크스가 있는 것이다. 하여 우리는 해규의 말에 금방 반응했다.

“그 놈이 아직도 무릎에서 꾸물대는데 무슨 언감생심으로 말이다.”

그러나 해규는 우리말에 반응하지 않고 고개를 계속 갸우뚱거리며, “내가 니들에게 할 말이 많았는데, 뭐였더라!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아. 요새는 나도 늙었는지 자주 건망증이 생겨. 좌우지간 이제 숫대가리 오그라드는 뱃놈들 녹물소리 좀 그만 씨불이고 입이나 좀 즐겁게 만들자고. 기껏 1년 반 만에 만나서 하는 소리치곤! 자, 자! 나 돈 많다. 오늘 저녁도 전번처럼 오랜만에 목구멍 떼 좀 벗기자고. 다른 건 접어두고.”

해규가 얼른 화제를 돌려 말했다.

“그래 미안, 미안! 자꾸 생각하다보니-그럼 재작년에 자주 갔던 그 횟집 말인가?” 정수가 반문했다.

“거기 말고 오늘은 다른 데로 가보고 싶네. 아침뉴스에 보니까 요새도 고래고깃집이 많다고 하던데. 그럼 나도 이참에 모처럼 고래고기 육회 맛도 좀 보고 싶고.”

해규는 굳이 고래고기 식당을 가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평소 고래고기라면 엄청나게 비싸 우리 형편으로는 먹을 수 있는 서민 요리라고 생각지 않고 있었다. 사실 고급집이 아니라도 자갈치에는 고래고기집이 몇 군데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의 식당들이 진짜고래가 아닌 비곗살이 두터운 돌고래고기를 취급하고 있어, 특유의 왁스 비슷한 냄새가 날 것이라고 생각하여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략)………………

 

□ 조천복, 2012년 한국해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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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지면 : <해양과 문학>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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