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야수의 밥이 되다(김종찬)

등록일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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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야수의 밥이 되다

 

오션스타호가 니제르델타 해역에 도착한 것은 현지 시각으로 오후 두 시였다.

멀리 방콕 항에서 쌀을 싣고 출항하여 인도양을 거쳐 희망봉을 돌아 아프리카 서해안까지의 험하고 고달픈 항해였다. 그 어려운 항해를 마치고 목적 항에 도착했지만 반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언제 나타날지 모를 해적들뿐이었다. 마치 독사가 우글거리는 동굴 앞에 맨발로 다가선 기분이었다. 장기 항해에 지치고 게다가 흉흉한 소문 때문에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선원들은 불안한 눈길로 선장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나흘 전부터 매일 정오에 도착 예정시각을 보고했지만 현지대리점에서는 “접안 계획 없으니 대기하라”는 말뿐이었다. 며칠이나 대기해야 할 전망이라든지, 해적들이 나타날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하라는 등의 상세한 정보는 한 마디도 없었다. 이 항구에 입항했던 각국 선장들의 보고서에 의하면, 현지 대리점 직원이나 정박 기간 동안 배를 지켜주는 경비원들도 해적 조직의 하수인이거나 아니면 그들의 협박을 받아 배의 동정을 알려주는 첩자 노릇을 한다고 했다.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소리였다.

아프리카 대륙의 서쪽으로 엉덩이처럼 툭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바로 그 엉덩이 밑 항문쯤이 이제 막 오션스타호가 도착한 니제르델타 해역이다. 보니 강을 끼고 있는 이 하구는 지리적으로 봐서 흡사 아프리카 대륙의 항문 같기만 하다. 포트하아코트 항 입구인 이 니제르델타 해역은 옛날부터 해적 소굴로 소문난 곳이었다. 전 세계 모든 항구의 입항 안내서인 <PORT ENTRY>에도 니제르델타 해역과 보니 강 주변의 해적 행위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경고하고 있을 정도였다.

박창호 선장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치솟아 오르는 짜증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말했다.

“삼항사, 한국 배 불러 봐! 어떻게 하고 있는지.”

대한선주의 기러기호를 불러보라는 소리였다. 삼등항해사 홍종민이 VHF 폰을 잡았다.

“한국 배 감도 있습니까? 한국 배 나오세요. 여기는 오션스타, 오버.”

“한국 배 감도 있습니까? 한국 배 나오세요. 여기는 오션스타, 오버.”

시간을 두고 두 번이나 불러보았지만 응답하는 배는 한 척도 없었다. 방콕에서 똑같은 화물을 싣고 이틀 먼저 출항한 대한선주의 기러기호가 분명히 이 항구에 있을 텐데 응답이 없었다. 벌써 하역작업을 마치고 출항하지는 않았을 텐데, 듣고도 대답을 안 하는 건지…….

어느 배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나쁜 소문은 선원들이 먼저 듣고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은 선원들의 입에서 먼저 쏟아져 나온다. 이번 항차도 그랬다. <방콕에서 쌀을 싣고 나이지리아로 가라>는 항차 계획이 알려지자마자 선원들은 연기 쐰 땅벌처럼 붕붕거리며 열을 올렸다. 파도와 외로움에 시달리는 선원들의 소가지란 아메바성 단세포와 다름없다. 낯 모르는 사람의 작은 친절에도 금방 감지덕지 하는가 하면 조금만 비위에 거슬려도 화를 참지 못하고 죽일 놈 살릴 놈 하며 입에 거품을 문다.

“아니 뭐라고? 온 배 구석구석에서 녹덩이가 누룽지처럼 불쑥불쑥 일어나는 이런 고철 덩어리에 쌀을 싣는다고? 그것도 아프리카 서해안까지 간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화물창에 통풍도 안 되는 이런 배에 쌀을 실었다가 나중에 배 값보다 쌀 값이 더 비싸게 치일 텐데…… 어느 안다니 박사가 책상머리에 앉아서 지구본만 돌리며 돈만 계산하고 있나? 돌가루(시멘트)나 싣고 장작(원목)이나 싣고 다니면 딱 알맞을 배를 ……”

“똑같은 월급 받고 이런 똥배를 몰고 그런 항구로 가라면 누가 오래 붙어 있겠나.”

“니기미, 뱃놈이 별수 있나. 가라면 용궁에라도 가야지.”

선령 27년이나 된 이런 낡은 배에 쌀을 싣고 기상이 험악하기로 소문난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서부 아프리카까지 간다는 것은 박창호 선장이 생각해도 무리한 항로였다. ……………(하략)…………………

 

□ 김종찬, 1988년 부산MBC신인문예상 소설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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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문예지 : <해양과 문학> 15호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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