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빛(동화, 정한길)

등록일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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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빛

 

산호 숲의 바위틈에 진주조개가 살고 있었습니다.

산호 숲의 바위틈에는 열 개의 발을 가진 바위게도 살고 있었고, 긴 촉각과 열두 개의 다리를 가진 참새우도 살고 있어서 모두들 정다운 이웃이 되었습니다.

멍게, 담치, 좁쌀무늬고동, 따개비, 큰구슬우렁, 초록성게, 보라성게, 가리비, 해삼, 붉은해면, 말미잘 등도 가까운 이웃이 되어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모래 바닥에는 꽃게와 가자미, 모래무치 등이 있었고, 바위굴 속에는 뱀장어와 복어도 살고 있었습니다.

바다위에 떠서 나는 날치도 가끔은 산호 숲을 방문하였고, 떼를 지어 다니는 멸치들도 가끔 놀러왔습니다.

바닷물이 끊임없이 움직여서, 신선한 공기가 가슴 가득 밀려와서는 살아 있다는 기쁨을 이들 어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산호 숲에도 슬픔은 불청객으로 찾아들기 예사였습니다.

햇빛이 바다의 산호 숲 위로 번지는 어느 날 아침의 일이었습니다.

바위틈에서 아침끼니를 찾아먹으려고 엉금엉금 기어 나오던 바위게가 갑자기 덮쳐온 불가사리 때문에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너를 조반으로 해치우겠다. 각오해라!”

하고 다섯 개의 힘센 다리를 활짝 펴 들고 불가사리가 바위게를 덮쳤습니다.

“어림없다! 죽어도 너 같은 악당에겐 질 수 없다.”

바위게는 납작한 몸으로 바위의 틈 속에 숨어들면서, 그 험상궂은 가위발을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바위게는 불가사리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으아악, 내 다리…… 다리가…….”

비명을 지르던 바위게는, 거품을 뿜으면서 바위틈으로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진주조개는 바위게의 비명을 들으면서 할 수만 있다면 그의 아픔 절반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아파보지 않고는 저 아픔을 몰라.”

하고 입 속으로 말했습니다.

진주조개는 바위게를 찾아갔습니다. 한쪽 가위발에 찍힌 불가사리가 저만치서 움찔움찔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난폭자가 결국 아침식사를 단념한 것이었지만, 바위게는 오른쪽 집게발을 잃고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바위게야, 참 안됐어. 네 아픔의 절반을 내가 대신 가지고 싶어.”

하고 진주조개가 말하였습니다.

“고마워요. 말뿐이겠지만.”

하고 바위게가 말하였습니다.…

“아니야, 절대로! 말만은 아니야.”

진주조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진지한 얼굴로,

“이제 곧 절반의 아픔이 네게서 물러 갈 것이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때 어디선가 한줄기 빛이 내려와서 진주조개의 둘레를 감돌다가 곧 배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진주조개는 약간 뜨끔한 기운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자기자리에 돌아온 진주조개는 참새우를 만났습니다.

“아차차, 우리 집으로 간다는 게 그만 길을 잘못 들었군요. 미안해요.”

참새우는 약간 당황하면서 황급히 자리를 피했으나, 아무래도 참새우의 거동이 수상하였습니다.

진주조개는 아까 바위게에게서 온 아픔도 있고, 아침부터 피곤했기 때문에 잠시 몸을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그 참새우가 앞으로 다가와서, 깜짝 놀라 눈을 뜨고 자세히 살펴보니까, 아무래도 생김새가 좀 이상하였습니다.

“음, 수염이 없군. 한쪽 눈도 많이 상했구나. 참새우야, 이리와 잠시 쉬면 새 기운이 날 거야.”

진주조개가 참새우를 살피면서 정다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고마워요, 진주조개님. 하지만 저는 적을 찾아내어 복수를 해야 해요.”

하고 참새우가 말했습니다.

“쯔쯔쯔, 방향도 잡지 못하는 형편에 어떻게 적을 찾겠다는 거냐? 또 복수를 하더라도, 그 복수는 또 복수를 낳게 돼. 그만두고 잠시 머리를 쉬어 봐. 너의 그 고통을 절반만 맡을 테니까.”

진주조개는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참새우의 고통을 절반만 떼내어 자기가 대신 맡기로 하였습니다.

그때, 또 어디선가 고운 햇살이 날아와 진주조개의 배 속에 박혔습니다.

참새우를 돌려보내고 나니까 점심때가 훨씬 넘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누구 없어요? 아아아아, 이제 절망이야, 도저히 더 떠오를 수가 없어……. 아아 아, 이젠 암흑이야…….”

하고 팔랑팔랑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어족이 있었습니다.

아아,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그것은 날치였습니다.

더구나 한쪽 날개를 잃고 시뻘건 피를 쏟으며 바닥으로 떨어져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런?! 날치야말로 내 꿈이었는데… 푸른 파도를 가르며 물위로 뛰어 올라, 바다 밖의 하늘과 우윳빛 구름과 갈매기의 잿빛고운 날개를 이야기하던 내 이웃이 아닌가? 그의 날개는 꿈이었고, 그것은 또 자유가 아니었던가? 우리 이웃 모두의.”

진주조개는 가슴이 찢기도록 아팠습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내렸습니다.

…………(하략)………………

 

□ 정한길,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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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해양과 문학>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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