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의 바다로(박정선)

등록일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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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의 바다로

 

홍도 2구 이장이 철새연구센터 연구원을 태우고 홍도 1구로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남자 한 사람을 태우고 들어왔다. 그런 남자들을 태우고 오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남자는 42세라고 했다. 제주도에서 3년 동안 감귤농사를 지었다는 남자는 무척 지쳐보였다.

“그래도 농사짓기가 훨씬 쉬울 것인디.”

“사실 농사꾼도 아닙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그럼 손님도 직장에서 쫓겨났소?”

“예.”

“그건 그렇고 여길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이오?”

“한국 사람치고 홍도를 모른 사람 있습니까.”

“그거야 관광지로 유명한 홍도 1구겠지. 여긴 여객선도 닿지 않는 홍도 2구니 하는 말이오.”

“제주 농장에서 누가 그러더군요. 홍도 1군지 2군지는 몰라도 홍도에 가면 홍어 배를 탈 수 있다고.”

“그래요.”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매일 찾아오는 탓에 기가 막혀 내 입에서 헛소리가 나간 것이라오.”

“홍어 배 2, 3년만 타면 자그마한 식당 하나쯤은 낼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 선장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구만.”

“예, 한 선장님을 찾으라고 하더군요.”

남자는 비정규직으로 17년을 종사해온 직장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열 손가락 안에 든 H사 계열사였는데 본사로 흡수되면서 비정규직자들이 모두 떨려나고 말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하는 수 없이 농사나 짓고 살아가리라 결심하고 제주 감귤농장으로 내려갔는데 2년 동안 죽도록 고생만 하고 손을 털었고 이젠 홍어 배를 타서 돈을 버는 것이 마지막 희망이라고 했다.

“걸핏하면 농사나 짓고 살지, 라고 쉽게 말했는데 땅은 결코 낭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다야말로 낭만이 아닌데. 차라리 땅이 나을 걸.”

“아무튼 한 선장이란 분을 언제쯤이나 만나 볼 수 있을까요?”

“내일이라도 만날 수 있으니 하루만 기다리시오.”

“하루가 아니라 한 달이라도 기다리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이장이 속으로 혀를 찼다.

 

한 선장은 며칠 동안 암홍어만을 생각했다. 꿈속에서도 멍석만한 허연 배떼기가 희번덕거렸다. 노련한 오씨가 암홍어를 놓쳐버린 것은 아무래도 신의 조화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씨가 누군가. 설사 홍어를 찍어 올리다가 실수를 했다하더라도, 그래서 홍어가 물속으로 서너 자 이상 내려갔다 하더라도 백발백중 다시 찍어 올리는 솜씨로 유명한 홍어잡이 달인이었다. 그런데 다 잡은 암홍어를 놓쳐버린 것은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암홍어도 그놈은 앞가슴에 분명 다갈색 점이 대여섯 개가 있었다고 했다. 6년이면 홍어의 생애는 마지막이었으므로 점이 대여섯 개라면 5, 6년이 꽉 찬 나이를 먹었을 것이고, 조만간 바다 어디선가 마지막 알을 낳은 후 생을 마감하고 말 것이었다. 한 선장이 암홍어 때문에 가슴 한가운데가 텅 빈 것 같은 심정을 좀처럼 달래지 못하자 ‘사내자슥이 그까짓 걸 가지고 몇날며칠 앓는 걸 보니 자네도 진짜 뱃놈 되기는 글렀어.’ 라고 핀잔을 준 갑판장도 가슴이 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이 많은 갑판장도 속을 비어버린 것처럼 말은 하면서도 고놈 보기 드문 놈이었는데! 라고 한숨을 퍼냈다.

“평생 홍어만 잡아온 아저씨도 암홍어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오.”

“아닌게 아니라 속이 무자게 쓰리구마이.”

한 선장이 갑판장을 향해 다 잡은 암홍어를 놓쳐버린 사람치고 속이 쓰리지 않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는 투로 말하자 갑판장도 끝내 속을 속이지 못했다. ……………(하략)…………………

 

□ 박정선 ≪영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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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문예지 : <해양과 문학> 15,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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