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바의 동쪽(김부상)

등록일2020-06-24

조회수55

 

수바의 동쪽

 

1.

부두에는 가는 빗방울이 뿌리고 있었다. 좀 전만해도 큰 비가 뿌린 듯 부두에 접안한 배들은 모두 물두덩을 덮어 쓴 듯 후줄근한 모습이었다. 죠세바는 키 165센티미터에 앞이마가 약간 벗겨진, 아담하고 야무지게 생긴 오십대 초반의 동양인 남자가 서슴없이 배 난간을 오르자 흰 이를 드러내며 웃더니 냉큼 모야줄을 풀었다. 방금 배에 오른 사내는 씨윌호(F/V She will)의 선장인 오정식이었다.

점심 때 블루가 보여준 기상도에는 피지 동북방 해상에서 발생한 중심풍속 64노트인 큰 스톰이 그려져 있었다. 태풍의 진로는 바누아투 쪽인 남서방향이었고 오 선장이 찾아가려는 어장은 태풍의 진로와 정 반대인 남동쪽 175도 해역이었다.

오후 3시. 조금 늦은 출발이었다. 블루와 샌디 어미가 태풍이 지나간 뒤에 출항하라고 말렸지만 정식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바누아투와 인접한 남서쪽 알바코 어장은 비싼 기름값 때문에 이제 경제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해가 시작되는 1월의 첫 항차부터 아예 수바의 동쪽으로 어장을 옮겨보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1월이었지만 이곳 피지의 바다는 여름이었다. 동북 방향의 상공에서 생성된 저기압 전선이 남서 방향으로 자주 밀려와 강수량이 많아지는 계절이었다.

좁은 수로를 헤쳐 나아가니 오른편 산호초 밭에 일 년 전 박 아무개가 얹혀 먹은 배가 여전히 볼썽사납게 누워 있었다. 선주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배는 일 년이 지나도록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다.

큰 바다로 나서니 금방 해면이 거칠어졌고 배가 좌우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씨윌호는 13년 전 뉴지에서 건조된 120톤급 트롤어선을 참치 빙장선으로 개조한 배였는데 롤링이 심하기로 소문난 배였다.

심한 롤링 탓에 모두가 머리를 내저어 일 년 넘게 부두에 묶여있던 배를 선주인 블루가 오 선장에게 끌고 온 것이 작년 이맘 때였다. 정식은 그때 가족들을 데리고 피지에 휴양 차 놀러와 있었다. 그가 생애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독항선 선장 4년 만에 몸도 마음도 지쳐 가족들에게 이제 다시는 배를 타지 않겠노라 다짐까지 한 뒤였다.

그러나 피지의 빙장 참치선은 한 항차가 길어야 보름 안팎이었다. 노느니 염불한다고 경치 좋은 이곳에 와 살면서 배를 탄다면 가족들도 좋겠다 싶었다. 정식은 블루에게 석 달의 말미를 구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이삿짐을 쌌다. 피지생활에 회의적이던 장성한 두 딸들에겐 당분간 이곳에서 영어나 실컷 배우라 하고 그는 다시 배를 탔다.

롤링을 완화하기 위해 포트사이드에 스테블라이즈(stablizer)를 설치한 것도 순전히 정식의 아이디어였다.

다행히 씨윌호는 선주가 뉴질랜드인이고 현지합작투자법인의 배라서 피지의 경제수역내 입어허가를 가진 배였다. 중국이나 대만국적의 배들은 입어허가 순서에서 밀리기 일쑤여서 대부분 공해수역이나 피지인근 섬에 한시적 입어허가를 받아 조업을 하고 있었다.

처얼썩! 처얼썩! 철썩! 철썩! 쿵!

포트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태풍의 진로와 같은 남서풍이었다.

스테블라이저가 수면과 부딪히는 굉음이 머리를 흔들어 놓았다. 배가 좌우로 기울기를 네 번 한 끝에 수상비행기의 발처럼 생긴 스테블라이즈의 알루미늄 판이 수면과 충돌하면서 배의 요동을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어느새 바다에는 어두움이 깔리고 있었다. 남위 20도의 남쪽 바다에 이르기까지 밤새 달려가야 할 길이었다. 내일 아침이 되어도 태풍의 영향권을 완전히 벗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정식은 일 항사인 안도에게 조타석을 맡기면서 야간견시를 위해 스타보드에 당직을 세우라고 일렀다. 브리지 중앙에 위치한 컴퓨터 해도에는 벌써 내일 아침에 쓸 투승코스가 그려져 있었다. ……………(하략)…………………

 

□ 김부상, <부산일보> 신춘문예 해양소설부문 당선(2007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작품 수록 문예지 : <해양과 문학> 13호

 

g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